매일신문

[안상학의 시와 함께] 가장 사나운 짐승

가장 사나운 짐승

- 구상(1919~2004)

하와이 호놀룰루 시의 동물원,

철책과 철망 속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짐승과 새들이

길러지고 있었는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그 구경거리의 마지막 코스

'가장 사나운 짐승'이라는

팻말이 붙은 한 우리 속에는

대문짝만 한 큰 거울이 놓여 있어

들여다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찔끔 놀라게 하는데

오늘날 우리도 때마다

거울에다 얼굴도 마음도 비춰보면서

스스로가 사납고도 고약한 짐승이

되지나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 시집 『인류의 盲點에서』(문학사상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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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가장 무섭다. 어려서 어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뭘 그럴까 싶었지만 살아보니 그렇다. 사람을 가장 많이 해치는 것이 바로 사람 아닌가. 사람 아닌 다른 생명들에게도 그럴 것이다. 그들의 의사를 들어본 적 없지만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사람이 가장 무서울 것이다.

사람을 차치하고 나면 사람 아닌 것들의 괴롭힘은 미미했다. 모기와 송충이, 풀쐐기, 거머리, 벌, 그리고 여러 질병을 유발하는 균들에게 약간 시달린 정도다. 내가 다른 생명체에게 한 행위를 생각해보면 새 발의 피다.

'사람'이라는 글자를 곰곰 들여다보니 거긴 '사랑'과 '사나움'이 함께 들어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거울을 본다는 것은 사랑에서 열기를 좀 빼고, 사나움에서 냉기를 좀 빼는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진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사람이다. 거울을 자주 볼 일이다.

안상학 시인·artan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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