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고한 소신과 철학으로 시정을 펼칠 수 있었던 영천시장 권한대행 시절이 가장 보람 있었지요."
이재웅(63)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장이 퇴임(22일)을 앞두고 41년간의 공직생활 및 2년간의 경북문화재연구원 근무 소감을 밝혔다.
이 원장은 2007년 영천부시장으로 일하며 6개월간 영천시장 권한대행을 맡았다. 부단체장으로 첫 발령지인 영천시에서 경북도 기관 및 기업 유치, 도시 브랜드 제고 등 세일즈 행정을 펼쳤다.
그는 당시 경산 하양으로 예정돼 있던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을 영천에 유치했다. 2007년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기공식 때에는 영천부시장으로 직접 참여했으며 2011년 이 연구원의 원장을 맡아 다시 인연을 맺었다.
또 경북천연염색연구원 및 동양종합식품, 세미머티리얼즈 등 3개 기업을 영천에 유치하기도 했다. 영천시 와이너리(와인 양조장) 사업을 위해 미국 와인의 고장 라파밸리를 방문하기도 했다. 영천시 브랜드를 높이고 친환경 이미지를 심기 위해 '별의 수도, 별의 도시'를 상표로 등록했다.
2008년 경주부시장을 지낸 그는 2011년 6월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장을 맡은 뒤 현재 신라 천년의 역사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분야별로 정리해 30권의 책으로 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에는 '신라사 대계'라는 제목으로 책이 발행될 예정이다.
그는 고향 구미에서 1968년 9급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해 1991년부터 청소년 교육훈련과장, 문화공보담당관, 위생과장, 교통행정과장, 기획담당관, 총무과장 등 6개 부서 과장을 지냈다. 1999년 3월 서기관으로 승진한 뒤 의회사무국장, 경제통상국장, 행정지원국장 등을 거친 뒤 2006년 7월 경상북도 비서실장으로 발탁됐다. 2007년 영천부시장으로 부임해 6개월 동안 영천시장 권한대행을 맡기도 했다. 2008년 1월 부이사관으로 승진해 경주부시장으로 발령받아 2년간 열정을 쏟은 뒤 2009년 12월 퇴임했다. 2011년 6월부터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장을 맡아 2년 3개월 근무하며 문화 마인드까지 갖췄다.
이 원장은 구미초교와 구미중학교를 졸업한 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구농고에 진학했다. 잘사는 농촌을 가꾸기 위해 축산에 관심이 많았다. 고교 3학년 때인 18세 때 공무원 시험을 거쳐 당시 선산군 해평면사무소에서 '까까머리 면서기'로 출발했다. 이후 구미에서 38년 동안 공직생활을 하며 서기관까지 승진했다. 주경야독으로 학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며 상주대 행정학과 및 영남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는 구미시 경제통상국장 시절 '공단이 살아야 구미가 산다'는 신념으로 기업인 존중 문화를 정착시켰다.
국내 최초로 정보와 자금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위해 (사)구미중소기업협의회를 만들어 기업인들을 도왔다. 폐교를 활용해 기업 창업지원을 위한 창업보육센터도 처음 설립해 운영했다. 중소기업의 창업 및 경쟁력 강화 자금을 지원하는 경상북도경제진흥원도 구미에 유치했다.
이 원장은 자칭 '얼라 면서기' 시절부터 38년간 구미에서 공직생활을 해 구미를 가장 잘 안다고 강조했다. 경상북도비서실장, 영천부시장, 경주부시장 등을 거치면서 구미 밖에서 더 큰 안목으로 고향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장을 맡아 역사문화에 대한 시각까지 갖췄다. 부단체장 시절 항상 변화와 혁신을 강조해 주위로부터 '외유내강형'이라는 평을 받았다.
이재웅 원장은 "41년간의 공직생활 및 2년간의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장 경험을 밑거름으로 고향 구미 시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길을 찾겠다"며 "산업도시 구미를 문화예술의 향기가 피어나는 도시로 가꾸고 싶다"고 말했다.
영천'민병곤기자 min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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