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 단어를 내 생활에 밀접히 연결할 수가 없다.
자랑하려는 것은 아니나 나는 단 한 번도 자동차는커녕 에어컨도 대형냉장고도 김치냉장고도 소유해 본 적이 없다. 집에서 내는 전기요금은 매달 1만~1만5천원가량 정도. 여름을 나기 위해 존재하는 전기제품은 작은 선풍기 한 대와 열려 있는 창문으로 간간이 머물다 가는 산바람 정도이다.
이런 환경에 있는 나에게 전력대란이라는 말은 마치 딴 나라에서나 벌어질 법한 이야기일 뿐이다. 뉴스나 시사에 최소한의 관심만을 기울이는 나에게도 전력대란이란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국민의 전력사용량을 운운하면서 전기사용을 자제해줄 것을 발표하는 정부 관료의 이야기라던가, 도표와 막대그래프로 개인과 기업의 전력사용량을 비교분석하면서 정부가 발표한 성명을 논리와 사실로 반박, 부정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등.
우리가 언제부터 전기의 노예가 되었을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에어컨이라는 것은 수준 이상의 삶을 영위하는 상위계층의 전유물이었다. 국민 대다수는 그저 선풍기 한두 대와 더불어 그나마 남아있던 도심 안의 산등성이가 가져다주는 바람에 한여름의 몸을 데워나갔을 뿐이다.
숲이 있는 산등성이에서 바람이 그 숲의 시원한 기운을 데리고 와 도심의 사람들에게 보내준다. 산속에서 자라는 나무와 풀, 돌멩이들의 차가운 기운을 바람이 살짝 얻어와 한여름 스스로 냉기를 뿜어내지 못하는 인간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다. 반면에 숲이 없는 산등성이에 살던 사람들은 올망졸망 집들 사이 늘어선 그늘로 나와 돗자리를 펴고 그 위에서 이야기하고 부채질로 바람을 만들고 화채를 만들어 나눠 먹으며 한여름의 낮 그리고 밤을 즐겁고 아름다운 일상으로 만들어갔다.
아이들은 할머니나 엄마가 부쳐주는 부채바람에 한여름의 더위를 잊어간다. 낮 동안 볕에다 고추나 먹거리를 말리는 풍경도 이전엔 도심에서도 꽤 볼 수 있는 풍경이었으며 밤에는 하늘 지붕 아래 골목길 어귀에서 달과 별 그리고 따뜻한 빛을 머금은 아름다운 구름의 행진도 볼 수 있었다. 여럿이 모여 있으니 골목 안 저녁 나절이 무서움으로 느껴질 필요도 없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여름을 서로 의지해 나는 동안, 저 멀리 커다란 공장에서는 시커먼 연기, 커다란 소음과 더불어 엄청난 전기가 소비되고 있었을 것이다. 경제부흥이라는 구호 아래. 하나 그것과는 관계없이 우리는 할머니와 뒷산, 자연의 바람, 별과 달과 함께 한여름의 더위를 식혔을 것이다.
한데 지금은 할머니가 산과 터전을 지키기 위해 포클레인 앞에 누워 있다. 철모를 쓴 사람들이 송전탑을 세우기 위해 산을 깎아내고 있으며 너무도 많은 산과 언덕이 자연을 잃고 아파트를 머리에 짊어지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으로 가득했던 산등성이 곳곳에는 나무와 풀 대신 수많은 에펠탑이 쇠 끈으로 허리춤을 연결한 채 들어서서 인공적인 화폭을 만들어내고, 높다란 아파트들은 달과 별을 막아선 채로 사람들을 시멘트 박스 안으로 몰아 에어컨으로 길들인다.
저기 먼 곳에서는 이곳 사람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엄청난 양의 쇠를 깎고 녹이며 반세기 동안 상상할 수도 없는 전력을 사용하고 있다. 아마도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 삼촌이 태어난 그 해부터.
대표자들은 어떻게 하면 국민이 전력을 조금이나마 덜 쓸까에 대한 고육지책을 강구하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삶의 환경을 만드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여야 한다. 다시 이전처럼 산을 세우고 그 산에 다시 자연을 만들어나가 보면 어떨까?
푸른 산이 생기면 시원한 바람이 마을 에어컨 역할을 해줄 것이고 도심의 소음도 막아주고 새소리와 바람을 타며 흔들리는 나무의 속삭임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할머니들이 포클레인과 움막에서 치열하게 싸우지 않아도 될 것이며 또한 사람들은 전기에어컨을 끄고 닫아놓은 창을 열고 바람을 맞이할 것이다.
국민에게 전력 낭비한다는 쑥스러운 말을 정부 관료가 할 필요도 없고 국민이 도표와 막대그래프로 정부를 겨냥하고 목소리를 높일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저 국민에게 '10년만 기다려봐 주세요. 저희가 더욱 시원한 나라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보겠습니다'라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약속만 해주면 되지 않을까?
양익준/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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