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이 우수한 대구 중학생들이 매년 수백 명씩 다른 시'도 고교로 진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고교 교사들 사이에서도 일반고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며 만든 자율형공립고(이하 자공고)의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는 등 지역 고교들의 노력이 부족, 학생과 학부모의 신뢰를 얻지 못한 탓에 지역 인재 유출을 막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매년 상위 50% 내 중학생 400여 명이 타 시도 고교로
대구 고교생의 12% 내외인 3천여 명이 매년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지역 대학들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본지 8월 13일 자 1, 3면 보도) 문제는 고교 진학 때도 비슷한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는 사실. 대구 중학생 가운데 대학입시에서 선전하는 전국 단위 모집 자율형사립고(이하 자사고)나 자율학교를 선택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상황이다.
대구시교육청의 '최근 3년간 타 시도 소재 고교 합격자 유형별 성적 급간별 현황'에 따르면 2011학년도에 다른 시도 고교에 합격한 473명 가운데 내신성적이 상위 50% 이내인 학생이 368명이었다. 상위 10%로 기준을 좁혀도 158명에 이르렀는데 이들은 자율학교(94명)와 자사고(47명)에 주로 합격했다. 2012학년도에는 타 시도 고교 합격자 500명 중 상위 50% 이내인 학생은 385명, 상위 10% 이내인 숫자는 179명(자사고 84명, 자율학교 74명)이었다.
2013학년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타 시도 고교 합격자 492명 중 내신성적 상위 50% 이내인 학생은 366명으로 집계됐다. 상위 10% 이내였던 156명은 주로 자사고(84명)와 자율학교(48명)를 택했다.(표1 참조)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내신성적이 상위 5% 이내인 최상위권 학생이 매년 100명 이상 지역을 빠져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주로 전국 단위 모집 자사고와 자율학교를 선택했고 그 외에는 영재학교와 국제고 등에 합격했다.
지역 교육계 일각에서는 앞으로 이 같은 흐름이 더 가속화될 수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교육부가 최근 고교 서열화 해소를 목표로 내놓은 '일반고 교육 역량 강화 방안(시안)'이 광역 단위 자사고와 자공고의 위상만 떨어뜨릴 뿐 지역 최상위권 학생들이 선호하는 전국 단위 모집 자사고, 자율학교, 특목고에는 제대로 손을 대지 못한 것이라는 평가가 많기 때문.
한 입시업체 관계자는 "다양한 서류를 일일이 챙기기 어렵다는 이유로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외면하는 등 대학입시에서 비중이 큰 수시모집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학생, 학부모더러 지역 고교에 진학하라고 권하겠느냐"며 "성적이 최상위권인 중학생들은 점점 더 밖으로 빠져나가려 하고 이들을 위한 사교육 시장도 들썩일 것"이라고 했다.
◆자공고 등 지역 고교 노력 부족, 공교육 불신 부추겨
자사고를 늘리는 등 이명박정부의 고교 다양화 정책은 일반고 황폐화의 주범으로 꼽힌다. 하지만, 일반고가 경쟁력을 잃은 것이 이 때문만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현직 고교 교사들 사이에서도 일반고 경쟁력 강화를 위해 탄생한 자공고 등 지역 고교들의 자체 노력이 부족한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자성(自省)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 교육부가 발표한 2012년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 결과 가운데 국어, 수학, 영어 교과별 학력 향상도를 보면 자공고의 부진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고교의 학력 향상도는 고2 학생이 치른 학업성취도평가와 그 학생이 중3 때 응시한 학업성취도평가 간 성적을 비교해 학력 향상 기대 기준을 충족하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한 것. 2년 동안 해당 고교에서 학생을 얼마나 잘 가르쳤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2012년 평가 결과에 따르면 대구 일반고 중 국어, 수학, 영어의 학력 향상도가 마이너스였던 곳은 경북대사대부고와 경북고 등 모두 19개교. 이 가운데 상인고, 구암고, 학남고, 대진고, 대구고 등 자공고가 5개교(대구 전체 자공고 13개)나 이에 포함됐다. 특히 구암고, 학남고, 상인고 경우 2011년에도 세 과목의 학력 향상도가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표2 참조)
이 같은 결과를 두고 교사들 사이에선 예견된 일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달서구 A고교의 B교사는 자공고가 도덕 불감증에 빠져 있다고 질타했다. 그는 "나이 든 교사 중에선 자기 과목 수업을 못하겠다며 다른 전공 교사에게 해당 수업을 떠맡기고 젊은 교사에게 연수를 미룬 채 자신은 수년 동안 연수 한 번 안 받았다는 걸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걸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고 했다.
수성구 C고교 D교사는 "세금을 내는 납세자 입장에서 자공고에 연간 2억원씩 쏟아붓는데 경쟁력이 제자리라는 것이 화가 난다"며 "교사들 비싼 음식 사먹으라고 주는 돈이 아니다. 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쓰고 있는지 꼼꼼히 뜯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성구 E고교의 F교사는 "자공고가 기대에 못 미친다고 하면 그곳 교사들은 학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고 입학하는 아이들 수준이 낮은 게 문제라고 둘러댄다"며 "자신들이 먼저 노력해 학교 인식을 바꾸는 게 순서이지 아이들 핑계만 대면 학교는 언제 달라지겠느냐"고 되물었다.
수성구 G고교의 H교사는 교육 당국이 변화하려는 의지와 능력을 갖추려고 노력하지 않는 고교, 교사들에게 불이익을 줄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열정과 노력이 부족한 교사들과 함께 가느라 열심히 일하는 일부 교사들이 좌절하는 게 현실"이라며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추진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보이는 고교에 집중적인 지원을 하지 않으면 우수한 중학생들이 외지로 가버리는 상황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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