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원이엄마상

세계적인 관광 명소라 하지만 막상 가보면 실망스러운 곳이 더러 있다. 유럽의 경우 덴마크 코펜하겐의 '인어공주상'이 그렇고, 벨기에 브뤼셀의 '오줌싸개 소년 동상'이 그렇고, 독일 라인 강변에 있는 '로렐라이 언덕'도 그렇다.

 '인어공주상'은 코펜하겐의 상징물이다. 안데르센의 동화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것으로 높이 1.25m, 무게 175㎏의 자그마한 청동조각품이다. 그러나 인어공주상은 해마다 세계 각국의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덴마크의 '효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사랑했지만 끝내 이룰 수 없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안데르센의 명작 동화 '인어공주'의 스토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인어공주'는 숱한 연극과 영화로도 제작되며 그 서정성과 상품성을 확대 재생산해왔다.

브뤼셀의 상징인 '오줌싸개 소년' 동상도 높이 약 60㎝의 청동상에 불과하다. '꼬마 쥘리앙'으로 불리는 이 청동상이 벨기에의 관광 필수코스로 세계인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것도 나름의 스토리텔링 덕분이다.

한국의 경북 안동에는 동화도 전설도 아닌 실존했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남아 있다. 미완의 사랑이어서, 못다 한 사랑이어서 더 애틋한 사랑의 이야기가 수백 년 세월을 뛰어넘어 뭉클한 감동을 전한다.

그 사랑 이야기의 증표는 바로 450년 전 고성 이씨 양반가 무덤에서 나온 '원이엄마'의 한글편지와 미투리 한 켤레이다. 병든 남편의 쾌유를 기원하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섞어 만든 한 켤레의 미투리, 그리고 서른하나에 세상을 떠난 남편의 가슴 위에 얹어 함께 묻었던 애절한 필치의 편지 한 장.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편지를 소재로 소설 '능소화'가 출간됐고, 영화와 오페라가 제작되기도 했다. 그리고 낙동강 건너 남쪽 도로가에 '원이엄마상'을 세우고, 부근에 능소화도 줄지어 심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원이엄마는 또다시 사위어가고, 세계인의 가슴을 울렸던 애절한 사연도 잊혀져가고 있다.

다른 나라 다른 지방에서는 없는 이야기도 만들어내고, 있는 이야기는 더 아름답게 포장을 한다. 그래서 그 콘텐츠를 소중한 자산으로 삼아 문학은 물론이고 음악, 미술, 연극, 영화, 애니메이션 등으로 계속 확대하며 경제적 가치를 재생산하고 있다.

꼭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어도 좋다. 관광상품화를 위한 노력이 아니어도 좋다. 450년 만에 세상에 나온 원이엄마의 사무치게 그리운 사랑의 노래를 외면하는 안동이 참 딱하다. 원이엄마상을 보기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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