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칠곡 '303고지' 탈환전투서 산화 美 박격포 소대원 42인 넋 기려

63년 만에 전통제례 합동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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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당시 칠곡군 왜관읍 아곡리 303고지에서 장렬히 전사한 42인의 미군을 기리는 합동추모제에서 백선기 칠곡군수와 캠프캐럴 라지(왼쪽) 6병기대대장이 헌작하고 있다. 칠곡군 제공

6'25전쟁 중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산화한 42인의 미군을 추모하는 합동추모제가 63년 만에 우리의 전통제례 방식으로 열렸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칠곡군협의회(회장 김윤오)는 이달 16일 칠곡군 왜관읍 아곡리 303고지(작오산 또는 자고산 전투) 현장에서 지역 기관단체장, 미군부대 캠프캐럴의 장병 등 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6'25 당시 전사한 미 제1기갑사단 제5연대 제11중대 박격포 소대원 42인을 추모하는 합동추모제를 개최했다.

이날 합동추모제에서 백선기 칠곡군수와 캠프캐럴 라지 6병기대대장이 초헌관, 김학희 칠곡군의회 의장과 후네비키 84병기중대장이 아헌관, 송필각 경북도의장과 캠벨 본부중대장이 종헌관으로 참례해 헌작했다.

63년 전인 1950년 8월 17일 303고지에서는 미군의 고지탈환 작전으로 북으로 퇴각하던 인민군들이 이틀 전 전투에서 포로가 된 박격포 소대원 46명을 포박한 채 계곡으로 몰아넣고 총을 난사해 42명을 집단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박격포 소대원들은 북한군 탱크의 남하를 저지하는 전투임무를 수행하다 화를 당했으며, 4명 만이 총상을 입고 전우의 시체 밑에 깔렸다 겨우 목숨을 건졌다.

303고지 집단학살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프레드릭 라이언(6'25 당시 18세) 이병과 로이 맨링(6'25 당시 19세) 이병은 지난 1999년 캠프캐럴에서 한'미 합동으로 개최한 '6'25 제49주년 기념식 및 한국전 참전 미군용사와 귀환국군 포로 환영 행사'에 참석해 "평생 잊고자 노력했지만 잊을 수 없는 악몽이었다"고 증언을 했다.

특히 라이언 씨는 "그때 입은 총상으로 아직까지 고통에 시달리지만, 이 나라 자유수호에 보탬이 됐다는 사실에 편히 눈을 감을 수 있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백선기 군수는 "미군 박격포 소대원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이 땅의 자유와 평화가 지켜질 수 있었다"며 "이들의 넋과 희생정신을 기릴 때 칠곡군은 진정한 호국의 고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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