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잠 못 드는 밤, 세금은 오르고

열대야로 잠 못 드는 샐러리맨들을 불면의 밤으로 지새우게 한 '공포 영화'가 있었으니 지난 8일 정부가 발표한 '2013년 세법 개정안'이라는 영화이다. 부제는 '잠 못 드는 밤, 세금은 오르고'다. '감독'인 '정부'는 중소기업과 서민에 대한 세제 지원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야심 차게 발표했지만, 짧은 기간임에도 여론의 동향이 심상치 않고, 대중의 야유가 쏟아졌다. 결국 발표 나흘 만에 원점에서 재검토하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 박근혜정부 경제팀의 '첫 작품'으로 내놓은 '세제 개편안'이 '국민 여론'이라는 '심의'에 걸려 '정책 수정'이라는 '가위질'을 하게 된 것이다. '제작자'인 대통령은 작품에 대한 애정이 그리 크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더욱이 정부와 여당은 '황당'하게도 대통령의 지시 하루 만에 수정안을 내놓아 국민들을 '당황'시키고 있다. 근로소득세 증가 기준 금액을 3천450만 원에서 5천500만 원으로 조정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과연 만반의 준비를 한 것일까? 지금 박근혜정부는 지금 헛다리를 짚어도 한참 잘못 짚고 있다. 국민들이 '세제 개편'에 반대하고 분노하는 이유는 단돈 몇만 원 세금을 더 내기 때문이 아니라, 매번 서민들에게만 부담이 전가되는 형평성 없는 '잘못된' 조세 정책 때문이다. '납세'는 당연한 국민의 의무이다. 그런데 부자들의 주머니는 그대로 두고 엄한 서민들의 주머니만 '또' 털겠다고 하니 울화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흔히 월급쟁이 월급봉투를 '유리 지갑'이라 한다. 소득이 고스란히 잡히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반면에 고소득자와 부유층, 기업들은 세금 떼먹기를 밥 먹듯 하고 있다. '강철 지갑'이 따로 없다. 조세 도피처에 숨겨진 한국 돈이 900조 원이 넘는다 하고, 고소득 전문직들에 대한 소득 파악은 허술하기 짝이 없어 탈세를 하기 일쑤다. 국세청 직원이 뇌물을 받고 세금을 깎아준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서민들이 귀신같이 빠르게 돌아오는 세금을 못 내 전전긍긍할 때, 재벌과 부자들은 딴 주머니를 차고 있다. 유리 지갑은 깨지고, 강철 지갑은 자물쇠를 채우고 있는 모양새다.

정부에서는 '증세 없이 복지한다'며 호기롭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지난 대선 기간 약속했던 수많은 복지 공약들은 어떻게 할 셈인가. 벌써부터 '나라 곳간'은 텅텅 빈 상태다. 지난 이명박정부 때부터 '부자 감세' 논란을 빚으며 유지해 온 '감세 정책'으로 5년 동안 줄어든 세금만 해도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을 포함하여 82조 원이 넘고 그 기조는 지금도 유지되어 오고 있다. 4대강 공사로 22조 원이 넘는 돈이 들어갔고, 이미 벌어진 환경오염 재앙으로 막대한 복원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나라 살림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면 그것이 비정상적인 것이다.

결국 '증세'를 할 수밖에 없고, 해야 한다. 한데 감세의 수혜자였던 상류층과 재벌들에게 부담을 지라는 말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번에도 재벌과 부자가 책임지라는 내용은 쏙 빠져 있다. 대기업들은 세금 부담 때문에 기업하기 어렵다고 엄살을 피우고 있지만, 2012년 기준으로 OECD 34개국 가운데 한국은 21위로 법인세율이 낮은 축에 속한다. 그나마도 우리보다 세율이 낮은 나라들은 인구가 수백만 명인 도시국가와 과거 공산권에 속해 있던 동유럽 국가들이 대부분이다.

요즘 메이저리그에서 승승장구하는 류현진 선수가 올 시즌 받을 수 있는 최대 연봉은 330만 달러(약 36억 9천200만 원)이다. 하지만 그가 실제 받는 금액은 138만 9천300달러(약 15억 5천460만 원)이다. 오바마 정부가 지난 1월 '재정 절벽'(fiscal cliff)을 타개하기 위해 '부자 증세안'을 통과시켜 소득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내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나라인 미국에서도 상위 2%에 해당하는 부자들에게 철저히 세금을 더 걷는다. '버핏세'는 있는데, '이건희세'는 왜 있을 수 없을까? '증세'와 '복지'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우선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는 것이다. 그래야 그나마 서민들도 좀 먹고살 것 아닌가.

박석준/함께하는 대구청년회 대표 adultbaby9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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