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선진국 기술을 모방하며 따라가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으로 급성장해 왔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창의적인 기술과 제품을 개발해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이른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돼야만 선진국 경제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명제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박근혜정부가 창조경제를 국가 운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정하고 여기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갈 동력을 찾으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초 개척자 또는 창조경제의 핵심이자 우리 지역이 가진 또 하나의 강점인 R&D(연구개발)에 관해 살펴보자.
R&D의 중요성을 설명할 때 흔히 "R&D가 기업의 새로운 시장 적응 능력을 결정한다"는 말을 한다. R&D를 통해 하이퍼 기술과 하이엔드 제품을 개발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가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R&D의 순환 과정은 비단 개별 기업뿐 아니라 지역경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 지역은 예전에 도시 규모에 비해 연구기관의 수나 투자 규모, 경쟁력 등 R&D 기반이 취약했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에 걸친 대구시의 적극적인 노력과 발빠른 대응으로 지금은 오히려 R&D가 지역경제의 새로운 강점이 되고 있다. 2007년 2천559억원으로 전국 최하위 수준이었던 우리 지역에 대한 정부 연구개발 투자가 지난해에는 3천913억원으로 전국 17개 시도 중 8위까지 올라섰고, R&D 관련 전문인력은 2010년 기준 8천800여 명으로 전국 10위권에 진입했다. 혹자는 기껏 이런 수준을 가지고 'R&D가 지역의 경쟁력'이라 하느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역에 국책연구기관과 기업지원기관이 계속해서 들어서고 있고, 530여 개 기업부설연구소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 이들 기관이 상호 협력하면서 R&D 투자 규모와 연구 인력이 빠르게 증가하고 R&D 효과도 배가될 것으로 확신한다. 우선 지역에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을 시작으로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한국기계연구원, 한국로봇산업진흥원, 한국뇌연구원, 임상시험신약생산센터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책연구기관이 자리 잡으면서 R&D 분야와 지역경제 발전에 일대 전기를 마련했다.
국책 R&D 기관들은 지역의 주력 산업인 기계'자동차부품, 모바일 분야는 물론 뿌리산업과 건설기계, 항공전자, 바이오메디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지역기업들의 기술 고도화를 지원하고 있다. 그린에너지, IT 융복합, 의료기기, 로봇, 메카트로닉스 등 지역 선도산업들도 이들 R&D 기관들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이들 산업은 머지않아 지역의 미래를 이끌어 갈 성장동력이 될 것이다. 여기에 더해 미래의 시장 변화에 대응해 그린 및 지능형자동차 기술개발을 유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ITS기반 지능형자동차부품시험장'이 내년 초 완공될 예정이다. 지역 발전의 또 하나의 핵심거점이 될 첨단의료복합단지에는 한국과학기술원(KIST),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첨단의료기기개발지원센터 같은 R&D 기관들이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지역이 R&D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강점을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지원시설 못지않게 연구개발 인력 기반도 중요하다. 대구는 어느 지역 못지않은 풍부한 인적자원을 가진 도시다.
기초기술 인력의 평가 척도라 할 수 있는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대구는 매년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다. 특히 지난 2011년에는 전 종목에 출전하지 않았음에도 전 종목에 걸쳐 많은 인원이 참가한 서울과 경기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전국의 초'중'고생들이 참가하는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에서도 대구는 매년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조선후기의 학자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조선 인물의 절반이 영남에서 배출된다고 했듯이 우리 지역은 예로부터 인적 자원의 보고다.
필자는 가끔 대구시민들이 우리 스스로의 강점을 너무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마도 자신을 낮추는 겸양이 몸에 배고 남에게 내세우기를 좋아하지 않는 지역의 정서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위기에 흔들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독일 경제의 힘은 창의적인 제품을 생산하려는 끊임없는 R&D에서 나온다고 한다. 이제는 지역이 가진 R&D 역량에 대해 긍지를 가지고 '한다면 한다'는 뚝심으로 창조경제를 선도하는 대구를 만들어 갔으면 한다.
김동구/대구상공회의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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