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마을운동, 세계의 희망으로] <8>르완다 무심바 마을

꿈도 못꿨던 벼농사, 주민들 힘모아 척척 "굶주림서 벗어났어요"

'밀 콜린스'(Milles Collines'천 개의 언덕). 르완다의 또 다른 이름이다. 말 그대로 르완다는 해발 1,500~1,800m의 고산 지대에 국토의 93%가 언덕으로 이뤄져 있다.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는 산기슭부터 정상 부근까지 집들이 촘촘히 들어차 있다. 10분 이상 평지를 달리는 일이 없을 정도로 산등성이를 오르내린다.

르완다는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1994년 4월 벌어진 끔찍한 내전. 다수를 차지하는 후투족과 소수였던 투치족 간의 치열한 종족 분쟁. 100일 동안 이어진 끔찍한 집단 학살로 투치족과 온건 후투족 1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경북'경남을 합친 것과 비슷한 작은 나라에서 감당하기엔 너무나 큰 시련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르완다에서 당시 흔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20여 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이뤄낸 성과다. 도시는 잘 정비됐고 치안은 안정된 편이다. 외국인이 밤거리를 걸어도 위협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르완다에서는 종족을 구분하는 자체도 금기시돼 있다. 후투족과 투치족이 한마을 안에서 옛 기억을 가슴에 묻어둔 채 부대끼며 살아간다. 하지만 여전히 인구의 절반이 빈곤 계층이고 월평균 소득이 30~40달러에 불과하다. 하지만 비옥한 토지와 값싼 노동력, 높은 교육열 등으로 '잘 살아보겠다'는 열의가 강하다. 그 덕분에 새마을운동 보급도 다른 지역에 비해 활발한 편이다.

◆꿈을 현실로 만든 벼농사

마을 인근 습지는 일대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150여 명의 주민들은 곡괭이로만 땅을 파서 논을 개간하고 있었다. 경사진 습지를 파서 평탄하게 만들고 수로를 조성하고, 농로를 만들었다. 주민들은 큰 소리로 서로 힘을 북돋아가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주민들은 중장비 없이 오로지 사람의 힘만으로 70여 일에 걸쳐 6㏊의 논을 개간했다. 무심바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인근 레라미추마을과 사카마을, 아카봉고마을 주민들도 참여했다.

논 한쪽에서는 수로 정비 작업이 한창이었다. 물속에 들어간 주민들은 풀을 베고 쇠스랑으로 풀을 걷어냈다. 새로 조성하는 논 옆에는 이삭이 팬 벼들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개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논에서는 초록빛이 도는 벼가 자라고 있었다. 일을 하던 주민 로렌트(40) 씨는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쌀은 시장에서 사기만 했다. 직접 기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다. 벼농사를 짓는 방법을 몰라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농사를 짓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이도 없었다. 지금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차있다"고 즐거워했다.

2011년 파견된 새마을봉사단은 2년에 걸쳐 논을 조성했다. 르완다는 쌀이 주식이지만 가격이 비싸고 재배 기술이 부족해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새마을봉사단은 국유지를 50년간 무상으로 임대받아 논을 조성했다. 벼농사 전문가를 초청해 농사가 가능한지 타진하고 정부의 협조를 얻었다. 처음에는 주민 43명이 논 2.3㏊를 개간해 쌀 4천286㎏을 수확했다. 새마을봉사단은 올해 논 18㏊를 개간할 계획이다. 참여 인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올해는 주민 337명이 논농사에 참여했다. 222명은 무심바마을 주민들이지만 나머지는 인근 4개 마을 주민들이다. 이들은 쌀을 팔아 얻은 수입 중 20%는 각자 분배를 하고 벼조합공동기금으로 나머지 수입을 적립한다. 봉사단은 농업기술자 3명을 초청한 뒤 주민 5명씩 붙여 농업기술을 배우도록 하고 있다. 새마을봉사단 권오영 팀장은 주민들이 모를 제대로 심을 수 있도록 직접 못줄도 만들고 있다. 권 팀장은 "볍씨 소독과 물관리, 모내기, 해충 구제 등 노하우를 정리해서 자료로 남겨주고 갈 것"이라며 "마을 주민들이 함께 일하며 종족 분쟁의 상처도 치유하고 소득도 올리면서 인식도 크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주민 생활환경도 크게 변화

르완다의 새마을봉사단원들은 마을 안에서 주민들과 함께 산다. 물도 전기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고, 매트리스와 모기장이 전부다. 씻을 수 있는 장소조차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 생활환경은 불편하지만 주민들과 유대감은 훨씬 강하다.

봉사단원들과 함께 찾은 산등성이에서는 파인애플 재배 교육에 한창이었다. 실습장 0.18㏊에는 준조합원 31명이 일하고 있다. 이들은 2천RWF(르완다프랑)씩 부담해 파인애플조합을 결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사유지 4.6㏊를 임대했고, 봉사단은 1㏊당 파인애플 모종 4만2천 주와 유기농 거름도 지원했다.

주민들은 현대식 양봉 사업도 시작했다. 벌에 쏘이지 않기 위해 보호복으로 갈아입은 주민들이 연기를 내뿜는 양철통을 들고 벌통으로 향했다. 이날 채취한 꿀은 모두 8㎏. 보름마다 꿀을 채취할 수 있기 때문에 3개월에 한번 꿀을 얻을 수 있는 전통 방식과는 수확량이 5배나 차이가 난다. 전통 양봉은 갈대로 통을 만들고 유칼립투스 잎으로 감싸 풀숲처럼 만든다. 건기가 시작되는 5월에 나무 위에 올려두고 3개월간 기다려서 꿀을 채취한다. 채취된 꿀에는 나뭇잎과 갈대잎 등 모든 찌꺼기가 섞여 있다. 또 꿀을 채취하면 벌통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반면 현대식 양봉은 보름마다 꿀을 채취할 수 있고 다른 이물질이 꿀에 섞이지 않는다. 주변에 워낙 야생화가 많아 밀원이 풍부한 편이다. 새마을봉사단은 벌 1박스에 2만5천프랑, 벌은 3만5천프랑에 구입해 분양했다.

마을 유치원에서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위생교육이 한창이었다. 유치원에 모인 40여 명의 아이들은 교실 앞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교육 동영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유니세프가 만든 동영상은 손을 깨끗하게 씻는 방법을 가르쳤고, 아이들은 고사리 손을 이리저리 비비며 손을 씻었다. 이어 아이들이 칫솔을 하나씩 받아들었다. 동영상에는 '어린이 대통령' 뽀로로와 크롱이가 이 닦는 법을 선보였다. 물이 귀한 아프리카에서 양치질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은 치과 질환에 시달린다. 지난 6월에는 마을 상수도도 개설했다. 인근 마을에서 3.5㎞ 길이의 상수도 배관을 연결해 멀리 가지 않고도 식수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된 것. 기존의 마을 주변에는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이 6곳이나 됐지만 3곳은 건기에 사용할 수 없고, 우기에는 수질이 나빠 마시기 힘들었다. 상수도 프로젝트에 참여한 은다마제 마틴(44) 씨는 "건강과 질병 예방을 위해 깨끗한 물이 반드시 필요했다"며 "비록 힘들었지만 마을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고 뿌듯해했다.

르완다 키갈리에서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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