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댓글 사건 국정조사 청문회가 지리멸렬한 채 끝났지만, 몇몇 증인의 발언을 정리해 보면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정원이 댓글을 통해 대선에 개입했으며 이를 적발한 경찰 수사가 축소돼 대선 투표일 전에 서둘러 중간 발표함으로써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합리적 의심을 들게 한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것이 아니라 대북 심리전을 벌인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국정원 댓글은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오르는 게시글 중 야당 후보에 긍정적인 의견에 반대 댓글을 집중적으로 다는 형태로 이뤄졌다. 이는 반대 의견이 많으면 베스트 글이 되게 하는 것을 막아 많은 누리꾼이 보는 것을 차단한다. 이러한 행위가 선거 개입이 아니면 무엇인가. 원 전 원장은 또 권영세 전 새누리당 대선 종합상황실장과 NLL 대화록을 공개하는 문제를 전화 통화로 상의했다고 말했다. NLL 대화록을 대선에 활용하려 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댓글 사건 경찰 수사 축소 의혹의 당사자인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대선 투표일 나흘 전인 지난해 12월 15일 긴 점심을 누구와 가졌느냐는 야당 의원의 심문에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음날인 16일, 심야에 이뤄진 댓글 사건 중간 수사 발표에 앞서 이날 오후 박원동 당시 국정원 국익정보국장과 전화 통화를 한 사실을 시인했다. 정체가 불분명한 모임과 수상한 통화가 이뤄진 정황에서 수사 축소가 결정된 것 아니냐는 추론이 들게 한다.
수사팀 책임자였던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김 전 청장의 전화가 수사팀을 격려한 것이 아니라 압수 수색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며 김 전 청장이 거짓말한 것이라고 밝혔다. 권 전 과장은 자신이 모른 채 배제된 중간 수사 결과 발표가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부정한 목적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견해도 밝혔다. 중간 수사 결과는 국정원 댓글이 없었다고 발표됐으며 중간 수사 결과 발표 직전에 열린 대선 후보 TV토론회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이 내용을 언급하며 국정원 여직원 인권 유린을 강조했다. 국정원 여직원 김 모 씨는 12일에 댓글 활동이 적발되자 출동한 경찰, 선관위, 민주당 관계자들 앞에 나서지 않고 자신의 집 안에 틀어박혀 '감금' 논란이 빚어졌다. 박 후보는 발표되기 전의 경찰 중간 수사 내용을 어떻게 미리 알고 토론회에서 언급했을까.
이런 상황 속에서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선 총괄본부장은 대선 투표일 닷새 전인 14일 부산 유세에서 NLL 대화록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말했다. 권영세 대선 상황실장이 "집권하면 NLL 대화록을 까겠다"고 말한 음성 파일이 공개된 것과 관련해 NLL 대화록을 대선에 활용한 정황이라 할 수 있다. 원세훈, 김용판, 박원동, 김무성, 권영세 다섯 사람이 국정원 댓글 사건과 NLL 대화록 유출, 경찰 수사 축소 의혹에 연계됐다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 원 전 원장과 정기적으로 독대한 이명박 전 대통령, 대선 책임자였던 김무성, 권영세 등으로부터 보고받는 위치에 있었던 박근혜 대선 후보는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국정조사특위 새누리당 위원들은 김무성, 권영세의 청문회 증인 채택에 반대했고 청문회는 종결됐다. 권성동, 이장우, 김진태, 조명철 등 국정조사특위 새누리당 위원들은 국정원 댓글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 하기보다 이를 덮으려는 데 급급했다. 새누리당이 국정원 댓글 사건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새누리당 위원들이 과연 국회의원 배지 달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지 묻고 싶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지역감정 자극 발언에 유감을 표하며 "정치인의 언행은 돌비석에 남김없이 새겨진다. 사초(史草) 같은 것이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들에게 해당한다. 청문회장에서 조 의원은 권 전 수사과장에게 "광주의 경찰이냐, 대한민국의 경찰이냐?"라고 물어 거센 비난을 받았으며 황 대표는 이에 대해 "저부터 많은 부끄러움을 느끼며 모두 자성의 시간을 갖자"고 말했다.
국정조사가 미진한 상태로 끝난 만큼 특검이 거론된다. 국정조사를 물타기하면서 넘긴 새누리당이 특검을 거부할 수 있을까. 특검까지 물리치면 표면적으로 국정원 댓글 사건이 종료될 수 있겠지만, 의구심과 분노가 뒤섞인 민심을 잠재우긴 쉽지 않을 것이다. 2013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바로 서느냐, 비틀대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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