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일생을 통해 여러 차례의 불행을 겪습니다. 불행은 인간에게 고통과 시련을 주지만 동시에 불행은 반드시 역경의 과정을 딛고 극복해야겠다는 의지를 갖게 해줍니다. 그래서 불행은 인간의 진정한 삶을 위해 꼭 필요한 스승이라고 일컫기도 합니다. 고대 희랍의 유명한 시인이었던 호메로스도 자신이 겪은 엄청난 불행의 기록으로 명시 '오디세이'를 집필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삶에서 불행의 분량이 행복보다 갑절은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오늘 가요 이야기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가수 계수남(桂壽男'본명 정덕희'1920∼2004)의 생애와 불행에 관한 사연입니다. 그는 1920년 전남 영광에서 출생했습니다.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정덕희 소년은 어려서 서울로 올라가 경성고등부기학교를 다녔고, 1939년 경성음악전문학교 성악과를 졸업했습니다. 재학 중에는 경성방송국 합창단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1940년 콜럼비아레코드사에서 전속가수를 뽑을 때 선발되어 첫 작품으로 '울리는 백일홍'(이가실 작사'전기현 작곡)을 그해 8월, 계수남이란 예명으로 발표했습니다. 이때가 그의 나이 20세였습니다.
백일홍 꽃밭 위에 싸늘한 눈물 비는/ 설움의 실마린가 오늘도 부슬부슬
오 그리운 날의 희미한 추억이여/ 비 젖는 백일홍에 내 맘도 운다 운다
이 음반의 노래를 들어보면 계수남의 음색과 창법은 맑고 잡티가 없는 깨끗한 보이스컬러로 어절을 길고 유장하게 뽑으면서 후두를 덜덜 떠는 창법이 느껴집니다. 마치 에코 같은 느낌의 다소 기계적인 바이브레이션을 반복해서 쓰고 있습니다. 나름대로의 개성은 느껴지지만 특색은 부족한 인상이랄까. 계수남의 초기 노래들은 여러 장의 음반이 주로 콜럼비아에서 발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반응을 얻어내지 못한 듯합니다.
같은 해에 '밤 주막' '오호라 김옥균' 등을 발표하지만 시대가 군국주의 홍보와 통제에 광분해가던 때였던지라 어떤 곡은 가사의 내용이 꽤 친일적 요소가 느껴지는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듬해인 1941년에는 '꿈꾸는 양자강' '타향의 찾는 정' 등 두 곡을 발표합니다. 식민지시대 후반기에 발표한 계수남 음반의 작사와 작곡을 담당한 인사로는 작사에서 이가실(조명암), 이서구, 금영화 등이고, 작곡 분야에는 전기현, 김준영 두 분입니다. 발표음반의 수도 불과 4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8곡 내외의 작품뿐인 것은 대중적 인기의 전면에 나서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가요곡 발매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이른바 시국가요적 성격의 작품만 발매하기를 강요하던 총독부 당국의 억압적 분위기와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계수남은 음반을 내지 않는 대신 콜럼비아레코드사에서 조직한 라미라가극단, 조선악극단 등의 멤버로 여러 지역을 이동해 다니며 공연활동에 참가하게 됩니다. 1941년 서울 부민관에서는 설의식 작, 서항석 연출로 만들어진 '견우직녀'가 라미라가극단에 의해 막을 올립니다. 이날 출연진으로는 송진혁, 민인식, 권진원, 윤부길, 김형래, 성애라, 이성운, 고향선, 김옥춘, 이용남, 전방일, 계수남, 태을민, 이화삼, 박용구, 박옥초, 전옥, 임천수, 장동휘, 김용환 등입니다. 작곡은 안기영, 편곡은 김순남, 안무는 장추화가 맡았지요. 이 작품은 그나마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대항하기 위해 민족의 전통적 소재에서 테마를 찾아 극으로 만드는 활동이 주목됩니다.
8'15 광복이 되자 계수남은 김해송이 주도한 K.P.K.악단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이 악단의 공연은 주로 당시 남한에 진주한 미군들을 위문하는 공연을 주로 펼쳤습니다. 과거 CMC악극단의 연주자 현경섭이 연주를 이끌며 가수 최병호, 강준희, 계수남, 전만경, 이난영, 장세정, 나성려, 심연옥, 홍청자, 전천남, 전해남, 전우봉 등이 단원으로 활약했고, 이인권, 백년설, 남인수, 윤부길 등이 자주 합류했습니다. 계수남은 그 밖에도 신향악극단, 제일가극단, 19번가 등의 악극단 공연에도 참가했습니다.
영남대 국문학과 교수
댓글 많은 뉴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탄핵안 줄기각'에 민주 "예상 못했다…인용 가능성 높게 봐"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