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명수의 집중 인터뷰] '오래된 인력거'의 이성규 감독

"스크린 독과점 막기보다 다양성 영화 제작 지원에 힘쓸 때"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1천만 관객 동원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가운데 '숨바꼭질'과 '감기' '더 테러라이브' 등 한국영화 4편이 여름 극장가를 점령하고 있다. 개봉관 점유율 87%와 누적 관객수 1천700만 명. 한국영화가 할리우드 영화를 제치고 있는 지금은 한국영화의 전성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독립영화 등 다양성 영화가 차지할 자리는 없다. 모두 CJ와 롯데 등 대형 엔터테인먼트사가 투자한 대작 영화들뿐이다. 그래서 이들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에 관한 논란도 벌어지고 있다. 독립영화 쪽에서는 불편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성규(50) 감독은 2010년 암스테르담 국제영화제에 '오래된 인력거'를 노미네이트 시킨 독립영화계의 대표적인 감독이다.

이 감독은 현재의 독과점 논란과 관련, "그 지점에 대해 제가 진보진영처럼 포장돼 있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신봉자'다. 굳이 따지면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혹은 수정자본주의 쪽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영화배급은 시장의 논리에 따라야 한다. 다양성 영화와 독립영화는 '설국열차'와 경쟁하는 1부 리그가 아니라 2부 리그에 들어가야 한다. 우리 중 일부가 1부 리그의 독과점 문제를 제기하면서 국가가 개입해서 독과점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시켜야 한다. 그것 때문에 영화계 일부에서 저를 비난하고 있는 것을 잘 안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에 국가가 개입하면 다양성 영화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극장주들만 배부르게 하는 결과가 된다. 독과점 때문에 1등을 제한하면 2, 3등만 이득을 본다."

그가 '시장의 논리'를 주장한 것은 의외였다. 오래전부터 독립영화계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그가 블록버스터급 상업영화의 독과점을 두둔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의 말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독립영화계를 향해 던지는 '돌직구'였다. 영화 '오래된 인력거'에서 주인공 '샬림'이 화를 내면서 자신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거부하는데도 계속해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 첫 장면을 생각나게도 했다.

이 감독은 '똠방'을 자처한다. 그는 독립피디협회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지냈고 2009년 언론악법 투쟁 때는 공동위원장을 맡아서 전면에 섰고 2011년 종편 출범 때도 반대진영에 가담했다. 그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영화판을 자신과 같은 방송국에 콘텐츠를 하청생산하거나 공급해주는 외주 제작사와 방송국 내부 정규직, 그리고 다큐영화와 독립영화를 진보진영의 운동 연장선상으로 보고 있는 진영 등 세 부류로 나웠다. 이 감독 같은 자신들은 콘텐츠생산자들인 반면 독립영화진영에서는 자신들과 같은 콘텐츠 제작자들을 '장사꾼'이라며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극장개봉에 성공하거나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등 최근 4, 5년 동안 성과를 내는 진영은 이 감독과 같은 방송국 주변의 외주제작사들이다.

'워낭소리'의 이충렬 감독과 '신의 아이들'의 이승준 감독, 유럽에서 활동하는 최우영 감독과, 이 감독과 함께 일하고 있는 안재민 감독 등이 그들이다.

거칠 것 없어 보이는 그도 두 달여 전 지금껏 만난 적 없는 '강적'(强敵)을 만났다. 지난 6월 말 지병인 허리협착증 수술을 하러 갔다가 간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은 것이다. 방사능 색전술 시술을 받고 경구용 항암제를 투약하고 있는 그는 두 달여 만에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강의를 다니고 후배감독들과 영화작업을 계속한다. 11월 개봉을 목표로 '시바, 인생을 던져'의 후반작업을 위해서도 동분서주하고 있다.

-우리나라 다규영화의 현실은 어떤가.

"유럽에서도 다큐영화는 잘 보지 않는다. 옛날 같지 않다. 다큐멘터리에서도 재미있는 것을 원한다.

우리 다큐영화의 미래는 밝다. '워낭소리' 효과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요즘 다큐멘터리 하겠다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대학에서는 가르칠 사람이 부족하다. 이럴 때 몇 년 동안이라도 잘 키워서 이 친구들이 꿈나무로 자라면 굉장히 좋은 토양이 될 수 있다.

워낭소리 이전에는 다큐영화를 극장에서 개봉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워낭소리 이후 극장에서 개봉하면 몇만 명 정도가 본다. 그 시장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다큐영화를 잘 만들 수 있는 조건이라고 하는데.

"지난해 2월 KBS가 'K-DOCS'라며 다큐 한류의 바람을 일으키겠다고 선언했다. 실현 가능한 꿈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세계 다큐멘터리는 프로파간다(선전이나 교육)를 거부하고 스토리텔링과 캐릭터 중심의 다큐를 제작하고 있다. 마치 극영화처럼 극적인 것을 날것의 영상, 촬영은 잘 못해도 세련된 구조를 갖추고 있는 그런 다큐를 말이다. 그게 우리 식으로 보면 '인간시대'와 '인간극장'이다.

이런 것은 우리나라가 제일 잘 만들 수 있다. 그것을 글로벌 버전으로 만들 수 있다면 성공한다.

KBS, MBC 등 공중파 방송국들이 실수하는 것은 영국의 BBC를 흉내 내는 것이다. BBC 다큐는 자본의 힘이다. 우리는 장르로 승부를 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다큐를 지원하는 펀드가 꽤 있다. 다만 공중파와 PP 등 특정 집단에 집중지원하는 것이 문제다. 방통위에서 연간 140억원을 지원하는데 그중에서 20%만 독립영화 다큐제작사를 지원해줬으면 좋겠다."

-다큐영화 '오래된 인력거' 얘기를 좀 하겠다. 10년간 인도에서 찍은 영화다. 많은 찬사에도 불구하고 결국 암스테르담 국제영화제 등에서 수상하지는 못했다.

"암스테르담 영화제에서는 처음에 주인공이 찍지 말라는 것을 찍었던 것. 그 부분이 문제가 됐다고 들었다.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라도 그런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면 수상하지 못한다. 그런 측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면서 수상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사실 오래된 인력거에서도 저는 후회하는 것이 있다. 다큐는 사실과 진실의 기록이지만 그것을 빙자한 '판타지적 허구'라고 정의하고 싶다. 관객들은 다큐 안에서도 판타지를 요구하고 있다.

'오래된 인력거'의 마지막 컷은 주인공인 인력거꾼 샬림의 사진과 더불어 그가 아직도 아내의 병구완을 위해 서더스트릿에서 인력거를 끌고 있다는 자막이 나갔다. 이 부분에서 사람들의 말을 따랐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든다. 관객입장에서는 막막했을 것이다. 샬림에게 다시 똑같은 삶을 던져준 것이다.

사실 샬림은 저희가 보낸 돈으로 삼륜차를 사지 않는 대신 고향에 집을 지었다. 그 집을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마지막 컷으로 쓰면서 제작진이 지원해줘서 집을 사서 평생의 꿈을 이뤘다고 할 수도 있었다. 아내의 병도 호전됐다. 이렇게 했다면 관객들은 불편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의 활동과는 다르게 왜 이 영화를 종편채널에서 먼저 틀었나.

"비난을 참 많이 받았다. 2008년 미디어운동의 중심에서 가장 전투적인 역할을 했었고 언론악법 개정 반대 공동위원장도 했다. 그런 제가 종편에 틀어버리니까 주변에서 배신감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 물론 이해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당시 공중파는 거저먹으려고 했다. 채널A가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 처음엔 망설였다. 그런데 종편채널의 핵심 멤버들이 엊그제까지 한솥밥을 먹던 동료들이었다. 그들이 나를 설득했다. 종편을 독립영화의 파트너로 삼는 길을 열어야 하는데 내가 희생타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했다. 나중에 아, 내가 생각을 잘못했구나 생각했다."

-왜 인도인가.

"IMF 사태 직후 어느 날부터 갑자기 돈이 사라졌다. 한 중견기업 홍보실에서 몇 달 근무하다가 인디컴이라는 제작사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공장에서 다큐멘터리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이 싫어서 1999년 인도에 갔다. 한솔그룹에서 두 달 근무했다. 홍보실에. 나와서 인디컴 가서 다큐 만들다가 공장에서 만들 듯이 하는 것이 싫어서 99년에 인도로 갔다. 출발은 역시 '오리엔탈리즘'이었다. 막연하게 인도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그런 인도에 대한 판타지는 1997년 도전지구탐험대라는 프로그램을 찍으러 인도에 갔다가 한 방에 깨졌다. 공항에 내려서 택시를 타자마자 300달러를 사기당했다.

그 후 1999년도에 호흡이 긴 다큐를 만들고 싶었는데 국내에서도 돈이 들어, 인도에서는 없는 돈에도 찍었던 것이 생각났다. 캘커타의 테레사 수녀원 빈민굴에서 한 자원봉사 이야기를 쓴 책을 봤는데 느낌이 좋았다. 그래 이거다 하고 캘커타로 갔다. 거기서 두 달 있으면서 이 아이템을 접었다.

거기서 만난 사람이 '오래된 인력거'의 샬림이다."

-삶이 심심하거나 무료하면 인도에 가라고 하는데.

"유럽배낭여행을 갔다 온 사람과 인도 갔다 온 사람은 차이가 있다. 유럽을 다녀온 사람은 장소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인도 갔다 온 사람은 사람을 이야기한다. 저는 '삶이 우울하거나 심심하고 지쳤다면 인도로 여행을 떠나라'고 이야기한다. 당신이 살면서 10년 동안 겪을 희한한 일을 인도에서는 한 달이면 겪을 수 있다. 인도 배낭여행은 '압축형 인생극장'이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인도는 삶의 원형질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어떤 사람들은 인도에 가도 깨닫지 못한다. 불편하다고 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삶이란 그라운드로 내려서야지 관중석에 있어서는 느끼지 못한다."

방송국과 영화판에서 24년.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콘텐츠 생산자로서 '비주류' 인생을 살아온 그는 간암과 싸우고 있다. 지금껏 독립피디계의 대표 주자로 당당하게 싸웠듯이 이번 싸움에서도 멋지게 이겨낼 것으로 믿는다.

영화감독이든 무엇이든 감투와 명예 모두 다 내려놓고 '이성규'와 '간암' 1대1로 맞붙어서 말이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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