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안 하고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릴 거니' vs '딱 1시간만 더하고 공부할게'
개학을 맞아 초'중'고 학생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으레 스마트폰을 둘러싼 실랑이가 벌어진다. 빼앗자니 자녀가 정색하고 놔두자니 스마트폰이 아이를 망칠까 걱정이다.
'내 손안의 세상'이라는 스마트폰. 이미 중'고생은 물론 초등학생에게도 필수품이 돼 버렸다. 그러나 엄청난 중독성 때문에 애물단지가 되곤 한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비율은 10명당 7명꼴. 문제는 스마트폰 사용으로 인한 해악이다. 스마트폰 중독은 정상적인 생활을 어렵게 하거나 육체적'정신적 부작용을 초래한다. 특히 스마트폰은 언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컴퓨터보다 중독성이 훨씬 심각하다.
한시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아이들의 습관을 고치기 위한 '인터넷 치유학교'가 있다. 여성가족부 지원으로 2011년부터 시작된 전문 치료 프로그램이다. 올해는 스마트폰 중독 치유 과정이 처음으로 포함됐다. 지난달 20일부터 27일까지 1차 과정을 마쳤고, 이달 12일부터 23일까지 2차 치유학교가 대구 달서구 송현동 청소년수련관에서 남자 중학생을 대상으로 열렸다. 대구 최초로 열린 스마트 중독 치유학교를 찾아가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아이들을 만나봤다.
◆스마트폰 없는 세상
'~아임 어 마더 파더 젠틀맨~.'(I'm a mother father gentleman. 싸이 '젠틀맨' 가사)
18일 오후. 대구청소년수련관 지하 강의실에서는 흥겨운 음악 소리가 울려 퍼졌다. 흥겨운 리듬에 맞춰 청소년들이 엉덩이를 실룩이며 신나게 몸을 흔든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아이들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어난다. 이곳에서는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중독됐거나 중독될 위험이 높다는 진단이 나온 학생들을 위한 인터넷 치유학교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다.
캠프 진행을 맡은 강근모 상담사는 "대부분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친구를 사귀거나 남과 대화하는 것을 꺼리는 등 중독 증상을 보이는 학생들이다. 이들 중에는 스마트폰 사용 문제로 부모와 심한 불화를 겪은 학생들도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춤추며 노래하는 모습은 여느 또래들과 다르지 않다. 앳된 모습이지만 하고 싶은 말은 하는 당돌함까지. 영락없는 '요즘 애들'이다. "친구들이 학원에 다니느라 같이 놀 친구들이 없어요. 여기서처럼 친구들과 놀 수 있으면 스마트폰 게임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김성수(가명'중1) 군은 신이 난 모습이다. 이종현(가명'중3) 군은 "재미있는 게 없어서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다 보니 그만 푹 빠지게 됐다. 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가 그만 하라고 하면 화가 나 대들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치유학교가 시작된 지 일주일째. 그동안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는 구경도 못했지만 누구도 찾지 않는다. 강근모 상담사는 "입소 후 학생들의 스마트폰을 모두 거둔다. 처음에는 반발이 심하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 학생들이 적응한다. 아이들이 원래부터 스마트폰에 중독되거나 의존된 상태는 아니라는 얘기다. 학생들은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으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스마트폰 이외에 즐길 수 있는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제공한다"고 했다.
학생들의 하루 일과표는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빼곡했다. 대부분 학생들은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러나 취재를 한 이날은 이미 프로그램이 시작된 지 일주일이 지난 상태여서 대부분 학생들이 적응한 상태다. 치유학교 프로그램은 오전과 오후, 밤시간대로 나뉜다. 오전에는 운동과 트레킹, 그리고 전문가 상담이 이뤄진다. 오후에는 풋살, 승마, 요리와 문화체험 등 다양한 실내외 활동이 진행된다. 밤시간대에는 방송댄스와 명상의 시간을 가진다.
치유학교에서는 15명의 자원봉사자가 멘토(13명)와 진행요원(2명)으로 학생들과 함께한다. 멘토인 김동규(계명대 사회복지학과 4년) 씨는 "프로그램 초반에는 아이들이 많이 힘들어한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반응이 없고 소극적이다. 집에 가고 싶다는 아이들도 있고 일부 어린 친구들은 '탈주' 계획을 짜기도 한다. 그러나 3, 4일이 지나면 깜짝 놀랄 정도로 활발해진다. 규칙적인 생활과 또래 친구들과의 다양한 활동이 아이들을 변화시킨다"고 했다.
◆스마트폰 없이도 살 수 있다
치유학교에 온 대부분 학생들은 인터넷 또는 스마트폰 주의 사용자나 고위험군에 속한다. 이로 인해 게임중독이나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 보니 스스로 통제하거나 자신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대부분 학생들은 부모에게 등 떠밀려 참가한 경우다. 그래서 초기 적응은 쉽지 않은 편이다.
김한수(가명'중1) 군은 "여기에 오는 줄 모르고 왔다. 처음엔 나를 스마트폰 중독자, 즉 '환자'로 생각한다 싶어 짜증 나고 기분이 나빴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이틀이 지난 후 생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친구와 형들과 하룻밤 자고 나니 재미를 느꼈다. 상담사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을 듣고 나서야 내가 이곳에 와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됐어요. 특히 방송댄스나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하면서 '스마트폰 말고도 세상에는 재밌는 일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정수(가명'중3) 군도 "집을 떠나 합숙을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오기 싫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승마도 하고 방송댄스도 배우니 너무 재미있었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보다 재미있는 게 너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정수 군의 '스마트폰 게임 탈출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도 자신이 있단다. "예전엔 왜 스마트폰 게임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왜 학교를 다녀야 하는지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이제는 스마트폰이 곁에 있더라도 게임을 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치유학교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스마트폰 중독에 따른 후유증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김재승(가명'중1) 군은 스마트폰 때문에 집에서 가출까지 한 적 있다. 하루 10시간 정도 스마트폰 게임에 빠졌던 재승 군은 게임을 하지 않으면 손발이 떨릴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김 군은 "이곳에 온 지 3, 4일 동안은 꿈에서도 게임을 할 정도였다. 손발이 떨리는 증상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솔직히 일주일이 지났지만 가끔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상상을 한다"고 했다.
강근모 상담사는 "치유기간이 짧은 것이 사실이다. 예산상의 문제가 가장 크다. 일부 학생들은 짧은 기간에 효과를 보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특히 가정에서도 스마트폰 중독에서 파생된 부모와의 단절감을 상쇄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 스마트폰을 대신할 수 있는 대안 활동을 찾아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치유학교에서는 아이들의 모든 활동 과정을 녹화해 부모들에게 전달해준다. 원한다면 부모상담도 함께 이뤄진다. 강근모 상담사는 "인터넷 혹은 스마트폰의 과다한 사용으로 아이와 부모는 이미 갈등상황을 여러 번 겪었다. 그러면서 서로에게 상처주는 말이나 행동도 있었다. 이를 완화하고 부모들에게 아이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도 치유 프로그램에 포함된다"고 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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