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뒷방신세 박차고 '老風당당'…실버, 100세시대 주역 뜨다

사회적 주류세대로 급부상 '할매·할배'

2013년 여름. 대한민국에 '슈퍼' 할배'할매들이 등장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맹활약을 펼치더니 현실세계까지 넘보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극의 중심을 잡거나 아예 주인공을 꿰찼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들도 그들의 이야기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현실에서도 '슈퍼 갑'이다. 건강보험, 레저부터 벤처에 이르기까지 이들을 위한 다양한 상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뒷방 늙은이'는 옛말. 이제 더 이상 나약하고 돌보아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파워 시니어' '슈퍼 갑'으로 불리며 100세 시대의 진정한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꽃보다 할배'

안방극장은 이미 할배'할매들이 접수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tvN)는 대중문화계에 꽃미남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꽃보다 남자'를 능가한다. 전국 기준 평균 시청률 4.5%(이하 닐슨 코리아 집계), 최고 시청률 7.9%, 3주 연속 남녀 20대 이상 전 연령별 시청률 동 시간대 1위를 석권했다. 주인공인 이순재(80)'신구(78)'박근형(74)'백일섭(69)의 평균 연령은 75세. 친근하고 지혜로운 '할배' 캐릭터와 꾸밈없는 모습, 여행을 통한 인생의 지혜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직진 순재' '시크 신구' '분위기 메이커 근형' '문제적 인물 일섭' 등 캐릭터도 인기다.

JTBC 새 일일극인 '더 이상은 못 참아'에서도 할배'할매가 주인공이다. 배우는 백일섭과 선우용여(68)이다. 두 사람은 황혼이혼의 위기를 맞은 7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맛 갈 나게 그리고 있다.

할배'할매들의 주무대는 '집단토크쇼'로 옮겨가고 있다. MBC의 '세바퀴'에서는 엄앵란(77), 전원주(74), 사미자(73) 등 일흔이 훌쩍 넘은 패널들이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게다가 '동치미' 등 종편채널 프로그램까지 활동영역을 넓혔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현재 주간 시청률에서 상위권에 올라 있는 드라마는 모두 할배'할매들이 장악했다. KBS2 주말극 '최고다 이순신'에는 김용림(73)이 맹활약하고 있고 KBS1 일일극 '지성이면 감천'에는 정혜선(71), 전무송(72)이 출연 중이다. MBC 주말극 '금나와라 뚝딱'에는 반효정(71), 김지영(75)이 주인공 못지않은 활약을 펼쳤다.

방송계를 넘어 강연'교육 분야에서도 할배'할매들의 파워가 거세다. 글로벌 할배까지 가세했다. 지난해 방한하여 5일간의 스토리 집중 세미나를 진행한 스토리의 구루(guru) 로버트 맥기. 올해 나이 81세의 글로벌 슈퍼 할배다. 그는 지난해 '스토리' 편에 이어 올해 '라이프' 편을 통해 또 다른 파워 시니어들과 함께 조만간 한국을 찾는다. 한국의 대표 힐링 아이콘인 정신건강의학자 이시형 박사(79세)도 무대에 선다.

인하대 연극영화학과 조희문 교수는 " 드라마나 예능 등의 주 소비층이 노령세대로 넓어지고 있다. 노인들이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사회적 주류가 되고 있어서다. 특히 요즘 노인들은 경제력은 물론 문화소비 욕구가 강하다. 이들의 높아진 위상을 반영하듯 방송계에 노인들이 만들거나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나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노(老)풍당당

얼마 전 성형외과에서 눈주름 제거 수술을 받은 김연화(78) 할머니. 눈가 피부가 늘어지고 주름져 무겁고 답답하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불편과 불만이 싹 가셨다.

"요즘 눈매도 또렷해지고 수술한 자국이 거의 표가 나지 않아 처녀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아요. 먼저 간 남편한테는 미안하지만 남자 친구도 하나 만들 예정입니다." 김 할머니의 친구들도 성형에 대한 관심이 많으며 실제로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성형을 받는 사람이 적지 않다. 성형 계모임을 만들기도 한다.

현실에서도 곱게 늙기 열풍이 불고 있다. 이를 위해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젊은 시절 못다 한 취미 활동에 빠지기도 한다. 스포츠 댄스 모임이나 밴드 모임을 통해 친구들도 사귀고 삶에 활력을 느끼고 있다.

외모에 대한 관심도 많다. 20대 못지않게 외모에 공을 들이는 할배'할매들도 크게 늘었다. 실버세대를 겨냥한 화장품이나 미용제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또 통통하고 어려보이는 얼굴로 변신하기 위해 60, 70대의 병원 방문도 크게 늘고 있다.

이영주 요셉성형외과 원장은 "요즘 들어 성형외과를 방문하는 환자들의 평균 연령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성형수술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던 노년층의 인식이 변했기 때문이다. 주름이나 눈 밑이 불룩한 지방층을 제거하기 위해 병원을 찾는 어르신들도 많다"고 했다.

◆실버마케팅'맞춤형 혜택 등장

이 시대의 슈퍼 갑으로 등장한 노인들을 위한 다양한 마케팅도 등장했다. 호텔가에서는 일찌감치 시간적 여유와 함께 구매력도 갖춘 실버 고객들을 주고객층으로 보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실버고객을 위한 맞춤 서비스뿐만 아니라 할인혜택, 건강관리 상품까지 구비돼 있다.

실버세대만을 위한 할인혜택도 있다. 플라자호텔의 올데이 다이닝&뷔페 레스토랑 '세븐스퀘어'는 이달 31일까지 70세 이상의 고객에게 최대 40%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하얏트 리젠시 제주는 62세 이상 어르신을 위한 시니어 할인 가격제를 운영하고 있다. 당일 객실 요금에서 10% 할인이 더 적용되는 우대 정책으로 체크인 때. 주민등록증 혹은 여권 등의 개인 확인을 통해 적용받을 수 있다.

슈퍼 할배'할매들을 공략하기 위한 카드상품도 잇따라 출시됐다. 하나SK카드는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이미 은퇴한 소비자를 타깃으로 '하나SK 행복디자인카드'를 선보였다. 상대적으로 병원을 자주 찾는 고령층에 맞춰 의료할인에 혜택의 비중을 높였다. '종합건강검진권'을 무료로 제공하기도 한다.

NH농협카드도 노인층을 대상으로 병원, 약국 등 의료업종 할인 혜택에 특화된 '행복건강 체크카드'를 출시했다. KB국민카드도 건강에 관심이 많은 실버세대를 위한 상품을 선보였다. '골든 라이프 카드'는 종합병원, 치과, 한의원 등 병원 업종에서 5% 할인혜택을 제공한다. 대구은행도 지난 5월부터 우수고객 대상 '효 섬김 서비스'와 전 고객을 대상으로 영업점에 건강 체크용 혈압계를 비치하는 등의 실버고객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지역 금융회사 관계자는 "경제력을 가진 노인층이 늘면서 노인들이 새로운 소비층으로 부상했다. 이에 맞는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고 전했다.

실버세대를 겨냥한 맞춤형 병원도 크게 늘었다. 고급 중환자실, 호스피스 병동, 첨단 재활 치료기기를 갖추고 실버세대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효산요양병원 최동호 원장은 "노인들을 위한 맞춤형 병원이 늘고 시설도 좋아지면서 과거 종합병원만을 고집했던 노인들이 최근에는 전문 요양시설을 이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소개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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