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00세 시대 은퇴의 재발견] <2부>행복한 은퇴자들 (21)꿈꾸는 소년 김영창 씨

오늘도 꿈 찾아 나선다…일흔 나이에도 설레는 나날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던 김영창 씨는 퇴직하고 대학교에 편입해 도예를 전공했다. 그는 도자기를 만드는 도구를 싣고 전국의 작은 학교를 다니며 아이들과 함께 도자기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던 김영창 씨는 퇴직하고 대학교에 편입해 도예를 전공했다. 그는 도자기를 만드는 도구를 싣고 전국의 작은 학교를 다니며 아이들과 함께 도자기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강령탈춤을 추는 김영창 씨
강령탈춤을 추는 김영창 씨

70이 바로 코앞인 김영창(69'대구시 동구 파계로) 씨. 그는 10대 같은 울렁거림을 가지고 있었다. 먼바다를 항해하는 소년처럼 끊임없이 도전했고 새로움을 찾아 떠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선생님을 30년 이상 했다. 육십이 된 해에 그가 오랫동안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보이스카우트 일을 마음 편하게 하고 싶어 사표를 냈다. 그 후 한국에서 유일한 스카우트 훈련교수가 되어 세계를 다니며 한국을 알리고 있다.

65세가 되던 해에 그는 대학의 문을 다시 두드렸다. 오랫동안 해보고 싶었던 도자기를 배우고 싶어서였다. 졸업을 앞둔 지난 5월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지금은 고산지대인 남미를 여행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운동을 하며 몸을 만들고 있다.

윌리엄 워즈워드의 '무지개'를 영어로 낭송하며 인터뷰를 시작한 그는 지금 이 순간, 설렌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그 나이에 '설렘'을 가질 수 있나.

"열정이다. 나는 열정적으로 살고 싶다. 지금도 열정이 나를 소년처럼 설레게 하고 도전하게끔 한다. 어떤 이는 나를 두고 '일흔이 코앞이라도 용무늬로 펄떡인다'고 했다. 펄떡거리며 생동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꿈을 찾아 나서보라. 그러면 설렌다."

-이야기하기는 쉽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게 하기 어렵다.

"왜 어려운가. 인생은 그렇게 길지 않다. 느긋하게 우릴 기다려주지도 않는다. '지금 여기'가 중요할 뿐이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주저하지 않는 이유다. 망설일 이유가 무엇인가. 일본에서 열리는 보이스카우트 세계 대회에 참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나이 육십에 사표를 냈다. 이 대회가 나에겐 스카우트 강사로 데뷔하는 첫 무대였다. 많은 준비도 필요했고 무엇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 사표를 낸 것이다. 데뷔는 성공적이었고 그 이후로 세계 곳곳에 초청을 받아 훈련교수로 일하고 있다."

-왜 뒤늦게 대학에 입학하게 됐나.

"스카우트 행사를 마치고 일본인 친구와 함께 일본여행을 하면서 은퇴 후 뭘 할까 하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좋아 모든 선생님이 미술대학을 권했던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서 한국에 와서 바로 미술대학 편입을 준비했다. 계명대 공예과에 합격해 도예전공을 했다."

-은퇴자들이 대학에서 다시 공부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대학은 은퇴자에게 행복을 주는 곳이다. 편입을 하게 되면 전공으로 바로 들어가기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만 하는 장점이 있다. 또 내 방식대로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기도 하다. 대학생이 되면 누릴 수 있는 것도 많다. 미술대학에 들어갔지만 체육대학에서 택견을 배웠고 골프도 훌륭한 선생님으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 마음먹으면 무엇이든지 배울 수 있는 신천지 같은 곳이 바로 대학이다."

-졸업을 앞두고 개인전을 열었다. 동기가 있다고 들었다.

"두 가지 이유였다. 하나는 늙은 학생을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신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제자들에게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이가 들어도 열정적으로 도전하고 이루려는 나의 모습을 기억해서 그들이 어렵거나 힘들 때 나를 떠올리며 힘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뒤늦게 공부를 준비하려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늦깎이 학생은 두 부류다. 젊은 학생들과 어울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다. 대학을 다니려면 나이도 잊고 10대들의 눈높이와 감성에 맞추면서 즐기면 된다. 그들과 커피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사주며 같이 떠들면 된다. 폼 잡으려니 어려워지는 것이다. 남 눈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행복한 은퇴자는 나에게 집중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택견이나 탈춤을 배우는 이유가 있는가.

"스카우트행사에 참석하느라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닐 기회가 많았다. 이럴 때 탈춤 한판이면 순식간에 그날의 주인공이 돼버린다. 수많은 말이나 글보다 탈춤 한판이 한국을 더 잘 소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 백번 맞는 말이다. 실감한다. 강령탈춤은 여자들 틈새에 끼여 혼자서 꿋꿋하게 배웠다. 10년 정도 탈춤 강의도 했다."

-한국에서 유일한 아'태지역 스카우트 훈련교수라고 했다. 어렵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일단 영어로 강의가 되어야 하고 항공비 체재비 등 모든 것을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 그래서 조금 어려운 것 같다. 앞으로는 많은 교수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훈련교수는 전 세계 스카우트 지도자를 양성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봉사하는 사람이다."

-영시도 멋지게 낭독하고 영어로 강의할 정도면 영어실력이 대단하다.

"대구교육대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대학에 다시 진학했다. 미국 드라마를 전공했다. 자연스럽게 영어를 접하게 되었고 영어가 익숙해졌다. 결국은 중학교 영어교사가 되었다. 수십 년 영어를 손에서 놓지 않았으니 영어가 자연스럽게 되었을 뿐이다."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주고 있다.

"상주에 있는 고향의 초등학교에 장학금을 30년 넘게 주고 있다. 대학에 시간강사를 나가니 강사료가 모아졌다. 이것을 모교에 전달했고 보충수업비나 외부 강의료가 모아지면 스카우트연맹에 장학금을 주고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가슴이 아플 정도로 어려운 학생들이 많았다."

-꿈이 있다면.

"도자기를 만들 도구를 차에 싣고 아내와 함께 시골의 작은 학교를 찾아다니는 것이다. 텐트를 치고 아이들과 함께 도자기를 만들고 만드는 법도 가르쳐주고 싶다. 아내(우순덕)도 교사를 했기 때문에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멋질 것 같지 않은가. 상상만 해도 가슴 떨린다. 또 팔공산에 마련해둔 땅에 창고를 지어 절반은 작업실을 만들고 나머지는 서재로 꾸밀 생각이다. 거기서 보이스카우트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베이덴 파월경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다. 또 그의 자서전을 멋지게 번역하고 싶다."

-평생 자유롭게 살았다. 아내가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틈만 나면 해외로 가거나 전국을 다니며 스카우트 활동을 했다. 내 위주로 살다 보니 아내의 마음고생이 심했다. 내가 소년처럼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내가 든든하게 가정을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커다랗게 써주었으면 좋겠다.(웃음) 아내는 지금도 나의 가슴을 떨리게 하는 예쁜 소녀다."

김순재 객원기자 sjkimforce@naver.com

사진: 김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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