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는 받고 싶은 명절 선물로 항상 꼽힌다. 유통업계에서는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이번 추석에도 한우가 신선식품 선물 가운데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갈비세트 등을 선물할 때에는 받는 사람의 '마블링'(marbling'근내 지방도)에 대한 관심도도 고려해야 할 듯싶다. 비싼 가격대의 속칭 '투뿔'(1++'1 투플러스 등급)이나 '원뿔'(1+'1플러스) 등급이 높은 지방 함량 때문에 건강에는 오히려 좋지 않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소고기 등급 기준에 대한 논란을 알아봤다.
◆소고기 등급제는 마블링이 핵심
육질과 육량으로 구분되는 소고기 등급제는 육류 소비 경향의 변화, 수입 쇠고기에 대한 한우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1993년 관련 법 개정이 이뤄지면서 시작됐다. 모든 국내산 소고기는 등급 판정을 받은 후 유통되며, 축산물품질평가원이 판정 업무를 맡고 있다. 육질 등급은 고기의 품질 정도를 나타내며, 육량 등급(A, B, C)은 소 한 마리에서 얻을 수 있는 고기의 양이 많고 적음을 뜻한다. 소비자가 일반적으로 구매 기준으로 삼는 것은 이 가운데 육질 등급이다.
육질 등급이 지금과 같은 5등급 체계를 갖춘 것은 2004년 12월이다. 1994년 11월부터 1997년 11월까지는 3개 등급(1'2'3등급)뿐이었다. 1등급을 세분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져 1997년 11월 1+ 등급이, 2004년 12월 1++ 등급이 추가됐다. 출하 농가에는 이보다 더 세분화된 '성적표'(No.1~9)가 주어진다. 숫자가 높을수록 좋은 등급이다. 평가원 내부적으로는 27단계로 나뉜 등급 분류기준이 있기도 하다. 축산물품질관리원 백장수 대구경북지원장은 "등급 판정 기준은 또 다른 의미의 도량형으로 소비자의 니즈(needs)를 반영하고 있다"고 했다. 소비자 개개인의 입맛에 맞는 부위나 등급을 알려주는 가이드라는 의미다.
육질 등급 판정에서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마블링이다. 마블링은 대리석(마블) 표면에 나타나는 흰색 띠 같은 얇은 지방층을 일컫는다. 마블링 상태에 따라 1차 평가 후 육색, 지방색, 조직감, 성숙도에 의해 최종판정한다. 마블링이 '예술' 수준이어서 예비등급을 잘 받더라도 다른 항목에서 감점을 받으면 등급이 낮아진다. 마블링 측정은 배최장근 단면(마지막 등뼈와 제1허리뼈 사이를 절단한 등심)을 대상으로 한다.
소고기 등급제는 한우의 품질경쟁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우 농가들이 사육기술을 빠르게 발전시키고 품종 개량을 거듭한 결과 1등급 이상 출현율이 60%를 넘는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동안 경북에서 출하된 한우의 1등급 이상 비율은 안동 73.7%, 영주 70.4%, 상주 65.4%, 경주 61.0% 등으로 전국 최상위권이었다. 이들 시'군의 1++ 등급 비율은 각각 12.9%, 11.6%, 10.9%, 8.7%이었다.
좋은 등급의 소고기는 상대적으로 비싸다.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농협중앙회 경북본부 김성수 축산사업팀 차장은 "축산물 도매시장에서는 등급에 따라 ㎏당 1천500~3천원 정도의 차이가 난다"며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사람들의 입맛"이라고 했다.
◆지방 많은 고기는 나쁘다?
소의 살코기에 낀 마블링의 정확한 표현은 '근내 지방도'이다. 고기 조직 사이에 서리가 내린 것처럼 흰색의 지방이 희끗희끗하게 박힌 정도를 말한다. 상강(霜降)이라고도 부르며, 노란색이 짙은 마블링은 상급으로 치지 않는다. 지방이 근육 내에 골고루 존재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결합조직의 입자가 가늘어지고, 근육조직이 연하기 때문에 고기의 맛이 좋아진다. 또 육즙이 많고, 석쇠 위에서 고기가 잘 타지 않는다.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마블링이 뛰어난 고기가 높은 등급을 받도록 돼 있는 등급 판정 시스템이다. 즉, 지방이 많은 고기가 좋은 고기처럼 인정받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다. 1++ 등급의 지방 함량은 2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인병의 원인으로 꼽히는 과다한 지방 섭취를 위해 비싼 가격을 치른다는 것은 아이러니처럼 들리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해 연말, 경기도의회는 학교급식용으로 1등급 이상 한우를 쓸 경우 지원해주는 보조금 예산을 삭감하려 한 바 있다. '지방 함량과 품질은 직접적 상관이 없는 만큼 2'3등급 한우를 써 충분한 소고기를 공급하는 게 오히려 낫다'는 취지였지만 한우 축산농들의 거센 항의로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다.
'마블링 신화'는 미국이 주요 수출국인 옥수수를 소의 사료로 사용하면서 생긴 인위적 산물일 뿐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풀을 먹은 소는 마블링이 적고, 옥수수 등 곡물 사료를 먹여야 마블링이 잘 나타나는데 마블링이 좋은 고기만 찾는다면 외국의 옥수수농가'사료업자만 배부르게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8월에는 이와 관련, 서규용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소고기 등급 기준에서 마블링을 빼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제 곡물 가격 상승이 축산농가의 생산비용 및 육류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국내 곡물 수입량의 대부분은 사료용으로 쓰이고 있으며, 2008년 애그플레이션(agflation) 당시에는 사료 가격 인상으로 축산농가의 경영비 부담이 1조4천억원 증가한 것으로 추산됐다. 당시 서 장관은 "국내 소비자들이 유독 마블링이 좋은 쇠고기를 선호하다 보니 미국에서도 한국으로 수출하는 소는 방목으로 키우다 도축하기 6개월 전부터 곡물 사료를 먹여 마블링을 만들고 있다"며 등급제 개선 의지를 드러냈지만 축산농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경북도 축산경영과 관계자는 이에 대해 "등급 기준을 바꾸는 것은 사육 방식의 변화가 뒤따라야 하는 등 복잡한 문제"라며 "마블링에 대한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어 제도 변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우 마블링은 걱정 필요 없어"
마블링이 많은 한우의 섭취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시각에 대해 전문가들은 잘못된 이해라고 반박한다. '한우 박사'로 유명한 영남대 생명공학부 여정수 교수는 지난해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국내산 거세우, 비거세우, 암소, 육우(젖소 수컷)와 미국'호주산 소고기 등 6종 732건의 샘플을 실험한 결과, 한우에서는 불포화지방산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불포화지방산은 동맥경화, 고지혈증, 뇌졸중 등 순환계 질환을 유발하는 포화 지방산과 달리 혈액 내 쌓여 있는 노폐물과 함께 배출돼 성인병 예방을 돕는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고기 맛이 좋아지게 하는 불포화지방산의 일종인 올레인산이 전체 지방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한우 거세우 44.30%, 한우 암소 44.67%인데 비해 미국산에선 41.03%, 호주산에서는 36.77%에 그쳤다. 또 건강을 위해 중요한 불포화지방산인 오메가3와 오메가6의 비율은 한우 거세우 1:8.62, 한우 암소 1:8.80이었지만 미국산은 1:12.79, 호주산은 1:13.82로 나타났다. 우리 영양학계에서는 오메가3와 오메가6의 적정 섭취 비율을 1:4~10으로 권장한다. 미국은 1:6, 일본은 1:4가 권장치이다.
여 교수는 "한우 소고기 등급별 조사에서도 1++ 등급의 올레인산 비율이 45.90%로 가장 높았고, 오메가3와 오메가6의 비율 역시 1:6.23으로 가장 낮았다"며 "한우의 마블링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같은 대학 최창본 교수도 지난해 '마블링 논란'에 대해 의미 있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근내 지방도 1(3등급), 3(2등급), 5(1등급), 7(1+등급), 9(1++등급)의 한우 고기와 미국'호주산 쇠고기를 실험용 흰쥐에 먹이는 실험이었다. 결론은 한우 고기의 근내 지방도가 높을수록 흰쥐의 혈액 내 중성지방 함량은 미국산 및 호주산 쇠고기에 비해 낮아진다는 것이다. 한우 고기에 지방이 많지만 불포화지방산이 미국산이나 호주산 쇠고기에 비해 더 많이 함유돼 있어 동맥경화나 고혈압 등 성인병 유발 위험이 더 적다는 의미다.
육류 소비량이 적은 한국인에게는 소고기의 지방 섭취 자체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축산물품질관리원 백장수 대구경북지원장은 "지난해 우리나라의 소고기 1인당 소비량은 9.8㎏으로 미국'호주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며 "지방의 양이 아니라 질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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