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29,766

29,766

무슨 숫자일까?

한 집 건너 하나라는, 돌아서면 있던 PC방. PC방의 리즈 시절(전성기), 전국 PC방의 개수는 2만 개였다.

그것보다 더 많은 숫자다.

2012년에는 커피 전문점 1만 개 시대가 열렸다.

하도 숫자의 인플레에 살다 보니까 1만이라고 하면 상당히 적은 숫자로 생각하는데, 1만이라는 것, 만만하게 볼 게 아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숫자다.

그렇다면 잘나가던 시절의 PC방 숫자를 훌쩍 넘겨버린 '29,766'의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대구의 빈집 숫자다. 빈집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경기 침체와 사업성 위주의 재개발 정책으로 인해 늘어난 도심 빈집은 범죄의 근거지가 되거나 화재'붕괴 위험에 노출돼 있어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원인이야 다양하겠지만 "전문가들은 대구시의 주거 환경 개선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아파트 등 사업성만 고려한 재개발 정책 아래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소외되는 노후 주택이 생겨나고 결국 방치된 빈집과 폐가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단독주택들이 많았던 수성구는 사업성을 앞세워 아파트 재개발이 이뤄지고, 정작 낙후된 주택들이 많은 중구와 서구, 남구, 북구 등은 주거 환경 개선 사업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것. 지역의 주택 경기가 침체되면서 더 이상 수익성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재개발에 뛰어들었던 민간 업체들이 사업을 포기하면서 방치된 빈집은 더 늘어나고 있다"고 매일신문에 보도된 바 있다.(매일신문 2013년 5월 2일 자 '범죄 온상 전락한 빈집 "지나다니기 겁나요"-3만 채 육박 대구 빈집, 주민 안전 위협' 기사)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데도 빈집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는 것은 빈집이 갖고 있는 재산상 포지셔닝이 이중적이기 때문이다.

집은 명백히 사유재산인데, 빈집이 되면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순간 공공의 것이 된다. 나아가 집주인이 거기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빈집이 되므로 집주인은 이 문제에서 비껴나 있고 철거를 요청하면 본인은 별로 답답할게 없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공공의 것이지만 사유재산인 빈집은 이렇듯 방치되고 우리 동네를 야금야금 문제의 늪으로 빠뜨리고 있다.

그런데 재미난 일이 벌어졌다. 경북대학교 생명공학부 학생들을 중심으로 '도심 오아시스 플랜'(대표 김경진)이 조직되어 도시농업을 빈집 재생에 적용하는 실험을 지난 2011년부터 시도해 왔는데, 도심 오아시스 플랜은 '천지우주(天地宇宙'농사를 짓기 위한 하늘과 땅, 그리고 집이라는 뜻)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빈집에 텃밭을 조성하여 마을의 분위기를 화사하고 신나게 만들어가고 있다.

도시농업은 도시를 새롭고, 생기롭게 만드는 신나는 상상이다. 인천, 광명, 서울 강동구 등에 비해 본격적인 출발이 늦었지만 전국 최고의 거버넌스인 '대구도시농업네트워크'의 활동으로 광역 단위 최초로 '도시농업 지원 조례'가 제정되었으며 '제2회 대구도시농업박람회'(9.5~9.8)를 유치하는 데 공을 세웠고 이렇듯 청년들이 자발적인 실험과 도전을 하는 툴로서 사용되고 있다. 나아가 황금동에는 '대구도시농업지원협동조합(준)'이 설립되어 대구 도시농업을 확산하는 데 아주 열심이다. 이 협동조합은 전국 최초의 도시농업을 지원하는 협동조합으로서 대구에 도시농업을 뿌리내리고 확산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지난 17일 대구자연과학고에서는 매일신문사와 대구교육청이 공동 주최하는 대구도시농업학교 2013 하반기 과정이 개설되기도 했다.

대구는 흔히들 보수적인 도시로 부르지만, 대구의 젊은이들은 새로운 실험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열정적인 게릴라'라고 불리는 이들이 있어서 우리 도시는 그나마 숨을 쉬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후배, 동생들의 신나는 도전을 많은 사람들이 응원해 주기 바란다. 그리고 9월 5일 자연과학고에서 개막하는 '제2회 대한민국도시농업박람회'에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 대구의 힘을 보여주시기를 바란다.

전충훈/대구사회연구소 협동경제사업단 전략사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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