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말복 날 청도에서 열리는 '개나 소나 콘서트'에 간 일이 있다. 날씨가 좋았다. 대구경북의 내로라하는 개나 소들이 총출동하지 않았을까? 하얀 개, 노란 개, 복슬 개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소들도 콘서트를 감상하러 마실 나와 있었다. 검은 소, 누런 소, 얼룩 소들이 보였다. 하나같이 타고난 행운으로 일찌감치 인간 세상에서 호사를 누리는 팔자 좋은 놈들이었다. 목숨이 촌각을 다투는 말복에도 곰탕이나 보신탕으로 사라지지 않고, 한갓지게 음악회나 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막이 올랐다. 이런저런 소개가 끝나고 70인조 오케스트라가 나왔다. 베토벤이었다. 어쩐지 관객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개나 소도 베토벤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사람이 감상하기에는 주위가 너무 산만하고, 개나 소가 감상하기에는 선곡에 무리가 있었다. 하품하는 개에 끌려 주인들이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먼저 나갔던 개는 벌써 주인을 데리고 들어오는 중이었다.
개그는 어떨까? 기획자와의 인연으로 중앙 무대에서 몸값이 제법 나간다는 개그맨들이 우정 출연을 했다. 그런데 무대와 관중석이 너무 멀었다. 더구나 여름날의 야외가 아닌가. 사람은 집중하기가 어렵고 개나 소는 대사 이해가 난이했다. 개들이 싫증을 내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주인들이 또다시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통닭이나 먹을까?" 데리고 온 개도 소도 없는 나는 가방에서 통닭을 끄집어냈다. 맥주를 곁들여 다리를 뜯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개나 소나 콘서트에 와서 닭을 먹는다? 바로 옆 자리에서는 온 가족이 돼지족발을 뜯고?'
콘서트의 순수한 의도는 '동물 사랑'일 터였다. 나아가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일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자리에 없는 개나 소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더위에 지친 인간들에 의해 보신탕이나 곰탕으로 사라진 놈들은 어찌할까. 진정한 약자는 이 자리에도 못 오는, 병들고 버림받은 존재들이 아닐까.
프로그램이 얼추 끝나가는 모양이었다. 출연자들이 모두 나와 행사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주인의 무릎에 기대어 졸고 있던 개들이 부스스 눈을 떴다. '웬 소란이냐'는 듯 인상을 쓰더니 오줌을 눌 태세였다. 암놈은 얌전히 쪼그려 앉으면 되지만, 수놈은 나무 쪽으로 가서 다리를 치켜들어야 했다. 요의(尿意)도 전염이 되는 것일까. 여기저기서 개들이 오줌을 누기 시작했다. 수놈들이 더 가관이었다. 앞, 뒤, 오른쪽, 그 옆, 깃발처럼 다리를 번쩍번쩍 치켜들었다. 오늘의 행사 중 하이라이트였다. 박수라도 쳐야 할 판이었다.
小珍/에세이 아카데미 강사 giok04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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