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상해요, 학교에 못 가서…."
26일은 이수지(가명'28'여) 씨가 다니는 4년제 대학의 개강일이었다. 그러나 이 씨는 병원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씨는 "대학 동급생들로부터 '언니, 오늘 왜 학교 안 왔어요?' '휴학했다고 들었는데 무슨 일이에요?'라는 전화가 왔었다"며 속상해했다.
이 씨는 북한에서 목숨을 걸고 한국으로 온 새터민이다. 하지만 이 씨는 지금 한국으로 넘어올 때보다 더 큰 고비를 맞고 있다. 갑자기 발병한 직장암이 간까지 전이돼 목숨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찾기 위한 탈북
이 씨의 고향은 함경북도 청진이다. 2003년에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당에서 지정한 대로 한 방직공장에서 일했다. 열심히 적응하려 했지만 공장 일은 이 씨의 적성과 전혀 맞지 않았다. 아무리 일해도 살기 어려운 북한의 현실과 평생을 공장에서 일만 하다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맞물리면서 이 씨는 중대 결심을 하게 된다.
"북한을 탈출하기로 결심한 건 2006년이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서 산다는 것이 너무 절망적이었어요.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결국 가족 몰래 북한을 탈출했어요."
이 씨는 2006년 탈북 후 중국으로 건너갔고 태국을 거쳐 3년 만인 2009년 한국으로 입국했다. 목숨을 건 탈출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고향에 계신 부모님 생각이 날 때였다. 통일되기 전까지는 다시 볼 수 없다는 절망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과 통일이 되면 번듯한 모습으로 부모님을 만날 수 있을 거란 희망으로 꾹 참았다.
2009년 11월 한국에 온 뒤 하나원의 정착 교육을 받고 6개월 만에 이 씨의 정착지가 결정됐다. 바로 대구였다. 이 씨는 대한민국 지도를 펼쳐놓고 대구의 위치를 찾아봤다. '남한에서 가장 더운 도시'라는 이야기에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자신이 대구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것인지를 마음속으로 그리며 힘을 냈다.
◆'백의의 천사'는 정녕 꿈인가
간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건 한국에 도착한 직후였다.
"탈북한 뒤 인천공항에 내리면 맨 처음 가는 곳이 병원입니다. 병원에서 건강상태를 확인하거든요. 그때 봤던 간호사 언니들의 모습이 아주 예뻐 보였어요. 말 그대로 '백의의 천사' 같았죠. 그때 간호사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대구에 내려온 이 씨는 대학 간호학과에 입학하려고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간호학과 가기가 어렵다는 말에 2011년 대구의 한 대학 중국어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간호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해졌다. 단지 입국할 때 만난 간호사의 모습 때문만은 아니었다. 북한에서 받지 못했던 사랑을 한국에 와서 많이 받은 만큼 간호사가 돼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이 씨는 다시 간호학과에 도전했고, 지난해 마침내 성공했다. 하지만 새로 시작한 공부는 쉽지 않았다. 주변에서도 "남한에서 공부하기 어려울 텐데…"라며 걱정했지만 이 씨는 악착같이 공부했다. 이 씨에게 학교는 즐거운 곳이었다. 동급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어울려 공부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재미있었다. 피곤함에 지쳤다가도 학교에만 가면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러던 중 올 들어 이 씨는 유독 왠지 모를 피로감에 시달렸다. 혈변도 시작됐다. 이 씨는 '요즘 무리해서 대장 쪽에 탈이 조금 난 거겠지'라고 생각했다. 진료를 받고 싶었지만 어려운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선 잠시도 쉴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씨는 방학이 될 때까지 진료를 미루기로 했다. 그리고 방학이 시작된 지난달, 병원을 찾은 이 씨는 직장암 4기에 암세포가 간까지 전이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빨리 나아서 공부하고 싶어요"
이 씨가 직장암 진단을 듣고 난 뒤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다름 아닌 '학교를 다시 못 다니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었다. 이 씨는 "개강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그때까지 나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상황은 이 씨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우선 수술이 급해 이 씨는 이달 20일 직장암 제거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이었다. 문제는 간까지 전이된 암세포에 대한 치료를 받아야 하고,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하는 데까지 적어도 1년은 걸린다는 것이다. 이 씨는 '이러다 주저앉아 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병원비다. 이 씨의 수술비는 병원 측의 배려로 250만원 정도 나왔지만 이조차도 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직장암 검사할 때 낸 정밀검사비 80만원도 지인들로부터 빌려 낸 상태다.
이 씨는 새터민이면서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다. 매달 45만원의 지원비로 이 씨가 사는 임대아파트 월세 10만원을 비롯한 각종 생활비를 해결하고 있다.
이 씨의 본격적인 치료는 사실 수술 후부터다. 앞으로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 등 많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 수술비에다 치료 비용까지 적잖은 돈이 필요하지만 변통할 방법이 없다. 지인들이 아무리 도와준다 하더라도 매번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 씨를 도와줄 수 있는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씨는 암을 빨리 털어내고 다시 공부를 하고 싶다. 열심히 공부해 간호사가 될 생각에 누워있는 것이 답답할 때가 많다.
"마음 같아서는 항암 치료받으면서 수업도 받고 싶지만 의사선생님들께서 말리셨어요. 1년 정도 푹 쉬면서 건강을 회복해야 공부도 하고 간호사도 될 수 있다면서 설득하셨죠. 하지만 마냥 쉬고만 있진 않을 거예요. 지난 학기 배웠던 것들도 다시 복습하고 영어 공부도 시작할 거예요. 제가 많이 아파 봤으니 환자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치료를 도와주는 좋은 간호사가 될 자신이 있어요."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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