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는 '생명문화'의 고장이다. 생명의 탄생을 상징하는 태실과 땀 흘리는 삶의 풍경, 죽음을 대표하는 성산동 고분군이 공존한다. 성주군이 펴낸 관광 가이드북의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세종대왕자태실'이다.
주말을 이용해 생명존중의 정신이 깃든 태실을 가보기로 했다. 대합실 안은 더위를 피해 들어온 사람들로 복닥거렸다. 한쪽 바닥에 주저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정겹다. 고무줄과 파스를 든 행상이 할머니들 사이를 분주하게 헤집었다. 붙이는 파스는 석 장에 5천원. 늘 허리나 무릎이 아픈 할머니들에게 맞춤형 상품이다. 찾는 사람도 꽤 많다.
◆세종대왕자태실과 선석사
세종대왕자태실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왕자태실이 군집을 이룬 장소다. 세종대왕의 왕자 18명과 손자인 단종 등 태실 19기가 모여 있다. 세종대왕자태실로 가는 버스는 주말과 공휴일에만 운행한다. 성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월항면 인촌리로 가는 버스가 하루 세 차례 연장 운행된다. 오전 10시 버스에 올라탔다. 요금은 2천300원. 태실까지는 25분 정도 걸린다.
버스에서 내려 선석산 아래 태봉 정상까지 솔숲을 따라 올라가면 널찍한 잔디밭에 태실들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태실은 왕자나 공주가 태어났을 때 그 태(胎)를 묻어두는 곳이다. 지하에 석실을 만들어 태를 담은 태 항아리와 지석을 넣고 지상에는 기단석과 중동석, 개첨석을 올린다. 네모난 기단석은 땅을, 연꽃을 새긴 둥근 뚜껑은 하늘을, 그 사이에 있는 중동석은 인간을 상징한다.
수양대군의 태비는 거북 등 위에 가봉비를 세운 반면, 태실 5기는 윗부분이 훼손되고 대석만 남아있다.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훼손된 안평대군과 금성대군, 한남군, 영풍군, 화의군의 태실이다. 이곳에 있던 단종의 태실은 문종이 즉위하면서 가야산 자락 법림산으로 옮겨졌다. 이곳에 있는 태실은 법림산으로 옮기면서 남겨진 석물을 복원한 것이다. 수양대군은 법림산으로 옮긴 단종의 태실을 철저히 파괴했고, 단종의 태도 함께 사라졌다.
태실에서 200여m가량 내려오면 선석사 주차장이 나온다. 선석사는 세종대왕자태실의 수호사찰이다. 사찰 앞마당은 물장난을 하는 아이들로 시끌벅적했다. 선석사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아이들이다. 법당 앞에 진열된 기와에는 예쁜 꽃 그림이 그려져 있다. 아이들과 꽃, 웃음소리. 이보다 생명력과 더 잘 어울리는 것이 있을까.
◆농부의 땀으로 물드는 참외
성주읍에서 멀지 않은 곳에 농부 김당림(51)씨가 참외농사를 짓는다. 정오가 되면 비닐하우스 안의 온도는 50℃에 육박한다. 뜨거운 열기와 참외가 내뿜는 습기까지 더하면 비닐하우스는 한증막이나 다름없다.
참외는 농부의 땀을 먹고 자란다. 참외 농사는 다른 작물에 비해 손이 많이 가고 까다롭다. 참외가 열리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5개월. 10월에 파종과 접목을 하고 11월에 옮겨 심은 뒤 70~90일이 지나면 수확한다. 김 씨는 "출하철이 되면 하루에 2시간도 못 잔다"고 했다. 오전 3시 30분이면 일어나 물을 주고 새벽부터 참외를 수확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마 기간에 당도가 떨어진 참외는 입추가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지면 제맛이 난다.
참외 품종은 오복, 오복플러스, 부자꿀, 스마트, 만리장성 등 10여 개에 이르고, 제각기 맛도 다르지만 구별하긴 쉽지 않다. 스마트는 육질이 좋은 데 비해 흰가루병에 약하고 오복플러스는 흰가루병에는 강하지만 당도가 다소 떨어진다고. 하지만 참외 겉면에 붙은 품종 스티커는 90% 이상이 '오복'이다. 다른 품종 스티커는 거의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참외농사를 지은 지 23년 됐다는 김 씨도 "먹어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맛있는 참외는 육질이 단단하고 꼭지가 신선한 것, 골이 깊은 것도 좋아요. 색깔이 너무 진한 것은 신선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죠."
◆창작과 체험을 함께, 금수문화예술마을
금수면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금수면에는 예술인들의 창작 스튜디오이자 주민들의 문화체험공간인 금수문화예술마을이 있다. 성주읍에서 금수면까지는 하루 5차례 버스가 오간다. 금수면소재지에 들어서자마자 내리면 학교 건물이 바로 보인다. 넓은 운동장에는 잔디가 깔려 있고, 담을 따라 아름드리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웠다. 이곳은 2000년 폐교를 개조해 문을 열었다. 연극과 풍물, 춤 등을 위한 스튜디오 2곳과 작가들의 회화실, 도예실, 야외공연장을 갖췄고, 체험 공간도 마련돼 있다. 숙소 겸 식당이 있어 며칠씩 머무는 것도 가능하다.
마침 대구의 한 교회에서 온 청소년들이 머물고 있었다. 학생들은 오후 늦게 열리는 공연 준비에 한창이었다. 기타와 드럼, 키보드를 연주하는 모습이 서툴지만 흥겨웠다. 작가들은 작품 활동을 하며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마을 주민들을 위한 문화교육 프로그램도 참여한다. 이곳은 예술 강사 200여 명을 경북 곳곳에 파견하는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역할도 하고 있다.
미술 작업실에는 이은재(42) 작가가 작품 활동에 열중하고 있었다.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작업실 안에는 도자기 가마와 미술 도구, 작은 침대, 컴퓨터 등도 놓였다. "조용하고 혼자 작업하기 좋아요. 자연환경을 활용하는 작품 활동을 하기엔 안성맞춤이죠." 이 작가는 두루마리 휴지를 1년 이상 비에 맞히고 햇볕에 말려 자연의 흐름이 고스란히 남는 작품을 만든다. 이곳 최재우 촌장은 "주민들은 풍물 소리가 듣기 좋고 젊은 친구들이 오가니 활기가 넘친다며 흐뭇해한다"고 말했다.
◆아라월드에서 만끽하는 물보라
오후 4시 10분 금수면에서 가천면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버스를 탔다. 20분 정도 달리면 가천정류장이다. 5분 정도를 더 달려 중산리를 지나자마자 아라월드 진입로에서 내렸다. 아라월드는 지난 5월 문을 연 성주호 수상레저단지다. 좁은 도로를 따라 오르막을 오른 뒤 성주호를 감상하며 20분을 더 걸으면 아라월드가 나온다. 호숫가에 설치한 물놀이장에서 수십 여명의 아이들이 왁자지껄하며 첨벙거렸다.
물놀이장 옆에는 수상레저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선착장이 있다. 수상스키를 타보기로 했다. 첫 경험이다. 조귀흠 대표가 육상에서 안전수칙과 간단한 수신호를 설명한 뒤 일어서는 연습을 시작했다. 발을 '11자'로 펴고 무릎을 굽혀 모은 뒤 엉덩이를 발목 쪽으로 당기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다. 말이 그렇다는 거다. 현실은 달랐다. 꽉 끼는 구명조끼를 입고 물에 누워 수상스키를 물 밖으로 세웠다. 준비 자세가 끝나고 막상 보트가 출발하자 몸이 제멋대로 논다. 어깨는 빠질 것 같고 엉덩이는 물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주저앉은 다리로 엉거주춤 끌려가다가 물속에 처박히길 수차례.
조 대표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우지 말고 물에 맡기라"며 격려하지만 어디 말처럼 쉬운가. 저질 체력과 둔한 운동신경을 원망할밖에. 빨리 돌아가고 싶은데 선착장은 왜 그리 까마득한지. '어푸어푸'하며 어렵사리 돌아오니 조 대표가 정확한 원인을 지적했다. '복.부.비.만'. "배가 나온 분들은 다리를 모으기 힘들어 적응이 쉽지 않습니다. 배우는 속도는 하위 30% 정도네요." 그렇게 힘들게 물 밖으로 나왔는데도 '다시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매력 있다.
아라월드에서 김천시 증산면까지 하루 두 차례 버스가 운행한다. 오후 7시 10분 가천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니 50분 정도 걸렸다. 요금은 3천원.
글·사진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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