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무조건 에어컨만 끄면 되나

36, 7℃를 넘나드는 무더위에 에어컨을 끄고 근무하라는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쯤 되면 일을 하지 말라는 소리다. 공무원들은 어쩔 수 없이 사무실에 나와서 무더위와 씨름을 한다. 블랙아웃(도시 전체가 암흑으로 빠져드는 대정전)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니 따를 수밖에. 국가 경제가 엉망이 돼선 안 된다는 애국심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 동참하긴 하지만 이건 뭔가 잘못됐다.

경제가 살려면 산업체에 전력이 원활히 공급돼야 한다는 건 상식도 아니다. 국가 시스템이 원활히 돌아가려면 공무원이나 공공 기관 종사자들의 근무 환경이 쾌적해야 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그런데도 정부는 공장 가동 중단을 닦달하고, 공무원과 민원인들이야 짜증 나서 죽든 말든 전력 소비량을 줄여 예비율 올리기에만 급급하다. 전력난을 해결하기 위한 모든 책임을 최종 수요자에게만 떠넘겨 버린다. 효율적인 대체 방법이 분명히 있는데도 말이다.

본지는 지난 6월 '블랙아웃 파고를 넘자'는 시리즈를 통해 단'장기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그중에서도 지금 바로 쓸 수 있는 카드가 비상 발전기 활용이다.

전국에 있는 비상 발전기는 대략 21만 대로 추산되고 있다. 이 발전기로 생산할 수 있는 전력은 1천800만㎾. 원전 1기가 생산하는 전력이 100만㎾이니 원전 18기의 생산력을 우리는 갖추고 있는 셈이다. 원전 18기를 건설하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투입돼야 하는데다 원전에 대한 불안 심리까지 겹쳐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원전 18기를 추가로 갖고 있는 것과 비슷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나 정작 활용은 거의 못 하고 있다. 대구시는 본 청사에 지난 12일부터 23일까지 오후 전력 피크 시간대 한 시간가량 한전이 공급하는 전력을 차단하고 비상 발전기로 전력을 공급했다. 그러나 400㎾급인 이 비상 발전기로는 엘리베이터 및 컴퓨터 가동 등 업무 수행에 필요한 기본 전력을 공급할 수 있을 뿐 에어컨 가동은 불가능했다. 현행 규정상 비상 발전기는 정전에 따른 비상시에만 가동하도록 돼 있고, 시 청사 비상 발전 설비도 이 기준에 맞춰 설치돼 있었기 때문.

비상 발전기가 제 역할을 하게 하려면 우선 건축 전기 설비 기준과 소방법을 바꿔야 한다. 그래서 전력 피크 시간대에는 비상 발전기를 가동하도록 해 한전이 공급하는 전력 사용량을 줄이면 블랙아웃은 일어나지 않는다. 여기다 지금은 한전이 공급하는 전력과 비상 발전기가 생산하는 전력을 같이 사용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게 돼 있다. 이를 고쳐서 동시에 사용 가능하게 한다면 전력 수용자들의 불편과 불이익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대구시 청사에 설치된 비상 발전기로 전력 피크시간대에 400㎾의 전력을 생산, 업무용으로 쓰게 하고 모자라는 만큼만 한전 것을 사용하면 에어컨을 끄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관련 규정만 바꾸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기존 건축물에 이 시스템을 적용하려면 상당한 예산이 필요하다. 이를 수요자가 부담하게 한다면 아무도 따르지 않을 것이다. 이 비용은 국가가 지불하는 것이 맞다. 원전을 짓는 사회'경제적 비용을 생각해 보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는 불문가지(不問可知).

크게 양보해서 이 돈이 걱정된다면 앞으로 새로 짓는 건축물들에는 반드시 이 시스템을 설치하게 하자. 이미 설치된 설비를 바꾸려면 비용이 많이 들지만 신규로 설치할 때는 비용 부담이 거의 없다.

나아가 비상 발전기를 가동, 전력을 사용하면 이를 대체 전력으로 생각해 한전이 적절한 가격에 보상해야 한다. 현재처럼 쥐꼬리만 한 유류비 지원에 그치고, 그나마 공공 기관에는 올해부터 지원금을 없애 버렸는데 어느 건물주가 비상 발전기를 가동하겠는가.

비상 발전기에도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설치만 돼 있지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 한국전력기술인협회가 1천㎾ 이상 전력을 사용하고 있는 기업, 건물 등 645곳을 조사해 봤더니 비상시 전력 생산 여부를 알 수 있는 '부하 테스트'를 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비상 발전기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와 같다. 여기에 대해서도 정부 차원에서 시스템을 정비해 부실 사태를 없애야 한다.

올겨울에도 블랙아웃에 대비한다고 난방 가동 중단하고 공장 세우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제도 정비'보완에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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