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동순의 가요 이야기] '분단의 희생양' 가수 계수남(하)

좌익 조직 연루 옥고 치러…김도향'하수영 배출

해방시기 계수남의 삶에서 하나 특기할 만한 사실은 1947년 고려레코드에서 발매한 '흘러온 남매'(김해송 작사'작곡)에서 이난영, 남인수, 노명애, 심연옥이 노래를 부르고 이난영, 계수남이 대사를 맡은 것입니다. 계수남은 이 음반에서 분단 이후에도 38선 북쪽에 남아있는 아버지 역할을 맡아 비통한 목소리로 대사를 읊어갑니다.

너희들은 남쪽에서 끝까지 참어 다오/ 이 애비는 북쪽에서 힘차게 싸우겠다/ 다 같은 혈족이요 우리나라 민족이 아니냐/ 원수 같은 삼팔선을 우리의 힘으로 뚫고야 말 것이다.

이 음반은 K.P.K.악단에서 공연한 악극대본 '남남북녀'를 곧바로 활용한 내용입니다. 계수남은 이 무렵에 이미 좌파조직에 가담한 벗들과 자주 만나 교류하면서 가극동맹조직에 은밀히 가입한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이것이 계수남 생애에서 비극과 불행의 씨앗이 되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미군정하에서 공산주의 활동이 금지되면서 상당수의 좌파지식인 예술가들은 38선을 넘어서 북으로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계수남은 어쩐 일인지 서울에 그대로 잔류해 있다가 말하자면 정치적 불행을 겪게 되지요.

몹시 불안하던 분단 직후의 정치적 기류는 기어이 동족상쟁의 무참한 살상전으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대다수의 사람이 살길을 찾아 남쪽으로 피란길을 떠날 때 계수남은 어쩐 일인지 서울에 그대로 잔류해 있었고, 공산군들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 북에서 내려온 가요계의 옛 동료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콜럼비아레코드사 시절 계수남에게 가사를 써주었던 조명암도 월북 이후 처음으로 서울에 내려왔고 계수남을 만나 새로운 시대의 삶에 적극 협조 부응할 것을 당부합니다. 좌파조직의 친구들은 계수남이 무대에 오를 때마다 배급쌀을 주어서 환심을 얻었습니다. 그리하여 계수남은 공산당의 여러 정치적 홍보행사에 참석해서 북한군가와 가요들을 불렀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아직도 숨어있는 좌익계 예술인들을 규합하여 적색선전 예술 부문을 담당하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작사가 조명암은 계수남을 평양으로 보내 공연무대에 오르도록 했습니다. 여기에다 조명암은 그 혼란의 와중에 소련 모스크바로 음악기행까지 다녀오도록 후원해 주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행적이 계수남 생애에서 결정적인 불행의 빌미가 되었던 것입니다. 영국속담에 '자는 개를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해서 공연히 화를 자초한다는 뜻을 암시하고 있지요. 아무튼 계수남은 1951년 공안기관에 체포되어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 위반', 즉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형언도를 받고 마포형무소에 수감이 되었습니다.

계수남은 마포형무소 안에서 수감자들로 구성된 '계수남과 그 악단'을 조직하여 악장으로 활동하면서 그 힘든 옥중생활을 이겨간 것은 이채롭습니다. 이후 특사령으로 사형에서 20년으로 감형되어 복역하던 중 형기에 대한 재심신청을 냈는데 이때 가요계의 박시춘, 이난영, 장세정 등이 법정에 직접 출두하여 옛 동료 계수남을 돕는 증언을 하고 탄원서를 제출하는 우정을 보여주었습니다. 마침내 법원은 계수남의 형량을 3년으로 감형시켜주었지만 계수남은 이미 7년이나 수감생활을 했던 터라 4년 세월을 헛되게 옥중에서 날려버린 결과가 되었지요. 재심 첫 공판이 열렸을 때 계수남은 전쟁 직후 남하하려고 했으나 한강교가 끊어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창신동 처가에 머무르게 되었다고 변명했습니다. 그가 옥중에 있는 동안 아내는 외아들을 데리고 다른 남성에게 개가해 버렸습니다.

출옥 후에는 가톨릭에 귀의해서 성가극, 반공극 등에 출연합니다. 1960년대 초반에는 계수남음악학원을 열어서 가수 김도향, 하수영, 작곡가 임종수 등을 배출했습니다. 계수남합창단도 조직해서 운영했고, 1976년에는 지구레코드에서 LP독집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여기에는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12곡이 수록되어있습니다. '세월이 가면'과 같은 노래는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은 가수의 발효된 삶이 그대로 느껴지는 매우 서늘하고도 감동적인 창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계수남은 2004년 83세를 일기로 한 맺힌 삶을 마감했습니다. 영남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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