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민나 해변의 한더위는 붉은 태양을 석쇠 위에 올려놓고 굽는 것처럼 뜨거웠다. 바다 색깔은 남들은 에메랄드빛이라며 호들갑을 떨지만 촌놈인 내 눈에는 올갱이를 삶아 낸 파란 물처럼 그냥 한 모금 마시고 싶을 정도로 청량하고 싱그러웠다. 바닷물 온도는 기가 막히게 딱 맞게 덥혀져 우리나라 동해의 차가운 기운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스노클링을 하고 물속으로 들어가면 열대어들이 친구인줄 알고 살갗을 간질이기도 하고 어서 따라 오라며 앞서서 달리기도 한다. 바나나 보트를 타고 먼 바다를 신나게 달리고 온 아이들은 오후 1시로 예약해 둔 나가는 배 시간을 2, 3시로 미룰 수 없느냐고 떼를 썼지만 이미 잡혀 있는 스케줄은 바꿀 수가 없었다.
어차피 남의 나라에 구경을 왔으면 시간을 아껴 되도록 많은 것을 보는 것이 남는 장사다. 점심은 휴게소 수산물직매장에서 초밥 몇 개로 때우는 것도 알뜰 관광의 요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츄라우미 수족관으로 달려가기 위해선 마음에 점찍듯 점심을 빨리 먹어 치워야 한다. 길이 7.9m짜리 고래상어 세 마리와 대형 쥐가오리 네 마리가 자연광 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선 이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
고래상어 중 가장 큰 '진타'는 18년째 이 수족관에서 살고 있다. 그의 장수 기록은 이미 기네스북에 오른 지가 몇 년이나 지났다. 동료 중에 배필이 있는 지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그동안 새끼를 낳아 기르지 못했으니 어찌 가정의 즐거움을 알겠는가. 암컷과 또 새끼와의 정을 느끼지 못하는 수족관 속의 삶을 구경하는 인간들은 즐거워하겠지만 상어에겐 감옥이자 지옥이리라. 자유를 박탈당한 인생도 불쌍하거니와 바다를 잃은 어생(魚生)도 안쓰럽기는 마찬가지다. 하나 특이한 것은 이 수족관의 7천500t에 달하는 해수의 수압을 견딜 수 있는 아크릴 패널의 길이는 22.5m, 높이는 8.2m, 두께는 60㎝로 세계 최대 규모다. 고래상어를 가두고 있는 철조망이 이리도 두껍고 견고하다. 그것도 받쳐주는 철제 기둥 하나 없이 맨몸으로 버티고 있으니 역학 공학의 승리라 해도 그리 과한 찬사는 아니다.
우린 오후 4시가 조금 지나서 입장권을 끊었다. 1인당 1천800엔인 입장료가 4시가 지나면 1천280엔으로 할인되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나 '아는 것이 힘'이란 말은 모두 돈으로 연결된다. 이건 정말이다. '찬탄'과 '가련'이 교차되는 수족관도 끼니 때가 되어 상어에게 먹이 주는 광경을 보는 것을 끝으로 서둘러 나왔다.
이제 간가라 협곡의 마지막 팀으로 입장하기 위해선 서둘러야 한다. 간가라는 원래 바다 밑 산호 더미가 융기한 동굴이었는데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에 붕괴되어 협곡을 이룬 특이한 지형이다. 옛날 산 속의 작은 구멍에 돌을 던져 넣었더니 돌 굴러가는 소리가 '간가라 간가라'하고 한참이나 들렸다고 한다. 그래서 동굴의 이름을 간가라란 명칭을 붙였단다. 지구 상의 여러 민족들이 하나의 풍경과 물상에 이야기 옷을 입히기를 좋아한다. 그것을 스토리텔링이라 말하는데 오키나와 사람들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간가라 협곡 속엔 두 개의 동굴이 있다. 동굴 안에 여인의 유방과 엉덩이를 닮은 종유석이 있는 곳을 여신(女神)의 동굴 즉 '이나구동'이라 불렀다. 아이 낳기를 원하는 여인은 이곳에서 둔부를 만지며 빌었다고 한다. 또 인근 '이키가동'은 남성을 상징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면서도 구색 갖추기 명목으로 남편처럼 애인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간가라 협곡을 빠른 걸음으로 돌면 20~30분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입장료를 1인당 2천엔(2만4천원)씩 받아먹었으니 가이드 한 사람이 20명을 데리고 다니며 1시간 20분이나 질질 끈다. 백열전구 한 개 정도면 훤해질 동굴로 들어갈 땐 냄새나는 석유램프 20개에 불을 붙여 "발밑을 조심하세요"를 연발한다. 돈 빼 먹는 기술은 우리가 배워야 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간가라 협곡은 강원도의 대금굴(1만2천원), 환선굴(4천원)이나 제주의 만장굴(2천원), 김녕굴(2천200원)에 비하면 십 분의 일에도 못 미칠 정도로 조잡하고 볼 게 없었다. 오키나와 여행에서의 최대 실수가 비싼 돈 주고 간가라 협곡에 들어간 것이다.
미야코 호텔 앞 식당에서 300엔짜리 오키나와 명주 오리온 생맥주를 마시면서 3 곱하기 8은 24하고 구구단을 외웠다. 생맥주 8잔을 한 방에 날렸구나. 아이고 아까워라.
수필가 9hwal@hanmail.net
댓글 많은 뉴스
12년 간 가능했던 언어치료사 시험 불가 대법 판결…사이버대 학생들 어떡하나
[속보] 윤 대통령 "모든 게 제 불찰, 진심 어린 사과"
한동훈 "이재명 혐의 잡스럽지만, 영향 크다…생중계해야"
홍준표 "TK 행정통합 주민투표 요구…방해에 불과"
안동시민들 절박한 외침 "지역이 사라진다! 역사속으로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