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본능은 예뻐 보이려고 한다. 옷가게를 지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옷도 예사롭게 보지 않는다. 곁에 있는 여인이 우아하고 예쁘다고 하면 "그럼 나는?" 하고 시샘하는 반사적 응대를 보낸다. 나무랄 수 없는 여심(女心)이리라. 시인은 부용(芙蓉)이 예쁘다고 말하는 사람들 말에 시샘하며 경쟁의식을 갖는다. 다음 날 아침 제방 둑을 걸었더니 부용을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읊은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부용이 피어올라 연못 가득 붉어지니
사람들 부용꽃이 나보다 예쁘다 해서
아침에 제방 둑 걸었더니 부용꽃 보지도 않네.
芙蓉花發滿地紅 人道芙蓉勝妾容
부용화발만지홍 인도부용승첩용
朝日妾從堤上過 如何人不看芙蓉
조일첩종제상과 여하인불간부용
【한자와 어구】
芙蓉花: 부용꽃/ 發滿: 만발하게 피었다/ 地紅: 땅이 붉다/ 人道: 걷는 사람들/ 勝: 낫다고 한다/ 妾容: 내(자신의) 얼굴/ 朝日: 다음 날 아침/ 妾從堤上: 내가 제방을 따라서/ 過: 걷다/ 如: 같다/ 何人: 누구도/ 不看: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나보다 부용꽃을 예쁘다 하네'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운초(雲楚) 김부용(金芙蓉'1805~1854 추정)이다. 19세에 50세나 차이가 나는 김이양(金履陽'1755~1845)의 소실(小室)이 되었다. 황진이, 이매창과 함께 조선 3대 시기(詩妓)로 불린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부용이 피어 연못 가득 붉으니/ 사람들 부용꽃이 나보다 더 예쁘다네/ 아침에 제방 따라 걸었더니/ 사람들은 부용꽃을 보지 않네'라고 번역된다.
운초는 문학적인 자부심이 대단하여 자신을 천상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했다. 발랄하고 다채로운 작품을 써서 남자를 무색하게 했다는 평을 들었다. 그의 작품집인 '운초집'에 실려 있는 대부분의 시는 규수문학의 정수로 꼽히고 있다. 33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한 후 쓴 그녀의 시는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시인은 사람들이 예쁘다고 하는 연꽃을 두고 시샘하고 있다. 부용이 연못 가득 붉게 피었는데 사람들이 부용이 예쁘다고 말한다. 다음 날 아침 제방 따라 걸어가 보니 많은 사람들이 부용은 보지도 않고 자기만을 쳐다보았다. "그렇지, 분명 내가 부용보다 더 예쁘지"라고 말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예쁘게 보이려는 여심을 그대로 나타내 보인 작품이다. 화장을 예쁘게 하는 것도, 옷이며 장신구를 몸에 예쁘게 치장하는 것도 다 여성의 본능이자 반사적인 표현 방법이다. 종장 처리의 기막힌 기법을 만나게 된다. 다음 날 아침 왜 사람들은 부용을 쳐다보지도 않고 시인인 화자만을 쳐다보는 것일까라는 구절에서 유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부용은 조선시대의 여류 문인이다. 호는 운초(雲楚). 가무'시문(詩文)에 뛰어나 정조 때 평남 성천(成川)에서 이름 높은 기생이었으나 뒤에 김이양(金履陽)의 소실로 들어갔다. 운초가 남편을 애도하는 시에서 "15년 함께 지내오다 오늘 돌아가시니/ 백아가 이미 끊은 거문고 내 다시 끊노라"라고 한 시구를 보면 운초에게 김이양은 남편이기보다 그의 재능을 인정해 주던 '지기'(知己)였다.
유고집(遺稿集)에 '운초집'(雲楚集)이 있고, 일제강점기 때 김호신(金鎬信)이 편찬한 '부용집'(芙蓉集)이 전한다. 여기에 수록된 시 30여 수는 규수문학의 정수로 꼽힌다. 작품에 '유회'(遺懷), '대황강노인'(待黃岡老人), '오강루소집'(五江樓小集), '억가형'(憶家兄), '증별금영'(贈別錦營), '삼호정만조'(三好亭晩眺), '증령남노기'(贈嶺南老妓) 등이 있다.
장희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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