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호동락] 이불 속 고양이

요즘 한동안 계속된 장마철 날씨에, 엄두도 못 내고 벼르기만 하던 이불 빨래를 드디어 했다. 마땅히 이불을 널만한 베란다나 옥상이 없는 집이기에, 볕이 잘 드는 위치에 의자 2개를 적당히 간격을 벌려 놓은 다음, 이불이 잘 펼쳐지도록 의자머리에 각각 이불의 양쪽 끝을 걸쳤다. 잠시 후, 널린 이불 옆을 지나가며 의자에 손을 집어 넣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복슬복슬하고 몽칼거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이 느낌은 다름 아닌 체셔다. 한여름의 높은 온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불로 꽁꽁 싸매어진 그 공간을 행여나 놓칠세라 냉큼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것이다. 덥지 않을까 싶지만 이불을 살짝 들어 눈을 마주치면 너무나 편안한 자세로 자리 잡은 채, 왜 허락도 없이 자신의 공간을 훔쳐보느냐는 듯 다소 심기가 불편해진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이렇게 이불을 널어놓은 의자는 체셔의 단골 지정석이다. 워낙 애용하는 자리이기에 가끔은 다 마른 이불을 개키려고 하다가도 거기 머물고 있는 체셔 때문에 하루나 이틀 정도 더 널어두기도 한다. 요즘은 한여름 날이니만큼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더위를 먹지는 않을까 염려되기도 하지만, 체셔도 더위 먹을 생각은 없는지 온종일 이불 속에 머무는 겨울철과는 달리 두어 시간 있으면 잠시 밖에 나와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인 후 다시 들어가서 잠을 청하곤 한다. 체셔의 이런 이불 사랑은 널어놓은 눅눅한 이불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폭신한 침대 위, 보드라운 담요, 그리고 층층이 개켜진 이불 틈 사이까지, 체셔는 언제나 이불과 맞닿은 자리를 고수한다.

어느 날 문득 방에서 자고 있을 체셔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침대 밑과, 장롱 안, 책상 선반 여기저기를 찾아보았지만 흔적도 없었다. 그 와중에 문득 눈이 멈춘 곳은 다소 울룩불룩해진 이불이었다. 설마 하고 이불을 들추자 그 안에선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있는 체셔가 있었다.

가족 중 그 누구도 체셔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는 사람이 없었기에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현장을 목격했다. 체셔는 조금 열린 방문의 틈을 자신의 얼굴로 밀어서 비집고 들어올 때처럼, 이불과 이불 사이에 얼굴을 들이밀어 일명 '땅굴'을 파기 시작했다.

꼬리만 남기고 몸을 다 집어넣는가 싶더니 다시 천천히 얼굴을 입구 쪽으로 돌리고는 자세를 잡고 누웠다. 처음에는 얇은 이불 틈만 들어간다 싶더니 어느 순간엔 두꺼운 이불도, 그리고 이불이 아닌 개켜놓은 요 틈 사이에도 몸을 비집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불 속에 자리 잡은 체셔를 들여다보면 나른함과 편안함으로 가득한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곤 한다. 자신의 몸에 딱 맞게 감싸진 이불 속에서 더할 나위 없는 안락함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생각해보면 나도 잘 때 한여름을 제외하곤 얼굴까지 이불을 푹 덮고 자야 마음이 놓이곤 한다. 얼굴을 내밀고 있으면 코끝에 차가운 공기가 느껴져 싫기도 하지만 이불을 푹 덮어썼을 때 느껴지는 폭신함과 따뜻함이 너무 좋다. 물론 잠이 들고 나면 이내 답답함을 느껴서 이불을 저 멀리 밀쳐 내버린다고는 하지만 잠이 들기 전까진 이불을 푹 덮고 있어야 잠이 잘 온다. 체셔 역시 나와 비슷하다.

처음에는 나처럼 이불에 폭 몸을 감싸고 있다가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이불 밖으로 몸이 나오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마치 자신의 몸을 숨겨야만 편하게 잘 수 있는 것처럼 이불 속에 있다가 잠이 들고 나서는 슬금슬금 몸이 밖으로 나와 어느 순간엔 허리까지 이불 밖으로 쭉 내민 채 무방비 상태로 단잠에 빠져 있다. 이런 모습을 볼 때면 어쩜 함께 사는 반려인과 반려동물 사이 아니랄까 봐 이런 것까지 서로 닮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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