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태 혹은 카드대란이라고 부르던 일이 벌어졌던 게 벌써 십 년쯤 전의 일이 되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다시 그런 공포감이 몰려오고 있다고 한다. '가계부채 위험도가 카드대란 당시 2배 수준'이 되었다는 언론기사를 접하게 되니 정말 제2의 카드대란이 오는 것인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단지 그뿐이다. 필자는 경제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그냥 그런가 보다'하거나 '잘 되어야 할 텐데'하고 막연한 걱정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카드대란 당시에는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사람들이 선택한 대책 혹은 해결책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카드 돌려막기였다.
언젠가는 터질 것을 알지만 그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돌려막으며 버텨야 했다. 그동안에는 윤택하고 풍요로운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최면을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파산에 이르고 수많은 신용불량자가 생겨났다. 만약 카드대란 당시 계속해서 돌려막기를 할 수 있도록 이용한도를 높여주고 돌려막기를 금지하지 않았다면 당장은 카드대란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기만 늦출 수 있었을 뿐 언젠가는 반드시 터져야 할 일이었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결국 신용카드 이용을 활성화해 세수를 늘리고 경제를 활성화하려던 정부의 시도가 오히려 서민과 나라를 위기 상황에 몰아넣은 셈이었다. 그래서 돌려막기를 막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 관련 시스템을 수정했다.
그런데 국가의 시스템은 어떤가? 이미 들어온 돈이 아니라 앞으로 들어올 돈을 예상하여 예산을 짜고 그에 맞춰 운영한다. 그런 일들이 국회와 정부에서 하는 일이다. 그런데 어느 분야에 어느 정도의 예산을 편성하느냐는 행정이 아니라 정치적인 일이다. 그나마 보수냐 진보냐 하는 정당의 성향에 따라 예산 편성이 달라지는 것은 신사적이다. 당장 무슨 일이 터져서 국민의 관심이 쏠리면 편성을 늘리고 조용하면 삭감이 된다. 특정 분야를 책임지는 정치인의 힘이 세면 더 받고 힘이 약하면 줄어든다. 국가의 예산 배정이 그런 이상한 논리, 하지만 가장 현실적인 논리에 따라서 돌려막기로 흘러선 곤란하다.
탄력적 편성이라는 말로 돌려막기라는 말을 대신할 수는 있겠으나 그 숨은 의미를 피해가기는 힘들 것이다. 결국 원칙에 의해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에 따라 예산안을 조정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원칙을 정하는 것은 정치인들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문화계에서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문화융성위원회'의 발족을 상당히 기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 현 정부에서는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니 당연히 예산 편성과 지원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문화계에서 정부에 무턱대고 지원을 늘려달라고 떼를 써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럴 경우 돌려막기 방식의 지원이 있을 수는 있겠으나 이는 지속 가능한 발전적인 방향이 아닐 뿐만 아니라 국가 균형 발전 측면에서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정부에서 문화융성위원회를 만든 만큼 최소한 그 이름값은 해야 한다는 점이다. 문화융성을 외치면서 지원이 정체되거나 준다면 논리적으로도 모순이 따른다. 지역에 대한 안배도 꼭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이지 서울민국이 아니다.
또한 한류에 대한 문화융성위원회의 관심도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민간에서 출발해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한류문화에 정부에서 과도하게 예산을 배정한다면 역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문화 분야에 배정된 예산은 크게 변한 게 없는데 특정분야 지원이 대폭 늘어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어느 한 분야만 융성해져서 상대적으로 소외받는 문화가 침체되거나 반발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고 우리 문화가 한류를 위한 문화, 즉 산업이나 돈의 가치로만 접근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문화나 예술로 돈을 벌 수 있는 것이지, 돈을 벌기 위해 문화나 예술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부디 돌려막기라는 방식으로 문화와 예술을 바라보지 않기를 바라며 문화융성위원회 또한 돌려막기용 위원회가 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기를 바란다.
안희철/극작가 art-pl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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