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무항산 무항심

"賢哉回也(현재회야) 一簞食一瓢飮(일단사일표음) 在陋巷(재누항) 人不堪基憂(인불감기우) 回也不改其樂(회야불개기락) 賢哉回也(현재회야)"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에 나오는 공자(孔子)의 말이다. 풀이하면 이렇다. "현명하다 회여! 한 소쿠리의 밥과 한 바가지의 물로 더러운 거리에 살면 사람들은 그 초라함을 견디지 못하는데 회는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않는구나, 현명하다 회여!" 가난한 가운데서도 수행과 학문에 열중한 제자 안회(顔回)에 대한 칭찬이다.

그런데 공자 자신은 그렇게 살았을까. 아니다.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는 자료가 있다. 공자는 위나라 영공(靈公)의 초청을 받아 관학에서 귀족 자제를 가르쳤다. 그 대가로 받은 연봉은 좁쌀 6만 말(90t)이었다. 이는 당시 278명이 1년간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청빈(淸貧)을 칭찬했지만 자신은 수범(垂範)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맹자(孟子)도 다르지 않았다. 아니 더 솔직했다. 그는 바른 정치의 요체는 경제적 안정 곧 '無恒産 無恒心'(무항산 무항심-경제적으로 안정이 안되면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이라고 직설(直說)했다. 그의 어마어마한 재산은 물질적 부의 효용에 대한 이 같은 열린 태도를 잘 설명해준다. 그가 제나라에서 경(卿)의 관직에 있을 때 받은 연봉은 공자의 150배나 됐다. 이를 현재 화폐가치로 따지면 100억 원에 달한다. 이뿐만 아니다. 현금 후원도 많이 받았다. 제나라를 떠나 고향으로 갈 때 경유지인 설나라와 송나라 임금에게서 무려 36㎏이나 되는 황금을 선물로 받았다. ('공자는 가난하지 않았다' 리카이저우)

'편의점 대법관' 김능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의 로펌 행(行)을 두고 말들이 많다. '무항산 무항심'이란 변론(?)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얘긴데 글쎄다. 대법관과 중앙선관위원장을 지냈고 부인이 편의점까지 운영하는 사람이 '무항산'이라면 그보다 못한 대다수 국민의 처지는 무어라고 표현해야 하나? 일각에서는 그가 편의점 일을 한 것을 두고 '서민 코스프레'아니었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그런 비판은 어쩌면 과도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계속해서 '편의점 아저씨'로 머무르기를 바라는 것은 일종의 도덕적 폭력이다. 하지만 쓴 입맛이 좀체 가시지 않는 것은 왜 일까. 명리(名利)에서 자유롭지 않은 범부(凡夫)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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