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와 기계의 공생, 어디까지 왔나?/장 델베크 지음/김성희 옮김/알마 펴냄
인간은 자연의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신체기능을 증대시키는 보철기구를 발명했다. 더 빠르게 달리기 위해, 더 멀리 보거나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몸을 보호하기 위해, 화살을 쏘기 위해, 글을 쓰기 위해, 먼 곳의 소리를 듣기 위해…. 인체를 대체하는 보철기구의 영역은 이제 뇌의 영역에까지 도달하고 있다.
첨단과학기술은 무엇을 가능하게 하며, 인체와 기계의 공생은 어느 수준까지 와 있는 것일까. 또 이 같은 공생이 윤리적으로는 어떤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 원래보다 강화된 인체의 세계는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인체와 보철기구의 공생은 인류문명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인도의 문헌 '리그베다'에는 기원전 1000년 이전에 이미 철제의족을 차고 전투에 참가한 비슈플라 여왕 이야기가 등장한다. 현대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보청기나 콘택트렌즈, 치아 임플란트, 컴퓨터와 인터넷 등은 엄밀한 의미에서 인류 대부분을 사이보그로 만들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치료용 혹은 보조용이라고 할 수 있다.
운동선수들이 더 나은 기록을 내기 위해 약물을 투여하듯 건강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보조기구를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팔다리를 대신하는 로봇 의수족은 체력의 한계가 없으며 근육의 피로를 회복할 시간도 필요하지 않다. 일부 사람들은 뇌에 전자칩을 이식해 고도의 지능이나 특별한 기억법, 비범한 지각력을 갖추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전장에서 군인들의 체력적 한계를 극복하게 해주는 다양한 보조장치도 이미 등장했다. 보철기구로 무장한 군인들은 지치지 않고 빠른 속도로 행군하며, 캄캄한 밤에도 적을 정확하게 찾아내고 사살한다.
책은 인공조직 이식이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 자체를 바꾸어놓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인공조직이 단순히 인체의 약하거나 낡은 부분을 보완하는 정도를 넘어 사용자의 의식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원래 인간에게는 훈련으로 도구에 적응하려는 능력이 주어져 있다. 톱질을 잘 못하는 사람이 톱질을 반복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톱과 나무재질의 특성을 익히고 동작을 유연하게 바꾸어나가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강화된 인공조직을 신체에 이식할 경우 인간은 천부적으로 키울 수 있는 능력을 버리고, 후천적으로 삽입한 인공조직 혹은 인공전자신호에 의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될 경우 어떤 사람에게는 몹시 힘들고 위험한 일이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사소하고 가벼운 일이 될 수 있다.
결국 보철기구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인류사회 전체에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산악도로의 '위험' 안내 표지판이나 '뜨거운 물' 주의경고가 누군가에는 가소로운 잠꼬대가 될지도 모른다. 이 지경이 되면 상식이나 통념, 법 역시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지은이는 사람을 '치료'하는 것과 사람을 '개조'하고 '강화'하는 것 사이에는 윤리적 단절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건강하고 충분한 재력을 가진 사람이 인공조직과 칩, 보철기구로 자신을 무장할 경우 간극을 메울 수 없는 '열등인간'과 '우등인간'이 생겨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류의 과학은 날이 갈수록 발달할 것이 자명하다. 책은 인간이 인간다움을 지키는 유일한 길은 인류 전체의 미래에 해로울 모든 일탈을 피하기 위한 '윤리적인 바리케이드'가 적절한 장소와 적절한 시간에 배치되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지은이 장 델베크는 신경정신의학 및 신경생리학 전문의다. 이식 가능한 신경 보철 및 전극 개발에 관련한 여러 가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으며, 루뱅가톨릭대학교 연구원으로 있다.
66쪽, 8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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