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때로 서술이며 묘사이다. 문학이나 미술과 마찬가지로 자연을 묘사하고 풍경을 그대로 재현한다. 음악은 기본적으로 소리 자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소리로 대상을 그리는 회화적 성격이 매우 강하다. 또 음악은 형식을 통해 완벽한 건축적 구조를 만들어내고 선율이나 주제 전개 등을 통해 인간관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갈등과 화해, 조화를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음악의 이러한 측면은 18세기에 탄생한 근대 소설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근대 소설은 인간 경험의 구체적인 모습을 심미적으로 재현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치밀한 플롯이 요구된다. 이러한 면은 소설이 음악의 형식구조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마찬가지로 근대 소설의 이상이 인간에 대한 탐구이듯이 음악에서 형식과 구조, 선율과 화성에 대한 탐구는 인간에 대한 탐구라 할 수 있다.
헨델의 음악은 회화적 성격이 매우 강하다. 그의 음악은 회화적 상징으로 자연을 자주 인용한다. 헨델의 음악들을 듣고 있노라면 누구나 넓게 펼쳐진 목가적 풍경을 떠올리게 되고 자연 속에 놓인 듯한 평화로움을 느낀다.
수상 음악 역시 회화적 성격이 강하다. 수상 음악은 1717년 영국 왕 조지 1세의 뱃놀이를 위해 만든 곡으로 연회가 열리는 템스 강에서 초연되었다. 이 곡은 3개의 모음곡에 총 20여 곡의 관현악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악기 외에도 목관 악기와 금관 악기가 함께 편성되어 있어 야외 연주에서 멋있고 효과적인 사운드를 만들어 낸다. 헨델은 50여 명에 달하는 연주자와 수많은 악기를 배에 싣고 왕이 타고 있는 배 근처를 맴돌며 이 곡을 연주했다. 수상 음악은 기품이 있으면서도 물의 상쾌하고 청신한 기운이 온몸에 흐른다. 조지 1세는 수상 음악에 대단히 만족했던지 3차례나 연속으로 다시 연주해 줄 것을 요청했다.
헨델은 독일 할레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18세에 할레 대성당 오르간 연주자로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그는 법률가로 출세하기를 원했던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하기 위해 함부르크로 갔다. 함부르크는 북부 독일의 상업 도시이자 한자 동맹의 중심지였으며 문화의 중심지였다. 헨델의 오페라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마침 함부르크에 와 있던 메디치공의 후원으로 오페라의 본 고장 이탈리아로 가게 된다.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예술가의 성장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고향은 친밀하고 안정된 공간이지만 고된 훈련이나 새로운 문물을 통해 보다 큰 성장이나 발전을 기약할 수 있는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헨델은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이탈리아 오페라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그의 음악에 나타나는 명쾌함과 호탕함, 힘찬 화성은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토대를 마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헨델은 독일인이지만 이탈리아에서 음악 수업을 하였고 이탈리아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영국에서 주로 활동하였으며 마침내 영국으로 귀화하였다. 그의 음악은 외향적이고 밝으며 웅장하고 화려하다. 그의 이러한 삶을 두고 코스모폴리탄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헨델은 한 지역에 머무르거나 지역성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국경을 넘나들며 18세기에 이미 진정한 국제인으로서의 삶을 추구하였다. 헨델은 독일과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등 각기 다른 지역에서 생성되는 요소들을 융합하여 그만의 특별하고 새로운 음악적 성과를 구축해냈다.
요즘 유행하는 하이브리드라는 말은 이질적 요소가 합쳐져 보다 높은 성능을 보이는 제품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글로컬은 글로벌과 로컬의 합성어이다. 헨델의 삶과 음악을 생각하다 보면 이런 단어들이 쉽게 떠오른다.
2012년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취임 60주년이었다. 이를 기념하는 수상 퍼레이드가 템스강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여왕은 왕실의 배를 타고 1천여 척의 호위선을 앞세우고 타워 브리지 근처에서 장관을 연출했다. 여기서 헨델의 수상 음악이 다시 연주되었을까? 모르겠다. 더 이상 절대군주 시대가 아니고 불경기와 여론을 의식한 때문인지 외신은 퍼레이드에 사용된 음악에 대해 아무런 소식도 전해주지 않았다.
서영처 시인'영남대학교 교책객원교수 munji6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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