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러시아 혁명의 성공 이유에 대한 공산당의 정통적 역사 서술은 볼셰비키의 계획과 지휘라고 설명한다. 한마디로 웃기는 얘기다. 볼셰비키는 혁명을 '계획'했지만 지도하지 못했다. 그들은 기정사실화된 혁명을 막판에 움켜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전문적 혁명 전위(前衛)에 의한 대중의 지도(指導)'란 상투적 기술(記述)은 진실과 거리가 먼 사후적 윤색에 불과하다.
1917년 당시 러시아에는 혁명의 기운이 무르익고 있었지만 볼셰비키의 '자리'는 없었다. 노동자는 공장을 장악한 뒤 자발적 대표자회의를 구성했지만 볼셰비키는 물론 그들 자신의 소비에트 집행위원회의 지시도 무시했다. 소작농들도 혁명 소요(騷擾)로 빚어진 중앙의 정치 공백을 토지 공동 소유권을 회복하거나, 지주와 세리(稅吏)에 대한 복수를 포함해 현지 사정에 맞는 '정의'를 실현하는 기회로 이용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당의 명령에 따르는 것은 고사하고 볼셰비키의 '볼' 자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러시아혁명사에 관해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역사학자 E. H. 카는 이렇게 단언한다. "차르 독재 타도에 대한 레닌과 볼셰비키의 공헌은 하찮은 것이었다. 볼셰비즘은 비어 있는 왕위를 계승했을 뿐이다." 유대인 출신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의 볼셰비키 폄하는 더 아프다. "볼셰비키는 거리에 방치된 권력을 발견하고 습득했을 뿐이다." 이런 평가는 좌파 내에서도 나왔다. "(혁명의 공인된 역사는) 혁명을 마치 지도자들이 사전에 계획한 행위의 열매인 양 설명한다." 혁명이 새로운 독재와 귀족계급을 탄생시킨 반동으로 변질됐다고 비판한 '새로운 계급'의 저자, 밀로반 질라스의 말이다. ('국가처럼 보기, 왜 국가는 계획에 실패하는가' 제임스 C. 스콧)
골수 '종북주의자' 이석기 의원의 내란 음모 '혐의'가 국민을 경악게 하고 있다. '무기 확보' '기간 시설 파괴' 등의 '계획'은 우리 국민의 '6'25 트라우마'를 되살리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과연 그는 자신의 계획이 성공할 것으로 보았을까? 그렇다면 그는 레닌이 비판한, 객관적 정세를 무시한 채 '묻지 마' 혁명에 사로잡힌 '좌익 소아병' 환자임이 틀림없다. 그 객관적 정세란 지금 대한민국이 어설픈 '계획'으로 무너질 모래성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의 '계획'에 대해 레닌이 이렇게 비웃는 듯하다. '유치하구나! 이석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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