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고 기술은 살아남기 마련"…김태식 양복명장

양복쟁이 44년, 철탑산업훈장 수상…맞춤복 기술발전 공 인정 정부포상

양복명장 김태식 씨가 자신이 만든 맞춤 파티복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양복명장 김태식 씨가 자신이 만든 맞춤 파티복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은 양복을 그냥 옷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양복은 과학이고 조형예술입니다."

대구에서 45년간 양복쟁이로 살아온 명장 김태식(60'베르가모 김태식양복점 대표) 씨가 2일 고용노동부 실시 직업능력개발 정부포상에서 맞춤양복 기술발전의 공을 인정받아 철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양복명장이 정부포상 철탑산업훈장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 씨는 2일 서울 마포구 서울가든호텔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 "맞춤양복의 명맥을 이어온 자신의 기술에 대해 국가가 인정해 주는 것 같아 정말 자랑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1984년 대구 중앙로 아카데미극장 맞은편에 '김태식 양복점'을 연 이후 양복 숙련기술로 2002년 대한민국 양복명장에 선정됐고 지금은 중구 대봉동에서 부인과 함께 양복점을 운영하고 있다.

"견습 시절 양복 기술을 전수해 준 스승은 나 보고 천생 양복쟁이니 양복을 떠나지 말라고 했어요. 아직도 스승의 말씀이 귓가에 생생합니다."

고령이 고향인 그는 1968년 가정형편이 어려워 16세의 어린 나이에 양복점 점원생활을 시작했다. 보통 5~7년 걸리는 견습기간을 1년 만에 마친 그는 26세 때 양복 제작공정을 지휘하는 재단사가 됐다. 재단사가 되기 위해 1년에 200일 정도는 밤을 새워가면서 일했다. 또 낮엔 작업장에서 일하고 야간열차로 상경해 은사를 찾아 수년간 기술을 배웠다. 그는 1990년대 외환위기로 주변 양복점들이 하나 둘 문을 닫았지만 '최고의 기술은 외면당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그의 양복 기술은 세계에서도 인정받았다. 2006년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열린 아시아주문양복연맹총회 기간 중 개최된 아시아마스터재단대회에서 우승해 국위를 선양했다. 특히 130년 전통의 세계적 양복 패션저널인 독일 룬트샤우지에 아시아인 최초로 양복제도를 발표해 양복의 본고장인 유럽에 한국 양복기술을 각인시키기도 했다.

"저는 다시 태어나도 양복쟁이가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를 보고 양복에 미쳤다고 합니다. 한 분야에 미치지 않고는 최고가 될 수 없습니다."

그는 양복기술을 전수하는 재능나눔 활동도 열정적이다. 1988년부터 대구교도소 직업훈련 강사로 출강해 25년 동안 재소자들의 재활을 돕고 있는 것. 지금도 주 2회 대구교도소에서 양복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한국맞춤양복협회 회원을 대상으로 전국을 돌며 다년간 기술강습회 강의는 물론 중소기업청 주최 소상공인 경영개선교육에도 참여, 양복업계 종사자들의 기술 향상에 힘쓰고 있다. 또 국제 기능올림픽대회에 출전할 선수를 지도해 금메달을 비롯한 45개의 메달을 획득하게 했다. 그는 맞춤양복의 정확한 재단을 바탕으로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는 체계적인 공정개선법도 개발해 보급했다.

그는 현장의 노하우를 살려 양복을 배우는 대학생들을 위해 쉽고 체계적인 교재도 만들 계획이다. 또 대구가 섬유도시인 만큼 맞춤양복의 명맥을 잇기 위한 정부 지원책도 마련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현재 한국맞춤양복기술협회 운영위원, 대구광역시 우수숙련기술입상자 동우회 회장, 대한민국명장회 대구경북지회 경기이사 등을 맡고 있다.

"명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젊은이들도 투철한 프로정신으로 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연구'개발하면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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