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동순의 가요 이야기] 잊힌 민요가수 김복희(1)

간드러지는 목소리…'애상곡'으로 데뷔

인기(popularity)란 말 그대로 어떤 대상에 쏠리는 대중의 높은 관심이나 좋아하는 기운입니다. 인기에만 의존해서 오로지 인기를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은 바로 가수와 배우들이 아닐까요. 아무리 대중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스타라 할지라도 흐르는 세월 앞에서는 덧없는 한 줄기 실바람이나 물거품과도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1930년대 빅타레코드사의 간판가수 김복희의 경우도 바로 이 허무의 기슭에 매몰된 대중음악인으로 여겨집니다. 김복희의 생애는 베일에 가려져 있어서 구체적 자료를 확인할 수 없으나 다만 가수 자신의 인터뷰와 구술을 토대로 재구성해보면 1917년 평남 안주 입석동에서 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12세에 부친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가정형편이 몹시 곤궁해지자 복희의 어머니는 가족들과 평양으로 거처를 옮기게 됩니다. 복희는 동생의 학비를 조달하기 위해 평양의 그 유명한 기성권번으로 들어가 기생수업을 받고 이후 기생 노릇을 하며 살아갑니다.

거기서 김복희는 나중에 함께 유명가수가 된 기생 선우일선과 동갑내기 친구로 다정하게 지냈습니다. 17세가 되던 1934년, 서울의 빅타레코드사 문예부장 이기세의 집에 머물고 있던 평양기생 곽향란이 이기세에게 김복희의 뛰어난 가창능력을 적극 추천했고, 이기세는 직원을 평양으로 보내어 곧장 서울로 불러왔습니다.

이기세가 시험해본 김복희의 가창능력은 그 솜씨가 과연 부족함이 없었을 뿐더러 파르르 떠는 발성의 울림에서 기묘하게도 슬픈 여운까지 느끼게 하였습니다. 이기세는 시인 이하윤(異河潤, 1906∼1974)과 작곡가 전수린(全壽麟, 1907∼1984)에게 특별히 부탁해서 어린 기생 김복희의 첫 음반이 반드시 성공리듬을 탈 수 있도록 신신당부했습니다. 이런 전후 사정이 1935년 잡지 '삼천리' 지에 실린 글 '거리의 꾀꼬리인 십대가수를 내보낸 작사작곡가의 고심기'에 잘 그려져 있습니다. 전수린이 김복희의 첫 작품 '애상곡'에 대한 작곡을 먼저 했고, 가사는 작곡을 완료한 다음 시인 이하윤에게 의뢰했던 것 같습니다. 먼저 작곡가 전수린의 회고를 들어보실까요?

김복희의 '애상곡'은 실로 나의 고심을 짜낸 것입니다. 처음에 김복희가 노래를 우리 회사에 와서 부르는데 그 노래를 들음에 그 몸집같이 휘청휘청 마치 능라도 수양버들 같아서 그만 그 목청조차 몸 스타일에 따른 듯하겠지요. 그래서 그 성대를 들음에 간드러지고 늘어지고 흔들리는 것이 애상적이었어요. 그래서 돌아가서 이 멜로디에 맞는 곡조를 지어본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김복희의 노래와 맞춰보니 아주 적당하다고 보아서 내가 처음 뜻을 발표해 보았으나 되지 않고 해서 마침 이하윤 씨에게 작사를 청한 것입니다.

전수린으로부터 '애상곡' 악보를 받아 기생출신 가수가 부르는 첫 발표 곡의 분위기에 맞도록 애잔하고 슬픈 정서의 가사를 붙였던 시인 이하윤은 이 과정에 대해서 또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순서인즉 작사가 먼저 되고 그다음 작곡이 되고 그 후에 노래를 불러 주어야 옳을 터인데 이 '애상곡'은 아주 거꾸로 되었지요. 김복희의 목청을 듣고 거기에 맞을 곡을 지어주면서 이러이러한 의미에서 했으면 좋을듯하다고 하기에 내 생각해보아야 아무래도 잘 나오지 않습니다. 첫째 김복희가 입사해서 세상에 처음 알리는 것인 만큼 독특한 것을 내려고 애를 쓴 것입니다. 그래서 구슬프게 가장 애상적인 그 목소리를 배합해서 짓노라고 매우 힘이 든 것이외다. 그 목소리는 보통의 목청이 아니고 갈피갈피의 눈물과 한숨이 섞인 듯 연약한 여자가 달빛 아래 홀로 서서 검푸른 못을 들여다보는 그 미묘 신비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몇 날을 두고두고 생각하면서 작사한 것이나, 이것을 김복희의 목에 맞춰 몇 번이나 수정했던지 사실 나로서 힘든 작사의 하나이외다. '애상곡'은 듣는 이로 하여금 눈물짓게 만듭니다. 여기에서 김복희는 자기의 묘성(妙聲)을 완전히 아직은 발해보지 못한 줄로 압니다. 그 목소리에 알지 못할 깊은 점은 언제나 풀릴는지 앞으로 나올 것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남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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