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경찰에 속아왔기에 지금도 긴가민가하네요. 하지만 진실을 알고 싶었기에 한편으로는 속이 후련합니다."
1998년 10월 17일. 딸은 고속도로에서 덤프트럭에 치여 숨졌다. 하지만 고속도로 인근에서 딸의 속옷들이 발견됐다. 성폭행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강하게 추측했다. 그런데 경찰은 단순 교통사고로 사건을 매듭지었다. 진실을 알아야겠기에 증거를 모았다. 사람들에게 알렸다. 딸이 삶을 마감하기 직전 6시간의 행적을 미치도록 알고 싶었다. 수많은 증거에도 꿈쩍 않던 경찰이었다. 그리고 15년이 지났다. 밝혀진 진실. 딸의 죽음 직전 스리랑카 출신 산업연수생들의 범행이 있었다.
사건의 진실을 알고 싶어하던 유족들이 가슴의 짐을 덜었다. 1998년 10월 구마고속도로에서 의문의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한 고(故) 정은희 양이 스리랑카 출신 산업연수생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한 뒤 고속도로에서 숨졌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고 정 양의 아버지 정현조(67) 씨는 "초동수사만 제대로 했더라도 이렇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래서 착잡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고 했다.
정 씨는 경찰의 수사 부실과 유족을 배려하지 않는 구조를 답답해했다. 15년 동안 수없이 진정을 제기했고 그로 인한 마음고생이 많았다고 했다.
정 씨는 "사건이 있은 뒤 부검의는 유족에게 상세히 설명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유족에게는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 딸의 부검이 있기 직전 사진을 아직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정 씨는 특히 "경찰이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는 사건에는 공소시효가 없다"고 했다. 사건 당시 특수강도강간죄의 공소시효는 15년으로 올해 10월 16일이 공소시효 만료일이었다. 그러나 2010년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이 제정되면서 DNA가 확보된 성범죄의 공소시효는 10년이 연장된 25년으로 바뀌었다.
정 씨는 "수사당국에 배신감도 들지만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도와준 이들도 많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해보지 않았지만 주변의 의견을 들어 고려해볼 것"이라고 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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