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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암초 3년째 젓가락 수업, 학생들 인성 '쑥쑥'

마음가짐도 변화…일본서는 매년 8월4일 '젓가락의 날' 감사 표시

16일 대구 월암초등학교 1학년 6반 학생들이
16일 대구 월암초등학교 1학년 6반 학생들이 '젓가락 바르게 사용하기' 수업 시간에 젓가락으로 콩을 옮기며 젓가락 사용법을 익히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손가락을 브이(V) 모양으로 하고 젓가락을 끼우세요."

16일 오후 대구 달서구 월성동 월암초교 1학년 교실. 점심시간 10여 분을 남겨두고 책상 위에 30여 개의 콩과 접시, 젓가락이 올라왔다. 왁자지껄하며 떠들던 학생들이 선생님이 들고 있는 젓가락을 바라봤다. 선생님의 젓가락 사용 설명에 맞춰 손가락을 요리조리 움직이던 학생들은 젓가락으로 책상 위의 콩을 옆에 있는 접시로 옮겨 담았다. 하나 둘씩 천천히 콩을 옮기더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5분도 채 안 돼 모든 콩을 접시로 옮겼다. 김재윤(8'대구 달서구 월성동) 군은 "처음에는 서툴렀는데 젓가락질을 배우면서 식사 시간도 즐거워졌다. 젓가락 1급 면허증도 받았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젓가락이 몰고 온 변화

대구 월암초교의 밥상 풍경이 바뀌고 있다. 점심시간이 되면 시끄럽게 떠들고 놀기 바빴던 학생들이 얌전히 앉아 식사에 집중했다. 편식을 하던 학생은 어느새 채소까지 골고루 먹게 됐다. 학생들의 식습관에 변화가 시작된 것은 3년 전 '젓가락 바르게 사용하기' 수업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월암초교는 지난 2011년 3월 개교와 함께 젓가락 수업을 진행했다. 젓가락 사용법은 옛 조상들이 중요하게 여긴 밥상머리 교육의 하나로, 식사 시간에 함께 모여 젓가락 사용법을 배우며 올바른 식사예절을 익혀왔다.

하지만 핵가족화가 이뤄지고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밥상 풍경도 변했다. 햄버거와 피자, 파스타 등 패스트푸드 범람과 함께 젓가락보다는 포크, 칼 등의 사용이 늘었다. 자연스럽게 젓가락 사용법을 알려주며 이뤄지던 밥상머리 교육도 자취를 감췄다.

월암초교는 가정에서의 밥상머리 교육을 학교로 옮겨와 인성 교육의 하나로 올바른 식습관을 배우는 젓가락 교육을 집중 실시했다. 올해부터는 1, 2학년 저학년을 대상으로 '젓가락 인증제'를 실행했다. 이는 젓가락을 이용해 30초 동안 공깃돌을 많이 옮기는 학생에게 주는 일종의 '젓가락 면허증'이다. 20개 이상 옮기면 1급을 받는다.

월암초교 1학년 담임교사 강은순(41'여) 씨는 "올 초 실시한 인증제에서 1급을 받은 학생이 2명이었는데 최근 7명으로 늘어났다"며 "단순한 젓가락 사용법 교육이 아니라 젓가락질을 몸에 익히면서 밥을 급하게 먹던 아이들도 천천히 먹을 만큼만 집어서 먹게 되고 성취감도 느끼는 등 마음가짐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젓가락질의 우수성

"젓가락을 사용하는 민족이 21세기 정보화 시대를 지배한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그의 저서 '미래혁명'에서 젓가락질의 우수성에 대해 쓴 말이다. 실제 젓가락을 사용하는 한국은 반도체와 정보통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젓가락 효험의 뿌리는 '손'에 있다. 젓가락의 사용은 '제2의 두뇌'로 불리는 손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손을 많이 움직이는 활동이 두뇌를 활성화시켜 준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젓가락질은 손을 이용한 활동 중에서도 가장 정밀하고 섬세한 손동작이다.

젓가락을 사용하면 손바닥, 손목 팔꿈치 등 30여 개의 관절과 50여 개의 근육을 동시에 움직일 수 있다. 반면에 포크를 사용할 경우 운동량이 젓가락질보다 못하며, 대뇌에 주는 자극도 젓가락에 비해 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젓가락을 이용해 콩과 같은 작은 물건을 옮길 경우 소근육의 활성화와 함께 한꺼번에 신체 여러 부위를 움직이는 협응력, 근육조절능력, 집중력도 함께 높아진다. 특히 한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쇠젓가락은 나무젓가락에 비해 가늘고 손으로 잡았을 때 미끄럽기 때문에 조작하는 것이 쉽지 않아 훨씬 더 정교한 손동작을 키울 수 있다.

박재찬 경북대 신경외과 교수는 "사물의 위치를 인지하고 손가락을 이용해 젓가락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뇌의 공간인지능력과 함께 운동수행능력이 활성화된다. 젓가락질을 계속하면 섬세한 동작을 하는 데 능숙해지며 이러한 활동은 어렸을 때부터 시작할수록 좋다"고 말했다.

◆교육계를 휩쓴 젓가락

젓가락질의 우수성은 젓가락 문화권 한'중'일 삼국(三國)을 뒤흔들고 있다.

숟가락은 사용하지 않고 젓가락만 단독으로 사용하는 일본은 매년 8월 4일을 '젓가락의 날'로 제정해 젓가락 사용에 대한 감사함을 표하고 있다. 일본은 이날 행사를 통해 젓가락 사용을 교육하고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젓가락은 대나무, 흑단, 자단 등 다양한 재료로 제작된다. 젓가락 문화의 선발자로 알려진 중국 역시 나무, 도자기, 금속 등의 재료를 활용해 젓가락을 만들고 있다.

아쉽게도 한국은 후발주자다. 청소년은 물론 어른들 사이에서도 젓가락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는 모습이 눈에 띄게 늘어나자 학교가 뒤늦게 청소년을 상대로 젓가락 교육에 나서고 있다.

대구남부교육지원청은 올 3월부터 관내 초교(64개), 중학교(38개)를 대상으로 '젓가락 바르게 사용하기' 운동을 하고 있다. 점심시간 전에 젓가락 사용법을 담은 동영상을 담임교사의 지도로 함께 시청하며 올바른 젓가락 사용법을 익히게 한다. 또 교실과 복도 곳곳에 젓가락 사용법 관련 게시물을 붙이고, 주변에 콩과 젓가락을 이용한 놀이도구, 젓가락 인증제, 젓가락 경연대회 등을 활용해 학생들이 젓가락질에 재미를 붙일 수 있도록 했다.

'젓가락 운동'을 기획한 이진희 대구시교육청 창의인성교육과 장학사는 "젓가락질의 학습 효과는 청소년의 두뇌 발달은 물론 젓가락을 배우는 과정에서 가족 간의 대화를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며 "현재 학생들이 젓가락 사용에 더욱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 게임 등을 연구 중이다"고 말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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