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또다시… 경찰의 일방통행

고 정은희 양 유족 만난 뒤 보도자료 내고 "사과했다"…유족 측 "

경찰이 고 정은희 양 사건과 관련해 16일 정 양의 유족을 만나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만난 뒤 대처에 대해 뒷말이 나오고 있다. 유족은 개인적 차원의 사과로 이해하고 있는 반면 경찰은 유족을 만나자마자 보도자료를 내 '진심 어린 사과를 표명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정 양은 1998년 10월 17일 오전 5시 30분쯤 구마고속도로 중앙분리대에서 23t 덤프트럭에 치여 숨진 채 발견됐다. 사건 당시 정 양의 속옷이 없는 등 숨지기 전 상황에 대한 의문이 컸지만 경찰은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달 초 정 양이 구마고속도로 인근에서 외국인 산업연수생으로부터 집단 성폭행당한 뒤 피신하다 숨졌다는 사실을 파악하면서 진실의 일부가 세상에 알려졌다.

일련의 과정과 관련해 김봉식 달서경찰서장은 16일 오후 유족을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서장은 "경찰에서 잘못한 부분이 있었고, 어떤 식으로든 국가기관이 의사를 표시하는 게 도리인 것 같았다"며 "특히나 달서경찰서 관내에서 사건이 발생했고 초동수사에 소홀했던 게 사실인 만큼 사죄 표시를 한 것"이라고 했다.

이날 자리에는 정 양의 아버지와 가족 3명을 비롯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소속 오규섭 목사가 함께했다. 경찰에서는 달서경찰서 서장과 형사과장, 형사계장, 정보계장, 청문감사관 등 5명이 동석했다.

유족과 만남은 1시간 50분 정도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달 초 있었던 검찰의 발표 직후 김 서장이 대구경찰청 등 경찰 상부에 사과 의향을 보고하는 등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사과의 뜻을 전한 뒤가 문제였다. 경찰이 유족을 만난 직후 언론에 보도자료를 내 '진심 어린 사과를 표명했다'고 밝힌 탓이다. 유족 측은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대구경찰청은 16일 오후 6시쯤 보도자료를 통해 "16일 오후 1시 50분부터 대구 중구 공평동 소재 모 다방에서 정 모양 사망사고와 관련 유족을 만나 당시 수사사항이 미흡한 데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유족 측은 "정식 사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시 문제는 경찰 초동 수사 시스템의 문제로 현직 달서경찰서장이 사과할 것이 아니라 경찰청장이나 대구경찰청장이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특히 다방에서 비밀리에 만나 사과의 뜻을 전한 데 대해서도 마찬가지 심경을 드러냈다. 언론 등 신뢰할 만한 매체와 동석 없이 일방적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한 데 대한 불쾌감이었다. 정 양의 아버지는 "어떤 부분이 잘못돼 죄송하다는 식의 사과가 있어야 한다. 언론을 부른 것도 아니고 그런 식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이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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