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무명칼럼] 아이 키우기나 정치나 매일반이다

요즘 아이 키우기 참 힘들다. 부모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다. 특히 초'중'고생 아이를 두었다면 밖으로 말 못할 '사연' 한두 가지 없는 집이 없다고 할 정도다. 남들이 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골머리를 썩이고 한숨짓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아이 키우기가 럭비공을 다루는 것 같다고들 한다. 어디로 튈지 몰라서다. 성질대로 하자면 매를 들고, 야단도 치고 싶지만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다. 아이가 엇나갔다는 친구 집 이야기가 예사로이 들리지 않는다. 집 밖 예측불허의 환경을 생각하면 아이를 어떻게든 집 울타리 안에 머물게 해야 한다. 집 밖으로 나돌기 시작하면 그때는 걷잡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아이가 하는 대로 가만히 두고 보자니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도 해 본다. 하지만 부모자식 간에 안 볼 수도 없는 법. 그리고 막상 눈앞에 보면 울화도 치밀고, 한숨도 나고 목소리 톤도 올라간다.

아이가 성질을 내면서 방에 들어가 버리는 건 양반이다. 문을 쾅 소리가 나게 닫는 것은 대화하지 않겠다는 신호다. 시간을 갖자는 사인이기도 하다. 이것을 곧바로 따라가서 문을 열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 답이 없어진다. 윽박지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난감하다. 이럴 때 최선의 방법은 꾹꾹 참는 것이다. 끓어오르는 화를 가라앉혀야 한다.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서 대화를 해야 한다. 달래야 한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노력이 중요하다.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아이가 꺼내도 그 자리에서 버럭 화를 내어서는 안 된다. 일단 아이가 닫아건 방문을 열고 거실에, 식탁에 나와 앉도록 해야 한다. 현관문을 쾅하고 닫고 집 밖으로 나가버리게 하면 안 된다. 아이의 내면에서 욱하고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마음은 삭이게 하고, 집 울타리 안에 주저앉으려는 마음에 힘을 싣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어려워 보이지만 한 템포를 죽이면 못 할 일도 아니다. 아이의 이야기가 옳아서가 아니다. 이야기를 들어준다고 아이에게 두 손을 들고 항복을 하는 것도 아니다. 부모가 양보하는 것이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다. 아이가 집 밖으로 나간다면 전적으로 부모 책임이어서다.

세상 이치란 게 시대나 장소가 바뀌어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가정에서 적용되는 룰이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적용된다. 정치판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국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은 지 두 달, 정기국회가 공회전 한 지 한 달이 가까워져 온다. 추석 연휴 전인 이달 16일 꽉 막힌 정국을 풀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만났지만 헛발질로 끝이 났다. 열기를 식혀도 시원치 않을 판에 회담 다음 날에는 박 대통령과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서로 '국민적 저항'을 입에 올리면서 한 판 더 붙었다. 이럴 때 고분고분 말 잘 듣고 반발하지 않으면 야당도 아니다.

대통령의 생각이 이렇다면 당장 정국 정상화는 어렵다. 야당 내에서 등원론자와 대화론자들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져서다. 온건파들의 목소리에는 갈수록 힘이 빠질 게 뻔하다. 결국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대통령과 여당이 야당 내 강경파에게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된다. 성질을 못 이기고, 화를 못 다스리고 아이를 집 밖으로 내모는 부모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남편은 아내하기 나름'이라는 유명 CF가 있었다. '아이는 부모하기 나름'이라는 말도 성립된다. 물론 '야당은 여당(대통령) 하기 나름'이라는 말 역시 수긍이 간다.

대통령이나 여당이 야당의 주장을 들어준다고 그것이 야당에게 백기를 드는 게 아니라는 건 어린아이도 다 안다. 양보와 굴복을 구분할 수 있는 분별력을 평균적인 우리 국민이라면 다 갖고 있다. 밖으로만 도는 야당을 국회 안으로 들어오게 해 국회를 정상가동시키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여당의 '통 큰 양보'가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물론 그게 대통령이 야당에 고개 숙이는 게 아니라는 점도 알고 있다.

70% 선마저 뚫고 올랐던 박 대통령 지지율이 추석 연휴 동안 조금(6~8%포인트) 내려갔다는 여론조사결과가 나왔다. 상승세가 꺾인 것은 눈여겨 볼만하다. '야당 다루기' 실패에 대한 평가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갈수록 대통령의 책임은 커지고 져야 할 정치적 짐의 무게도 늘어날 것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