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은 참 좋은 달이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에다 농촌에서는 한 해 농사의 결과를 손에 거머쥐는 풍성한 때였다. 시인 장석주가 '어딜까, 내가 등 보이며 어둠에 몸을 숨겨 가려는 곳은'이라고 노래하고, 황동규가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 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며 그리움을 이야기한 달도 10월이다. 또, 태음력을 사용한 미국 인디언들이 '작은 밤나무의 달' '검정 나비의 달'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을 붙인 달이기도 하다.
10월이 좋았던 것은 선선한 날씨에 뭔가 낭만적인 느낌으로 충만한 듯한 분위기뿐만 아니다. 등교나 출근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맞닥뜨린 학생이나 직장인에게 연중 최고의 달이었다. 달력을 넘기자마자 눈에 확 띄는 속칭 '빨간 날'이 군데군데 들어 있어서다.
요즘 달력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으니 좀 멀리 돌아가 보자. 1975년까지 10월에는 일요일 외에 추석과 설 연휴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사흘의 공휴일이 있었다. 3, 9, 24일이다. 3일은 지금도 공휴일인 개천절이고, 9일은 한글날이다.
한글날은 1991년, 국군의 날(1일)과 함께 공휴일에서 폐지됐지만, 올해부터 다시 공휴일이 됐다. 다만, 지난해 12월 24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그 이전에 발행한 대부분 달력에는 빨간색이 아니라 평일과 같은 검은색이다. 홍보 부족도 있지만, 얼마 전 한글날 설문 조사에서 국민의 31%가 공휴일이 아니라고 답한 것도 이 때문이다.
24일은 요즘 세대에게는 생소한 국제연합 창립일인 UN데이다. 이날도 1975년까지는 법정 공휴일이었다. 그러나 1976년 북한이 국제연합 산하 기구에 공식 가입하자 정부는 그 항의로 공휴일에서 제외하고, 국군의 날인 1일을 공휴일로 만들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다운 결정이었지만, 노는 날 숫자로만 따지면 본전이었다. 오히려 국군의 날이 공휴일이 되면서 징검다리로 휴일을 맞고, 2일이 일요일이면 사흘을 쉬었다. 말 그대로 황금연휴였던 셈이다.
우스개로 1년 가운데 2월이 고통이 가장 적은 달이라고 한다. 한 달이 28, 29일밖에 되지 않아서다. 지금 생각하면 학교 안 가고 직장에 안 나가도 되는 공휴일이 많았던 10월도 2월 못잖게 삶의 무게가 조금은 가볍지 않았을까 싶다. 오늘이 그 추억의 10월, 첫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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