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후 대구 남구 대명동의 한 노인복지요양센터에 전현순(58'여'대구 남구 대명동) 씨가 동화책을 끌어안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전 씨는 동화책을 만지작댈 뿐 읽지는 않았다. 전 씨의 눈은 그저 하염없이 벽을 바로 보고 있었다.
남편 유기성(63) 씨는 아내 전 씨의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진다. 모야모야병과 뇌경색이 겹치면서 전 씨는 시력을 완전히 잃었기 때문이다. 유 씨는 "아내가 시력을 잃었지만 그 사실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안 보이는 것 때문에 불안해하고 답답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너무 속상하다"고 했다.
◆그때 한 번만 더 수술했더라면…
11년 전 유 씨 부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었다. 유 씨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전 씨는 나름 규모가 큰 식당을 운영하면서 두 딸을 키우며 행복하게 살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유 씨 부부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닥쳐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전 씨가 쓰러졌다. 전 씨를 쓰러트린 병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모야모야병'이었다. 병원에서는 "혈관이 서서히 좁아지거나 막혀 뇌에 충분한 혈액공급이 안 돼 쓰러지는 병"이라며 "그냥 방치하면 혈관이 더 좁아지거나 사라지기 때문에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11년 전 대구에서는 모야모야병을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 없었다. 결국 유 씨 부부는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 모야모야병을 치료할 수 있는, '혈관문합술'이 가능한 의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아내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사가 있다는 소식에 두말하지 않고 달려갔죠. 어떻게든 아내를 살려야 했거든요. 12시간이 넘는 수술 뒤에 아내의 지능은 일곱 살로 돌아가 버렸고 시야도 좁아져 보는 것이 불편해졌죠."
수술 뒤 아내는 목숨을 건질 순 있었지만 언어능력을 잃었고 지능도 떨어졌다. 또 시야가 좁아져 옆을 보는 것이 불편해졌고, 몸의 왼쪽에 약한 마비가 왔다. 아내가 어느 정도 몸을 회복하자 병원에서는 한 번 더 수술을 받기를 권유했지만 유 씨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몸의 기능을 더 회복하려면 수술을 한 번 더 해야 한다더군요. 하지만 처음 수술할 때 수천만원이나 들어 더는 수술할 여력도 없었고, 수술을 한다 하더라도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을지는 장담을 못한다고 하더군요. 결국 수술을 포기하고 대구로 돌아왔습니다. 이때 수술을 한 번 더 받았더라면 지금처럼 아예 안 보이는 일은 없었을 텐데…. 앞이 안 보여 헤매는 아내를 볼 때마다 그때 생각이 나 아내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받아들이기 힘든 암흑세상
전 씨의 눈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된 것은 지난해 7월 전 씨가 다시 쓰러지면서부터다. 시각을 관장하는 부분에 뇌경색이 와서 시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다. 전 씨는 이때부터 암흑으로 변해버린 세상에 적응해야만 했다. 하지만 적응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옛말에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렇게 소중한 시력을 잃었으니 아내의 마음이 오죽이나 답답했을까요. 아내는 자신의 눈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 짜증, 답답함 등등 모든 감정을 제게 쏟아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전 씨에게 믿고 기댈 곳은 남편밖에 없었다. 전 씨는 남편이 자신 옆에 없다고 생각되면 소리를 지르고 유 씨를 찾았다. 전 씨의 재활을 위해 다니고 있는 노인요양복지센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 씨는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이 다가선다고 느끼면 경계하고 남편을 찾았다. 또 사람들에게 물건을 집어던지고 소리지르기 일쑤였다. 전 씨의 마음을 지배한 것은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이었다. 난폭한 모습은 두려움과 불안감의 또 다른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성경 내용을 녹음한 것을 들려주거나 음악을 들려줄 때는 안정을 찾았다.
"복지센터에 앉아 있으면서 어디선가 소리만 나도 놀라서 덜덜 떨어요. 아내가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게 느껴집니다. 한 번은 아내가 자기 눈을 가리키며 허공에다가 '하느님…, 내 눈…, 내 눈…'이라고 하면서 소리를 치더라구요. 아마 하느님에게 왜 내 눈이 이렇게 됐는지를 묻고 싶어서겠지요. 그 모습을 보는데 제 마음이 찢어질 듯했습니다."
◆"아내 생각에 아플 여유도 없어요."
유 씨는 지난해 7월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내가 더는 쓰러지는 일이 없도록 다시 한 번 수술을 받게 하고 싶다.
"지금 한 번 더 수술받으면 적어도 더 나빠지는 것은 막을 수 있대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어서, 또 혹시 회복되면 눈도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 한 번 더 수술을 받게 해야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병원에서는 전 씨가 한 번 더 혈관문합술을 받는 데 드는 비용이 3천만원 이상이라고 했다. 문제는 전 씨를 수술시킬만한 돈이 없다는 것이다. 유 씨는 11년 전 전 씨가 수술을 받은 뒤 직장도 그만두고 전 씨를 간호해왔다. 지금껏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지정돼 받아오던 생계비와 아내의 장애수당 등을 합쳐 80만원 안팎의 국가지원금으로 생활해왔다. 딸들이 도와주기도 했지만 큰딸은 시집을 간 뒤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작은딸은 서울에서 직장을 얻어 독립한 뒤 연락이 뜸해졌다. 유 씨는 "우리 부부를 도와주기 어려운 딸들 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어서 굳이 손을 벌리지 않았다"고 했다.
유 씨 주변에서는 자꾸 나빠져만 가는 유 씨의 건강도 큰 걱정이라고 말한다. 유 씨는 최근 폐암 2기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따로 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 아내의 병간호가 더 급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아내는 저 없으면 허허벌판에 놓인 어린아이가 됩니다. 제가 한시라도 눈을 뗄 수 없는 상황이라 치료받고 누워 있을 수가 없습니다. 고통받는 아내만 생각하면 제 고통쯤은 참을 수 있어요."
유 씨에게 아내 전 씨는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다. 유 씨는 아프기 전 활달한 성격에 마음씨 고왔던 전 씨의 모습을 어서 빨리 되찾기를 바랄 뿐이다.
"누군가 제게 '아픈 아내 돌보는 거 너무 힘들지 않느냐'고, '그 정도면 사랑이 이미 식지 않았느냐'고 말하더군요. 저는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사랑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면 깊어졌지 식은 적이 없습니다. 저와 함께 살아온 이 사람을 제가 끝까지 책임지렵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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