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르포] '밀양 송전탑' 경찰-주민 몸싸움 현장

산 중턱서 밀고 당기고…모두 만신창이

2일 밀양시 상동면 도곡리 109호 송전탑 현장 입구에서 공사를 저지하려는 고정리, 도곡리 주민과 경찰병력이 서로 밀고 당기며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노진규기자
2일 밀양시 상동면 도곡리 109호 송전탑 현장 입구에서 공사를 저지하려는 고정리, 도곡리 주민과 경찰병력이 서로 밀고 당기며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노진규기자

한국전력공사가 2일 오전 6시부터 밀양시 상동면 도곡리 109호 송전탑 등 5개소에 대해 경찰의 엄호 아래 공사를 재개하자 이를 막으려는 주민들이 이중삼중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다.

8, 9년째 송전탑 공사를 몸으로 막아 싸운 주민들은 밤샘 대치와 경찰 저지선을 뚫기 위한 몸싸움, 허기와 졸음과도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또 대부분 송전탑 예정지가 마을에서 1, 2시간 걸리는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데다 이번에는 경찰이 산으로 가는 길목을 겹겹이 차단하고 있어 건설현장 가는 길조차 '고행 길'이 되고 있다.

비까지 부슬부슬 내린 2일 새벽 3시 30분. 상동면 고정리, 도곡리 4개 동 주민 80여 명은 도곡 버스주차장에 집결했다. 1일 낮 109호 현장에서 대치하다 철수한 주민들은 새벽을 기해 현장을 다시 찾으려 한 것. 주민들은 각자 배낭에 물과 도시락 2개씩 단단히 준비한 채 산길을 올랐다.

그러나 밤새 투입된 경찰이 3중 봉쇄선을 치며 밀어내는 바람에 동이 트는 오전 7시가 돼서야 현장에 도착했다.

온몸이 흙투성이가 된 주민들은 "길도 미끄러운 깜깜한 산길에서 경찰병력과 싸우다 만신창이가 됐다. 전쟁도 이런 전쟁은 없을 것"이라며 혀를 찼다.

산 중턱 109호 현장 입구에서도 저지선을 뚫은 일부 주민은 경찰이 몸을 들어 옮기려 하자 격렬히 저항했다. 현장진입을 막는 경찰과 주민 간의 밀고 당기는 거친 몸싸움이 연신 벌어지며 고성이 터졌다. 이 과정에서 강모(64'산동면 고답리) 씨가 몸을 다쳐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

주민들의 얼굴에는 갖가지 수심이 가득했고, 한창 바쁜 수확 철에 공사를 시작했다며 한전을 비난했다.

김모(68'산동면 고정리) 씨는 "산동면 특산품인 감을 다 내버려야 할 것 같다"며 "말 못하는 새나 짐승도 자기 울타리를 지킨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은 한전이 수년째 현실에 와 닿는 정책을 제시하지 않고 주민들의 주장과 대안을 귀담아듣지 않아 분통이 터진다고 했다. 인심 좋던 마을의 민심을 분열시켜 흉흉해지는 것도 하나의 전술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송전탑이 국책사업이라면 정부가 나서 도시와 시골의 차별을 두지 말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송전탑 공사 현장에는 시공사 관계자 수십 명이 작업대기를 하며 주변을 봉쇄했다. 워낙 깊은 산중이라 헬기로 운반하는 자재를 기다려야 공사에 착수할 수 있다고 했다. 밀양'노진규기자 jgro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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