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성폭행을 소재로 한 영화 '소원'(2일 개봉). 영화는 국민적 공분을 불러온 여아 성폭행 사건을 모티프로 희망을 이야기한다. 엄청난 사건에 대한 설명은 최소화하면서 아픔을 당한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상처를 치유해가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담았다. 절제의 미가 특히 돋보인다.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 '님은 먼 곳에' 등을 연출한 이준익(54) 감독이 메가폰을 들었다. 2011년 '평양성' 흥행 실패 후 상업영화 은퇴를 선언했던 그의 복귀작이다. 이 감독은 은퇴 선언을 하고 "40개 시나리오를 거절했다"고 했다. 이재용 감독의 영화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에 특별 출연해 연출 의지를 밝히기도 했으나 섣불리 연출하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하지만 영화 '소원'은 거절할 수 없었다. 이것마저 거절했으면 스스로 "비겁한 놈"이라고 했을 것이란다. 지난해 하반기 시나리오를 읽고 마음이 동했고 연출 계약을 했다. 그래서 은퇴 번복은 창피한 일이 '전혀' 아니었다. 연출 결정을 마음먹었던 올 1월에도 그는 "연출 계약을 한 건 맞다"면서도 영화 이야기와 관련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눈물샘 자극 최대한 억제…그래도 운다면 내 잘못
"이런 영화는 한 번도 연출해 보지 않아 조심스러웠어요. 주제에 대한 확신은 있지만, 이런 소재를 통해 내가 생각하는 주제를 표현하는 게 맞나 싶었거든요. 확신하면서도 또 의심의 중간 지점을 계속해 가면서 생각을 많이 했죠. 감정 신도 신파로 흐르지 않기 위해 한 커트씩 조심스럽게 다가갔고요. 수많은 피해자가 '그럼에도 내일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것에 대한 좋은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마음이에요."
이 감독은 피해자에게 또 다른 피해를 주고 아프게 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를 잘 알고 있다. 그의 답은 조심스러우면서도 단호하다. "사람들이 그런 엄청난 일이 생겼을 때 가해자를 죽여야 한다는 말을 잠깐 하고는 끝이더라고요. 피해자에 관해서 관심을 안 두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고도 하는데, 이미 많이 그렇게 해왔지만 나아진 게 없잖아요? 탈무드에서 '잘 살아라. 그것이 최고의 복수다'라고 한 것처럼 엄중한 처벌도 좋지만, 피해자들이 잘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감독은 극 중 소원(이레)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코코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코코몽'은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엄청난 아픔을 당한 뒤, 남자인 아빠까지 밀어내는 소원에게 아빠가 다가가기 위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극 중 동훈(설경구)은 '코코몽' 탈을 쓰고 소원이와 대화를 시도한다.
"코코몽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힘든 현실이에요. 정말 피하고만 싶은 현실이죠. 하지만 코코몽이 나오고부터는 판타지의 시작이에요. 코코몽 탈을 쓴 동훈이 병실에서 소원이와 대화할 때 관객으로부터 공감을 못 얻으면 그 뒤는 다 무너진다고 생각했죠. 감정을 억지로 넣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정말 정성스럽게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이 감독은 물론 주연배우들도 촬영하며 울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도 울었다. 언론시사회 때도 눈물을 훔쳤다. 엄청난 노력을 했으니 관객이 '신파 아니냐?'고 말한다면 화가 날 것 같다. 하지만 오히려 이 감독은 "그렇게 된다면 그건 내 잘못"이라고 했다.
그는 "그 사람이 그렇게 본 건 자신들의 자유의지"라며 "내가 불손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받아들여진다면 내가 나한테 지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심이 묻어나는 말이다.
이 감독은 배우들의 연기도 연기지만, 시나리오를 쓴 작가를 특히 칭찬했다. 일곱 번 정도 고쳐 쓴 시나리오는 그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 그가 복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다. 사실 앞서 '소원'은 다른 이름으로 다른 감독과 배우에 의해 진행하려다 엎어졌다. 없어질 이야기는 이 감독의 손을 타고 살아났다.
##작가 진정성 전달하려 노력…나는 디테일만 보태
"여성 작가가 수정해서 책을 보내왔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성폭행과 관련한 감성과 인물 간 입장들이 정말 섬세하고 정확하게 그려져 있더라고요. 아이가 그 사건을 바라보는 것에 대해서도 표현이 잘 돼 있었죠. 일을 당하고 병원 회복실에서 아빠를 만난 첫 대사가 '아빠 회사는?'이잖아요. 아이가 그 엄청나고 끔찍한 상황을 자각했다면 '아빠 나 죽을 거야!' 그랬을 거예요. 상황과 대사 하나하나가 깜짝 놀랄 정도였어요."
이 감독은 자신은 "작가의 진정성을 배달한 배달부일 뿐"이라며 "디테일하게 조금 더 표현했을 뿐이지 책 내용 그대로였다"고 공을 돌렸다.
아역배우 이레도 칭찬했다. 다른 이름으로 진행된 이 작품의 오디션을 보고 떨어졌던 아이인데 이 감독은 다시 오디션을 봤다. 테이프를 돌려보던 이 감독이 이레의 목소리와 눈을 보고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사실 부모는 말렸는데 이레가 '이거 연기잖아요. 하고 싶어요'라고 해 결국 출연하게 됐다"며 "정말 잘 해줬다"고 만족해했다.
입담꾼인 이 감독은 인터뷰 내내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피해자들에게 누가 될까 노심초사였다. 성폭행 관련 부분이나 현실의 사례 등에 대해서는 특히 조심스러워했다.
다행히 현재까지 반응은 호평 일색이다.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선에 놓인 영화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통해 감동과 재미를 전한다. 반응을 전하자 이 감독은 "휴~" 하고 숨을 내쉬더니 "다행"이라고 웃는다. 그는 "이 영화의 진심이 관객들에게도 전해졌다면 그건 내 노력만이 아니라 배우, 스태프, 작가 등의 열망이 하나로 모여 이뤄진 것"이라고 좋아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이 소재가 주는 거부감을 어떤 것도 쉽게 넘어갈 수는 없기에"라며 여전히 조심스러워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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