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상(61'대구시 수성구 파동) 씨. 그는 꽤 괜찮은 기업에서 근무하다 2년 전 은퇴했다. 직장생활을 할 때만 해도 그는 남부럽지 않을 노년을 상상했다. 그러나 은퇴 후 별다른 소득 없이 노후자금을 곶감 빼먹듯 하면서 2년을 살다 보니 점차 두려운 생각이 밀려들었다. 불안이었다. 과연 남은 은퇴자금을 가지고 몇 년이나 버틸 수 있을까. 이러다간 자식들에게 짐이 되는 부모가 되지는 않을까.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아졌다.
김씨와 같은 은퇴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자칫 관리를 잘못해 돈 없이 오래 살아야 하는 무전장수(無錢長壽)의 위험을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달 얼마를 써야 이런 위험을 피할 수 있을까. 은퇴자들의 첫 번째 고민이다.
◆금융권은 이런 계산서를 내놓았다
은퇴를 하면 분명 생활비를 줄여야 하는데 얼마까지 줄여야 하며 어디까지 줄일 것인가. 은퇴전문가들은 통상 노후 생활비는 은퇴 직전 생활비의 70%가 적당하다고 말한다. 매달 300만원을 썼다면 은퇴 후 생활비는 대략 210만원이 적당하다는 것이다.
삼성생명이 계산한 노후의 월 생활비는 대략 이렇다. 국내여행이라도 다니고 차를 유지하려면 월 198만원이 필요하다. 100만원이 조금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국민연금으로만 이만큼의 생활비를 마련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밥만 먹고 사는 데는 한 달에 133만원이 있어야 한다. 이 돈으로 살려면 경조사는 물론이고 자신을 위해 건강검진조차 받을 수 없다. 월 2회 골프라도 치고 연 1회 해외여행을 즐기려면 적어도 한 달에 372만원 이상의 생활비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계산서를 내놓고 있다.
부부가 이런 생활을 30년간 유지하려면 5억~14억원이 있어야 한다는 근거가 여기서 나온 것이다.
LG경제연구원은 거주 지역에 따라 월 생활비의 차이를 볼 수 있는 자료를 내놓았다. 서울보다는 광역시에 거주하면 15~20% 정도의 노후생활비가 줄어들었다. 또 광역시보다는 군 단위에서 생활하면 35~45% 정도 생활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서울에서 생활하지 않고 군 단위로 가서 노후를 보낸다면 필요한 자금을 절반 이상으로 줄일 수 있다. 실제로 50세 동갑부부가 60세 은퇴할 시점에 필요한 노후자금(20년 기준. 평균수준의 생활)은 서울이 3억1천371만원, 광역시가 2억4천813만원, 군 단위는 1억4천235만원이었다.
어디서 살까가 노후자금 규모에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는 이유다.
◆수십억의 노후자금, 비판도 거세다
한국은퇴자모임은 은퇴생활을 하기 위해서 8억~12억원이 필요하다는 일부 금융계의 주장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노후자금으로 수억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너무 쉽게 나오고 있다. 살고 있는 집이 전세든 자기 소유이든 집값을 빼고 순수한 은퇴자금이 12억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기가 찬다.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고액소득자인 금융계에 근무하거나 대기업의 연구원들이다. 더구나 그들은 아직 늙지도 않았으며 은퇴를 경험하지 않았다"며 겁부터 주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물론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돈이 또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장성수 한국생애설계전문가는 "자산관리는 은퇴설계에 필요한 부분이긴 하나 행복한 노후를 위해서는 건강'사회관계 등 비재무적 관계도 설계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이어 그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골프 칠 돈은 있는데 친구가 없는 사람과 골프는 칠 형편은 못 되더라도 마음에 맞는 동네 친구와 산책하는 사람 중 어느 사람이 더 행복할까라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금융권에서 제시하는 수억원대의 은퇴자금은 사실 너무 막연하고 비현실적이다. 실제로 월급쟁이들은 그러한 엄청난 은퇴자금이 있지도 않다. 더구나 개인건강이나 생활방식이 천차만별이고 심지어 성격에 따라서도 생활비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이유로 한 달 생활비를 일률적으로 산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생활비를 계산하기 위해서는 그 쓰임새를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기본적인 생활비와 의료비, 장기요양비, 취미생활비 등이 그것이다. 이를 산정하는 방법은 대략 다음과 같다.
우선, 은퇴 이전 생활비의 일정 비율을 생활비로 정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략 70~80%가 적당하다고 말한다. 다음으로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전국 노인가구의 평균 생활비를 기준으로 한다. 노인가구의 평균 생활비는 2009년에 155만원이었다. 참고로 현재 최저생활비는 120만원이며 적정생활비는 170만원으로 조사돼 있다. 혼자 사는 가계는 이 금액의 70%를 잡으면 적당하다. 셋째로 여러 금융회사나 경제연구소에서 조사한 금액을 기준으로 결정하는 방법이다. LG경제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광역시에 사는 50세 동갑부부가 60세 은퇴 후에 평균수준으로 노후를 보내려면 2억5천만원 정도가 필요하고 풍족한 노후를 기대하면 5억5천만원이 있어야 한다는 자료를 내놓고 있다. 자신의 은퇴 후 라이프 스타일을 먼저 정하고 이에 맞춰 생활비를 예측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현재희 대구은행 PB팀장은 "은퇴 후 나이에 따라 생활비를 달리할 필요가 있다. 55세에 은퇴할 경우 65세까지는 경조사 비용이 많이 드는 시기이므로 생활비를 조금 더 많이 잡고 그 이후는 생활비를 줄이는 것도 한 방법이다"며 일률적으로 생활비를 책정하기보다는 자신의 라이프 사이클에 맞춰 조정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고 조언한다.
김순재 객원기자 sjkimforce@naver.com
그림: 화가 이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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