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명사회서 파멸로 치닫는 산골소년의 비극…『헌팅』

헌팅/조영아 지음/한겨레 출판 펴냄

소설 '헌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작가는 산골에 사는 소녀를 도시로 데려와 불행해진 실제 사건을 접한 뒤, 문명의 일등공신인 '기록'하는 행위와 그 이면에 깔린 인간의 욕망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제목 '헌팅'(사냥)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토끼사냥을 지칭하는 동시에 '사냥'을 더 잘하기 위해 만든 '총'이 사람을 '사냥'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기록'의 정체를 은유한다. (총의 발명과 점진적인 성능향상은 기록의 산물이다.)

소설에는 4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다큐멘터리 PD인 린은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나머지 세 사람의 인생을 추적, 기록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언제나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단 한 장면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 노력은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욕망, 돈을 벌겠다는 욕망, 더 나은 사회적 위치로 옮아가려는 욕망의 산물이다. 그녀는 좋은 장면을 담기 위해(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사회적으로 출세하기 위해) 어쩌면 하지 않았어야 할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나머지 3명의 등장인물은 할아버지(박기용)와 아들(박승준), 손자(시우) 등 3대다. 할아버지 박기용은 고기잡이배의 요리사로 일하다가 배가 고장 나는 바람에 납북되었다. 남쪽에 처자식을 두고 있었던 그는 북에 납북되어 세뇌교육을 받고 결혼을 해서 또 처자식을 둔다. 10년 뒤 남으로 남파된 그는(작가는 이 부분을 남파라고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저 두만강을 건넜다는 표현으로 간첩행위를 위한 남파를 암시하면서도 박기용의 의지와 관계없는 남한행임을 보여준다.)

납북도 남파도 자신의 의지와 무관했던 박기용은 끝내 '전향'하지 않는다. 그는 양쪽에 모두 처자식을 두고 있었으며, 어느 쪽에도 속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세속적으로는 양쪽의 처자를 보호하고, 내면적으로는 '절대자유'를 지향했다. 그러나 그의 '절대자유' 지향이 아들을 파멸로 몰아간다.

아들 박승준은 아버지가 전향을 거부함으로써 꿈을 빼앗기고, 감시와 좌절의 세월을 살아간다. 그는 아버지의 비전향을 원망하지만 종래에는 아버지가 원했던 자유로운 삶을 알아간다. 아버지의 전향 거부로 발생한 사회적 불이익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비행기에 몰두한다. 비행기는 배를 탔던 아버지에 대한 저항이자, 자유롭게 창공을 날고 싶은 자아에 해당한다.

비전향한 아버지와 연결된 탓에(연좌제) 한국사회에 뿌리내릴 수 없었던 그는 아내와 자식을 비행기에 태우고, 이념의 세상을 벗어나 '시원(始原)의 숲'으로 날아간다. 그는 숲과 절벽으로 이루어진 공간에 착륙을 시도했으나 추락하고, 갓난아기만 살아남는다. 갓난아기 시우는 일찌감치 숲으로 숨어들어와 살던 노파의 손에 길러진다. 산골의 원시소년 시우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시우는 숲에서 자랐기 때문에 문자를 몰랐다. 그는 15세쯤의 나이에도 자작나무에 키를 재면서 '나이를 잰다'고 믿는 아이다. 다큐멘터리 PD 린은 원시인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는 제보를 접하고 시원의 숲을 찾아가 시우를 만난다.

시우와 시우를 보호하는 노파의 삶을 촬영한 그녀는 훌륭한 다큐멘터리 작품으로 세간의 호평을 받게 되고, 시우를 현대 문명사회로 데리고 온다. 그녀는 시우에게 문자와 문명을 가르치면서 자본주의의 총아 '아이돌 스타'로 키운다. '토끼'를 사냥하던 시우는 '문명'을 사냥하는 데 성공하는 듯 보인다. 시우는 토끼를 몰 듯 문명을 몰아붙인다. 그러나 문명을 쫓으면 쫓을수록, 몰리고 쫓기고 갇히는 쪽은 자신임을 발견하고 혼란스러워한다.

이 소설에는 여러 가지 은유가 등장한다.

사냥에 쓰이는 총, 어느 한 쪽에 서기를 강요하는 이데올로기, 절대 자유를 향해 하늘로 솟아오르는 비행기, 자본주의의 아이콘 아이돌 스타, 이 모두는 '기록'의 산물이며 '문명의 자식'이고, 문명 그 자체이기도 하다.

작가는 문명 속에서 파멸해가는 세 인물의 삶을 통해, 절대자유의 상태로 돌아가고자 노력하지만 끝내 파멸로 치닫고 마는 문명의 시대를 우울하게 증언한다. 작가 조영아는 2005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2006년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336쪽, 1만2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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