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FC '축구는 계속되야 한다'
2일 부산 사직구장. 9회 말 삼성라이온즈의 마무리 투수인 오승환 선수가 던진 공이 포수 미트로 빨려 들어갔다. '스트라이크!' 삼진아웃. 타석에 들어선 롯데 자이언츠 손아섭 선수는 고개를 떨꿨고 그라운드에서는 삼성 선수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이날 삼성은 정규시즌 우승 확정과 동시에 프로야구 출범 후 아무도 밟아보지 못한 정규시즌 3년 연속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삼성이 정규리그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1989년 프로야구 단일리그가 출범한 이후 7번째다. 2일까지 성적은 75승 50패 2무.
'우린 언제 우승을 한번 하나?' 이날 오후. 방송을 통해 삼성의 우승을 지켜보던 김정웅(40) 씨는 기쁨도 잠시.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지역 연고 야구팀의 우승에 박수라도 보내주고 싶지만 '골수 축구팬'인 김 씨는 지역 프로야구의 위상과 반비례하는 지역 프로축구의 위상에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대구FC는 4일 현재 4승 9무 16패의 초라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대구FC를 둘러싼 여러 가지 잡음으로 마음이 편치 않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있다. 야구에 비해 미운 자식 취급을 받는 지역 프로축구. 그러나 팬들의 사랑은 여전하다. '대구의 프로축구는 계속돼야 한다.' 지역 축구팬들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내우외환(內憂外患).
저조한 성적 만이 문제가 아니다. 감독 및 단장 선임 때마다 말썽을 빚는가 하며 비리로 구속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한마디로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대구FC는 2002년 대구 시민과 지역기업들의 힘으로 국내 최초로 시민구단으로 탄생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크고 작은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잇따라 터지면서 존립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올 들어서도 구단운영 등을 두고 김재하 단장의 사퇴 선언 등 팬과 대구FC, 그리고 대구시 사이에 잦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김 단장의 복귀 선언으로 봉합되기 했지만 불씨를 남겨 두고 있다. 올 시즌 지휘봉을 잡았던 당성증 감독은 8경기를 마친 뒤 자진사퇴했다.
창단 이후 몇 명의 감독과 단장이 팀을 맡았지만 뒷말 없이 떠난 이가 거의 없을 정도다. 2010년에는 팬들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박종선 단장 퇴진운동을 공개적으로 펴 박 단장이 사퇴하기도 했다. 또 용병 영입과정에서의 비리로 변병주 전 감독이 구속되기도 했다. 그해 대구FC는 전년과 마찬가지로 성적도 꼴찌였다. 이듬해에는 대구FC 선수들이 승부 조작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져 검찰의 수사를 받기도 했다.
상황이 이러니 성적이 좋을 수 없다. 2003년 K리그 참가 첫해에 12개 팀 가운데 11위를 기록한 이후 2006시즌 7위가 역대 최고 성적이다. 2004 시즌 10위, 2005시즌 9위, 2007시즌 12위, 2008시즌 11위였다. 2009와 2010시즌에는 최하위인 15위를 기록했다. 2011과 2012년에는 경기방식이 다르긴 했지만 12위였다. 현재 4승 9무 16패로 같은 순위다. 창단 이후 우승은 고사하고 플레이오프조차 가보지 못했다.
대구시축구협회 관계자는 "대구FC는 잘될 수 없는 팀의 요소는 다 갖추고 있다. 감독과 단장 영입 때마다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구단운영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 시민 구단이다 보니 주인이 없고, 주인이 없으니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 기업의 후원에 기대야 하지만 연간 수십억원씩 내놓을 기업도 없다. 근본적으로 프로 구단을 운영할 수 없는 조건이다"고 했다.
◆축구는 계속돼야
팬들의 사랑은 여전하다. 최근에는 '대구FC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구FC 살리기 운동도 시작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그라지예'(그렇습니다의 경상도 사투리) 등 대구FC 서포터즈가 있다.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경기장으로 달려와 선수들에게 변치 않는 사랑을 보내는 대구FC의 12번째 선수들이다. 대구FC에 문제가 발생하면 1인 시위나 항의문 발표 등 집단행동도 불사하고 있다. '대구시의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 이들은 지역 축구 발전을 위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라지예 회원인 김성수(44) 씨는 "대구시와 구단은 대구FC를 살려야 한다. 예산 부족과 마케팅의 어려움은 대구만 겪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대구FC가 대구의 상징은커녕 대구의 부끄러움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회원인 이미영(30) 씨는 "최근 AFC(아시아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한 중국 광저우 헝다를 봤을 때 엄청난 자금력을 바탕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자금력이 프로축구팀 전력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사례다. 눈앞에 보이는 성적보다는 미래를 염두에 둔 투자와 운영이 필요하다"고 했다.
일반 축구팬들의 생각도 같다. 골수 축구팬인 이정훈(43) 씨는 "대구시는 대구FC를 낳은 부모인데,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를 낳았으면 책임지고 키울 생각을 해야지 방치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에서 보듯 프로축구단이 자리 잡으려면 수십 년이 걸리고 지속적인 투자가 뒷받침돼야 하는 만큼 대구시는 인내심을 갖고 대구FC를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침체된 축구 열기를 되살릴 여러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대구FC 공식 서포터즈 '그라지예'를 이끌고 있는 조승범 씨는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클럽하우스가 마련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그라지예 회원이 늘지 않아 고민이란다. "전용구장은 둘째이더라도 클럽하우스는 꼭 필요하다. 그래야 선수들의 경기력이 향상되고 그 결과 흥행과 투자가 이뤄지고 다시 성적이 좋아지는 선순환 구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대구FC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한 축구팬의 얘기. "'축구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최소한 대구FC의 홈경기는 지역 방송 채널을 통해 중계를 꼭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축구팬들에게 '대구FC 경기 보러 가면 ○○는 꼭 하더라, 재밌다. 볼만하다'는 느낌을 줘야 합니다."
◆응원석을 채워라
대구FC에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축구를 멀리했던 팬들이 대구스타디움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홈 경기장인 대구스타디움의 트랙을 개방하는 역발상으로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경기 전 육상 트랙에 선수사인회와 참여 이벤트를 마련하고, 관중들이 선수단 워밍업을 가까운 곳에서 관전하며 사진촬영도 할 수 있는 특별한 체험 기회를 제공했다.
지역기관과 연계한 다양한 활동도 펼치고 있다. SNS를 통해 선수들이 직접 팬들에게 공약을 제시해 약속을 지켜나가는 '공약 릴레이'로 팬과 선수 간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노력도 이어갔다. 특히 지난해부터 처음으로 '대구FC 현장스태프'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대구FC의 홈경기 및 이벤트 등을 지원하는 현장스태프로 축구 관련 업무를 체험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지난해 상반기 동안 1경기 평균 6천830명에서 30.8%가 증가한 8천936명이 대구스타디움을 찾고 있다.
5일 오후 4시 대구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대전전에서는 팬들이 직접 기획하고 만들고 진행하는 홈경기가 펼쳐진다. 이날 경기 스태프는 모두 대구FC를 사랑하는 팬들의 재능기부로 펼쳐진다. 이미 대구FC 홈페이지를 통해 볼 보이, 입장 안내, 들것조, 운영 스태프 등이 구성됐다.
이날 응원석에서는 대구FC 승리를 위해 다 함께 '대구찬가'를 부르며 응원하는 시간도 가지며 하프타임 때는 응원석에서 '팬 프렌들리 클럽' 시상식을 가지고 팬들과 함께 기쁨을 공유하는 의미 있는 자리를 만든다. 앞서 2일 오후에는 대구FC 선수들과 함께 중앙로에서 거리 홍보에도 함께 나서는 등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히 홈경기 홍보를 했다.
팬들과 함께 소통'공감하려는 노력 덕에 대구FC는 지난 9월 언론사 투표를 통해 2013년 제2차 '팬 프렌들리 클럽' 선정되었다. 대구FC 박종민 홍보마케팅 담당은 "다양한 홍보와 마케팅, 이벤트로 대구가 축구의 성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물론 팬들에게 가장 큰 선물은 승리인 만큼 경기력 향상에도 많은 투자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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