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클레멘타인은 우리 국민들의 애창곡이었다. 모임이나 소풍, 동창회, 회식 자리 등에서 툭하면 노래를 부르라 하고, 벌칙으로 노래를 주문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일 것이다. 클레멘타인은 이런 어색한 자리에서 가장 만만하고 편하게 부를 수 있는 노래였다. 다장조, 4분의 3박자, 보통 빠르기, 쉽고 단순한 곡이어서 클레멘타인을 모르는 국민은 없었다.
1849년 골드러시 직후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는 황금에 눈이 먼 포티-나이너(forty-niner)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일확천금을 꿈꾸며 직장까지 내팽개치고 캘리포니아 중부 새크라멘토로 몰려왔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과 가혹한 노동 속에서 영양실조로 목숨을 잃는 포티-나이너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들이 애써 캐낸 황금 또한 대도시 자본가들의 배만 불려줄 뿐이었다. 클레멘타인은 포티-나이너들의 자조 섞인 노래였다.
광맥을 찾아다니는 사나이에게 클레멘타인이라는 딸이 있었네
사랑스러운 클레멘타인, 세상에서 영원히 떠나버렸네
불쌍한 클레멘타인, 그녀는 요정처럼 가벼워 구두 사이즈는 9
매일 아침 9시 물가로 오리를 데리고 갔네
어느 날 발이 걸려 넘어져 수렁에 빠지고 말았네
클레멘타인이 한국에 전해진 것은 3'1운동 직후였다. 대구 출신의 작곡가 박태준의 형 박태원이 원 가사를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번안했다. 노래를 부르다 보면 한없는 쓸쓸함이 느껴진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클레멘타인은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는 결손의 상태를 보여준다. 흔히 고향을 소재로 하는 노래에서 아버지는 가사 속에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아버지의 부재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원한 동경으로 나가도록 하는 고향에 어머니가 없다는 사실은 심각한 결핍의 상태를 나타낸다.
홀아비 삼 년에 이가 서 말, 과부 삼 년에 쌀이 서 말이라는 속담이 있다. 아마도 가장 측은해 보이는 가족 형태가 홀로 된 아비가 딸을 키우는 구조일 것이다. 딸을 먹이고 입히며 사는 꼴이 어설프기 그지없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절로 든다. 부녀의 몰골 또한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꼴이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부재는 유년기의 부재를 말한다. 나아가 모태로 상징되는 토지를 잃어버린 식민지 대중의 체험을 의미화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은 아버지가 고기 잡는 어부라는 사실에서 더욱 현실적으로 드러난다.
한데 그도 모자라 딸마저 어디론가 떠나버린다. 홀로 남은 아비의 신세는 처량하기 짝이 없다. 가부장적 세계에서 아버지는 질서의 상징이지만 그의 권위는 가족 구성원이 충족되었을 때만 발휘되는 것이다. 가족을 모두 잃은 아버지에게서는 어떤 권위도 위엄도 찾아볼 수 없다.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고 탄식하는 아비의 모습은 처절하다. 박태원의 가사는 시대 전횡에 휘둘려 붕괴한 가족과 힘없는 아버지를 통해서 중심을 잃어버린 식민지의 역사적 조건을 총체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온 국민이 이 노래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클레멘타인은 해방 이후에도 널리 불렸다. 쉽게 가난을 벗어날 수 없던 척박한 시절, 클레멘타인에 나타난 고달픈 삶의 맥락은 일찌감치 학업을 접고 오빠나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하며 가장 노릇을 하던 윗세대 여성들의 삶과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가난과 결핍의 체험은 가족의 의미로만 국한되지 않고 보다 공동체적인 의미로 확대되었으며, 클레멘타인은 어느새 우리들의 클레멘타인이 되어 가슴 언저리에 자리 잡게 되었다.
예술은 끊임없이 오래되고 낡고 힘없고 약한 것들 쪽으로 지향성을 보인다. 삶은 무거울수록 더욱 진지해지고 참된 것이 된다. 그래서 가난했지만 진정성 있던 날들의 노래가 아련하게 그리워지는 것일까.
서영처 시인·영남대 교책객원교수 munji6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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