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스시와 베트남의 퍼(쌀국수), 태국의 돔양꿍은 화려하지도, 고급스럽지도 않지만 모두 세계화에 성공한 음식이다. 태평양을 한 우물로 삼고 있는 아시아'태평양(APEC) 연안국가들의 향토 음식은 무엇을 재료로 어떻게 세계화에 성공했을까. '날아다니는 것은 비행기 빼고, 다리 달린 것은 책상을 제외하고 모조리 요리 재료로 쓴다'는 음식대국 중국도 최근 지역별 전통 향토 음식의 관광상품화에 나섰다. 대통령 부인의 사업으로 지난 5년간 추진했음에도 그 결과가 흡족하지 않다는 우리나라의 한식 세계화는 과연 요원하기만 한 것일까. 아시아'태평양 연안국가들을 중심으로 세계화에 성공한 음식들에 대하여 현지 취재를 통해 그 해법을 찾아본다.
◆서해산 꽃게조림 중국 '짱포 방시에'
중국 산둥성 웨이팡 지역의 향토 음식인 '짱포 방시에'는 인구 750만 명인 웨이팡시의 11개 현 중 황해의 해변가 지역인 창이(昌邑)현의 시푸드형 전통음식이다. 중국 전통 도시인 웨이팡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모옌의 고향. 중국을 대표하는 서예와 동양화의 거장들이 많이 배출돼 중국 내 예향으로 친다. 그래서 그런지 전승'보전되고 있는 전통음식도 다양하다.
"중국 사람들이 산둥성 웨이팡 지역을 여행할 때면 꼭 찾아가서 먹어 보는 특산음식입니다." 통역을 맡은 웨이팡대 한국어학과 4학년인 구차오등(23) 씨는 칭다오공항에서 만나자마자 서투른 한국말로 짱포 방시에를 자랑한다.
짱포 방시에라는 음식은 '폭탄처럼 강한 불로 꽃게를 튀겨 내고 중국 된장을 이용해 다시 조려 낸다'는 조리 과정이 이름이 된 셈이다. 우리 말로는 '튀긴 꽃게 조림'이라고 해야 할까. 칭다오 공항에서 약 150㎞ 떨어져 있는 짱포 방시에의 고장 창이현은 웨이팡시 관할 읍 단위이나 인구가 무려 70만 명이나 된다. 현재 창이방송국에서 아예 자체 주방을 차려 놓고 방문객들에게 이 음식 만드는 법을 시연해 보여 주는 등 향토 음식 산업화를 직접 관리하고 있다. 이 음식을 취재하러 중국 내 다른 방송국 취재진들이 창이방송국으로 찾아온다. 우리 체제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지만 당과 행정기관, 언론이 일체로 움직이는 중국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지역방송 스스로 향토음식 홍보와 산업화를 맡은 셈이다.
"짱포 방시에를 조리하는 전통음식 계승자를 아예 창이방송국에서 고용하고 있지요. 현재 중국 사회는 전통 향토 음식의 전국화와 명품화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웨이팡신문사 문화부장인 웨이웨이(42) 씨는 한국의 안동간고등어처럼 짱포 방시에도 언론의 관심을 받으면서 중국 내에서 아주 유명한 향토 음식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창이현에서 나는 게는 바닷게와 민물게가 있는데 짱포 방시에는 바닷게를 식재료로 삼고 있다. 짱포 방시에는 땅콩을 소금으로 발효시켜 한국의 된장처럼 만든 이곳 된장이 음식 맛을 내는 비결이다. 특이하게도 짜지 않고 깊은 단맛이 나는 이 땅콩된장의 역사는 1천 년이나 된다고 한다. 재료로 쓸 꽃게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고. 그래서 대부분 활어 꽃게를 쓴다. 현재 중국의 여러 고급 호텔에서 주방장들이 많이 배워가고 있다는 짱포 방시에의 주요 재료를 정리하면 꽃게와 창이 땅콩된장, 밀가루, 땅콩기름, 콩기름이며, 보조재료는 생강, 양파, 마늘, 조미용 술(청주)을 쓰고, 입맛에 따라 취향대로 뿌려 먹을 수 있도록 후추, 고추, 설탕, 맥주, 들깻잎을 식탁에 준비한다.
◆짱포 방시에 맛은 중국 땅콩된장이 좌우
"짱포 방시에는 아주 옛날 우리 창이현 사람들의 조상이 만든 음식입니다." 짱포 방시에 조리기법 계승자인 웨이링 웬(45) 씨는 원래 창이현 내에서 짱포 방시에 전문식당을 했으나 창이방송국에 근무하게 되면서 그만뒀다고 한다. 부인의 동생 즉 처남인 쉔위퀴엔(39) 씨가 방송국에서 웬 씨로부터 조리기법을 전수받아 주방장으로 일하고 있다. 창이방송국 내 짱포 방시에 조리 주방은 약 120㎡ 정도. 웬 씨는 워낙 음식을 배우려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아예 방송국 측이 전용 주방을 차렸다고 귀띔한다.
"게딱지 크기가 약 5㎝ 정도인 작은 꽃게가 요리에 가장 적당합니다." 웬 씨는 집게발을 밴드 고무줄로 묶어 놓은 꽃게 한 바구니를 가져 와 자세하게도 설명한다. 꽃게는 박해산이 가장 좋다고 한다. 산둥성 북쪽의 이 바다에서 나는 박해 꽃게는 집게발이 작고 게발 전체가 짧은 대신 몸통이 통통해 살이 알차단다. 박해는 바닷물이 차고 소금기가 적어 다른 바다에 비해 꽃게의 성장이 더뎌서 그렇단다.
꽃게로 짱포 방시에 조리에 들어갈 참인 주방장 쉔위퀴엔 씨는 먼저 살아 있는 게를 넓적한 주방 칼로 쫙 소리가 나도록 단번에 반씩 갈라 놓는다. 솜씨 있게 잘라서 그런지 잘라 놔도 다리가 꿈틀거린다. 게 속살이 두부처럼 희다. 반쪽 게의 잘린 면에다 밀가루를 찍는다. 마른 밀가루는 금세 잘린 면의 게 속살 물기를 흡수해 어울리면서 굳어져 속살이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막는다. 자연스럽게 밀가루 피복을 만든 것. 그다음 순서는 달궈진 팬에 기름을 두르고 잘린 면을 아래로 하여 오목한 후어(번철)에 꽃게를 세운다. 그러자 게 다리가 일제히 바르르 떤다. 잘린 면의 밀가루가 눌어붙을 정도로 튀겨지면 가로세로 1㎝ 크기로 미리 썰어 둔 생강, 마늘, 파 등을 넣고 다시 튀긴다. 그다음 게딱지가 붉은색이 나도록 세게 튀겨 낸 후 간장소스를 넣고 재료가 잠길 만큼 흥건하게 물을 부어 준다. 조리 시작 때 꽃게의 잘린 면에 묻힌 밀가루가 국물에 조금 풀리면서 자연스럽게 집어리가 생긴다. 다시 물에 푼 땅콩된장으로 간을 맞춘 다음 거품이 넘쳐 나도록 강한 불로 오랫동안 졸인다. 국물이 졸여져 자작자작 소리가 날 즈음 번철을 흔들어 양념이 골고루 들도록 여러 번 게를 뒤집어 준다. 능숙한 솜씨를 자랑이라도 하듯 주방장의 손놀림은 대단하다. 세찬 화덕불은 용광로처럼 '윙윙' 소리를 낸다. 금세 번철의 가장자리에 양념이 눌어붙는다. 땅콩기름이 발린 꽃게가 반들반들하다. 꽃게 특유의 고소한 냄새가 주방 전체에 진동한다. 조리를 하는 주방장 쉔위퀴엔 씨도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한국인 입맛에도 딱 맞는 짱포 방시에
"웨이다오 하오!(맛이 좋습니다!)" 짱포 방시에는 게 속살 맛보다 게다리나 등껍질에 묻은 양념 맛이 더 맛있다. 웨이팡 사람이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들 좋아하는 향토 음식이다. 쌀밥하고 궁합이 맞아 서울에 체인점을 내도 좋을 정도로 한국인의 입맛에도 딱 맞다.
창이방송국 짱포 방시에 조리시연 스태프인 영주엔(27) 씨가 계란을 풀어 걸쭉하게 수프로 끓인 부추계란 조개탕을 떠 주면서 먼저 먹어 보란다. 조개탕엔 한국사람이 싫어하는 향채를 쓰지 않았단다. 배려가 자상하다. 갓 졸여 내 뜨거울 때 먹는 것이 가장 맛이 좋으니 식기 전에 어서 먹어 보라고 조른다.
게 다리를 들고 한 입 베어 무니 달고 쫄깃하고 짭조름하다. 랍스타 요리도 킹크랩 요리도 맛이 이만큼이나 할까. 가히 환상적이다. 고소하고 감칠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밥이 있었으면 참 좋겠는 데 하는 생각이 저절로 난다. 마늘과 양파, 생강 등 양념 맛도 너무나 잘 어우러져 있다. 게살 특유의 고소하고 달콤한 맛을 잘 살려냈다. 짱포 방시에 조리법 계승자인 웨이링휀 씨가 60도짜리 독주를 내오면서 빙그레 웃는다,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건륭황제가 먹던 차룡배 술이란다. 튀긴 꽃게 조림인 짱포 방시에는 중국 독주의 술안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린다.
우리나라 충청도와 맞닿은 서해 건너편에 위치한 웨이팡시 창이현은 바닷가 지역이어서 해산물이 향토 음식 재료의 주종이다. 그래서 짱포 방시에와 곁들여 낸 서대찜은 마치 우리의 호남 음식처럼 느껴졌다.
"한국에 창이현 특산음식 짱포 방시에를 소개할 수 있어서 참으로 영광입니다. 중국 문화대혁명 때 다 소실되어 향토문화라고는 없는 이 작은 도시에 향토 음식이라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짱포 방시에가 세계적인 음식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웨이링웬 씨의 소망이다. 그는 창이방송국과 직접 식당 운영 등으로 통해 25년 경력을 쌓아 짱포 방시에만큼은 중국에서 1인자다. 동행한 웨이웨이 씨는 창이지역에서 웬 씨 이외의 다른 사람들도 음식을 하고 있지만 맛은 별로라고 한다.
서해바다에서 잡혀 흔한 꽃게를 두고 마치 바닷가재를 요리하듯 귀중한 식재료로 여기는 창이방송국 주방장들의 진지한 모습과 중국 전통 조리기술, 그리고 조리사들의 정성이 깃든 짱포 방시에를 보면서 우리나라에서 서해산 꽃게를 이용한 향토 음식은 어떤 것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꽃게탕, 꽃게찜, 간장게장, 꽃게무침이 전부. 그냥 '삶아 먹고 절여 먹는' 수준이다. 같은 바다 서해를 한 어장으로 삼고 사는 입장인데도 한'중 간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향토 음식 산업화에 대한 중국의 꿈틀거림도 보인다. 시푸드가 월드웰빙 음식으로 각광받게 되면서 세계 각국마다 해산물을 이용한 관광음식 개발을 앞다투고 있는 지금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한식 상차림은 아직도 농'축산물 위주이고 해산물은 반찬 재료 정도로 다뤄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중국 산둥성 웨이팡에서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사진작가'차종학 cym47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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