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에 의학 교육 싹 틔운 두 日人의 아름다운 우정

요시다 쥰이치로
요시다 쥰이치로
카미무라 나오치카
카미무라 나오치카

대구의학강습소 설치를 청원한 요시다 쥰이치로를 이야기하면서 당시 대구자혜의원장이던 카미무라 나오치카를 빼놓을 수 없다. 카미무라는 1920년 도립 자혜의원장으로 대구에 왔고, 당시 요시다는 자혜의원 외과 의사였다.

김용선 교수는 카미무라 나오치카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김주야 박사와 함께 조사에 들어갔다. 처음 받은 자료는 '1884년 고치현 출생-1909년 동경제국대학 의학부 졸업, 동경제국대학 내과학교실 강사-1920년 대구자혜의원장-1929년 사망'이었다. 출생지에 먼저 눈길이 갔다. 카미무라는 고치현, 요시다는 가가와현 출생이었다. 두 곳 모두 일본 혼슈 아래 시코쿠섬에 위치하고 있다. 카미무라가 요시다보다 1년 먼저 태어났지만 1904년 같은 해에 동경제국대학 의학부에 입학하고, 1908년 함께 졸업했다. 동기 동창인데다 고향도 같은 셈이다. 김용선 교수는 "요시다 가족을 두 번째 방문했을 때 그분들이 더욱 마음을 열고, 집안 제단에 보관했던 엽서와 졸업앨범을 주었는데, 같은 페이지에 나란히 두 사람의 사진이 있었다"고 했다.

김용선 교수의 글을 빌려 당시 상황을 재현하자면 이렇다. 1904년 교토대 예과를 마친 요시다 쥰이치로와 동경제국대학 예과를 마친 카미무라 나오치카는 나란히 본과에서 만났다. 같은 시코쿠 출신이어서 쉽게 친해졌으리라. 이후 요시다는 외과학교실에서 조수(전임강사급)로, 카미무라는 내과학교실에서 강사(조교수급)로 재직하며 서로 자주 만났으리라 추측된다.

학교를 떠난 뒤 각자 지방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1920년 나란히 대구자혜의원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요시다는 외과부장, 카미무라는 원장으로. 3년 후인 1923년 드디어 의학강습소를 만들 때 경북도의 재정 문제로 인해 사립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도립병원장인 카미무라는 직제상 겸직을 못했고, 친구인 요시다에게 모든 일을 맡긴 것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1925년 요시다가 진급해서 도립 청주의원장이 됐고, 두 사람은 각자 대구와 청주의 도립의원장으로 근무하게 됐다.

요시다는 1925년 의원장으로 재직하던 중 비엔나로 유학을 떠났고, 연구결과를 동경제국대학에 보내 1927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27년 8월 11일 악성 근육종양으로 청주에서 숨을 거뒀다. 그리고 이어서 3주 후인 9월 6일 대구에서는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카미무라가 47세로 역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시코쿠 시골 마을에서 1년 차이로 태어난 두 사람은 일본 최고 명문인 동경제국대학 의학부를 함께 졸업한 뒤 내과와 외과 교수진으로 교육 경험을 쌓은 뒤 같은 해 이국땅 작은 도시 대구에서 다시 만났다. 의학교육의 불모지에서 의학강습소를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쳤고, 4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3주 차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90년 전의 운명적인 우정이 대구 의학교육의 싹을 틔운 것이다.

김수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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