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은 신념의 고장이다. 6'25전쟁 당시 격전을 벌이며 나라를 지켜냈던 구국의 신념, 한국 가톨릭의 성지로 숱한 박해에도 견뎌냈던 종교적 신념의 자취가 고스란히 살아있다. 전쟁과 관련된 역사유적지가 즐비하고 국내에서 성지와 성당이 가장 많은 군 단위 지역이기도 하다. 각종 학습 프로그램이 500여 개, 수강생 연인원이 전체 인구보다 많은 13만여 명에 이르는 평생학습도시로도 이름이 높다.
구미역에서 칠곡군 왜관읍을 오가는 버스는 수시로 오간다. 10번은 12분 간격, 좌석버스인 110번은 하루 5차례 오간다. 왜관남부정류장까지는 1시간 5분이 걸린다. 왜관읍에는 정류장 2곳이 있다. 북부정류장은 군청 및 왜관역과 가깝고, 새로 들어선 대규모 아파트단지와는 남부정류장이 가깝다. 시내버스는 두 정류장 모두 정차한다.
◆느긋하게 만나는 호국의 흔적
낙동강을 품고 있는 왜관읍에는 6'25전쟁 당시 격전지와 기념물이 산재해 있다. 강둑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전쟁 당시 치열했던 역사의 현장과 긴박했던 순간을 느낄 수 있다. 호국의 다리부터 낙동강변을 따라 관호산성까지 이어지는 3.8㎞ 길이의 '관호산성 둘레길'은 그 역사를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통로다.
둘레길은 호국의 다리부터 시작된다. 왜관읍 북부정류장에서 내려 호국의 다리 방향으로 가면 먼저 애국동산을 만난다. 조선은행을 폭파한 장진홍 의사를 비롯해 6명의 애국지사 기념비가 건립돼 있다. 잔디밭 위로 기념비가 여기저기 서 있고, 하얀 충혼탑도 눈에 띈다. 애국동산에서 내려와 호국의 다리(옛 왜관철교)를 건너면 1코스의 시작이다.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돌아 나무데크가 조성된 산책로를 걸었다. 왜관교 아래를 통과해 낙동강을 따라 걷는 길이다. 왕복2차로 도로를 따라 걷는데 꽤나 호젓하다. 수풀이 무성한 강변에는 소 한 마리가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여행객이 낯선 듯 풀을 뜯다 멈추고 한참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린다.
길게 뻗은 길은 칠곡보에서 산 쪽으로 방향을 튼다. 관호산성 둘레길 2코스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나무계단을 따라 오르는데 잠시 숨 가쁜 오르막을 지나면 능선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길이 이어진다. 한참 오르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어느 방향으로 가든 산성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온다. 관호산성은 신라시대인 6, 7세기경에 지어진 토성이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왜인들의 군사 거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오르막 끝에 다다르면 '낙동강 전투 격전지'라는 간판과 백포산 신라토성유지라는 비석이 나타난다. 멀리 유학산의 봉우리와 328고지, 낙동강변 융단폭격지 등 6'25전쟁 당시 격전지들이 그대로 시야에 들어온다. 풀이 무성한 폐타이어를 쌓은 참호는 오랜 세월이 묻어났다. 오솔길을 따라 돌아 내려오면 아직 남아있는 성돌이 군데군데 쌓여 있다. 1천500여 년의 세월을 견뎌온 성돌들이다. 전경이 워낙 좋기 때문인지 여기저기 묘들이 많다. 칠곡보를 건너면 왜관지구전적기념관이 있다. 전시관 앞에는 참전국들의 깃발이 휘날리고 1978년 건립한 이곳에는 당시 사용하던 무기류와 군복 등이 전시돼 있다.
◆가장 평등한 공동체, 왜관수도원
왜관 읍내로 돌아왔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1909년 설립된 한국 최초의 남자수도공동체다. 서울 백동(혜화동)에 설립됐던 베네딕도 수도원은 한국전쟁을 겪으며 흩어졌다가 1952년 7월 왜관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는 신부와 수사 등 수도자 70여 명이 생활하고 있다. 류지영 사무국장 수사는 "수도 생활을 중심으로 모인 가장 평등한 사회"라고 했다.
수도자들은 잠자리를 제외한 모든 생활을 공동으로 하며 사유재산은 인정되지 않는다. '금욕'과 '청빈'을 위한 원칙이다. 수도원의 일상은 오전 5시부터 시작된다. 하루는 크게 기도와 노동으로 짜여 있다. '기도하고 일하라'는 베네딕도 성인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서다. 하루 5차례 성당에 모여 기도를 하고 오전, 오후 두 차례 자신의 소임에 따라 일을 한다. 오후 8시 끝기도를 하고 나면 모두 침묵해야 한다.
수도원 안에는 교회와 문화 관련 서적을 출판하는 분도출판사와 성당의 창문을 장식하는 유리화 공예실, 제단에 사용되는 성작과 성반, 감실, 촛대 등을 만드는 금속공예실, 성당에 사용되는 의자와 제단 등 여러 가지 가구를 제작하는 가구공예소 등이 있다. 각종 농작물을 키우는 농장과 독일식 소시지를 만드는 일터가 수도원 바깥에 있다. 종신 서원을 하고 수도자가 되려면 6년 이상의 기간이 걸린다. 류 사무국장이 전시실로 안내했다. 전시실은 수도원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시대별로 자료가 전시돼 있다. 성당 벽에는 왜관수도원에서 선종한 수도자 35명의 사진도 걸려 있다. 류 사무국장은 "수도자의 가장 큰 영광은 평생 수도 생활을 한 뒤에 수도원 묘지에 묻히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금속공예실에서 전 안드레아 수사가 단동으로 만든 잔 모양의 성작 윗부분을 망치로 두드리며 연마작업을 하고 있었다. 수천 번, 수만 번을 두드리는 지난한 작업이다. "이렇게 두드려야 금으로 도금을 했을 때 면이 거칠지 않게 나오고 골고루 도금이 돼요. 모두 수작업이죠." 일을 해서 번 돈은 모두 재무 관련 부서에 전달하고 필요한 돈을 신청해서 받아서 사용한다. 외출'외박은 모두 사전에 허락을 받아야 하지만 1년에 보름간은 휴가가 주어진다. 수년 전부터 수도자가 되겠다는 이들이 줄어드는 건 고민이다. 류 사무국장은 "매년 성소자가 10여 명이었는데 최근에는 연간 2, 3명 정도로 줄었다"고 했다.
◆주민들이 만드는 인문학마을
오후 1시 40분 왜관 남부정류장에서 20번 버스를 타고 왜관읍 금남2리로 향했다. 버스정류장 건너편 마을 입구에는 오이집하장이 있다. 바깥에서 보기엔 평범한 농산물 집하장인데 내부는 딴판이다. 왼쪽에 마련된 게시판에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돼 있고, 오른쪽에는 주민들이 참여하는 사진반 학생들이 찍은 실습 사진들이 붙어 있다. 나무로 된 계단을 올라가자 체험 공간과 함께 한글과 산수를 공부하는 매봉서당 할머니들이 직접 그린 자화상이 가득 붙어 있었다. 삐뚤빼뚤한 선으로 그린 그림이지만 표정만은 생생하다.
안쪽에는 무대가 있고, 공동 식당도 마련돼 있다. 무대 뒤 벽화의 주인공은 마을 주민들이다. 110가구가 거주하는 금남2리에는 사진반과 풍물패, 스포츠댄스, 요가, 매봉서당 등 다양한 동아리들이 운영되고 있다. 주민들이 함께 점심을 먹는 공동 식당은 바쁜 농번기에 마주치기 어려운 주민들이 모여 식사를 하며 마을 대소사를 의논하고 정보도 교류하는 장이 된다.
4년째 열고 있는 마을 축제는 주민들이 직접 축제 포스터를 만들고 프로그램도 기획한다. 동아리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내며 직접 만들고 꾸미는 축제인 셈. "기존 축제는 주민들이 즐길 수 없는 축제잖아요. 그냥 누군가 와서 하는 공연을 보는 관람객의 입장일 뿐이죠. 하지만 우리 마을 축제는 직접 주민들이 참여하고 함께 즐기며 노는 축제예요. 자생력을 갖게 된 거죠." 이은수(48) 이장의 설명이다. 주민들이 배우기 시작한 후 삶도 바뀌었다. 배우고자 하는 욕심도 커졌고,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조용하게 숨어 있던 주민들은 주눅 들지 않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 할머니들은 정말 바빠요. 낮에는 농사일을 하고 매주 두 차례씩 공부도 해야 하고. 그래도 모두 즐거워해요." 이은수 이장과 부부인 김성호(48'여) 금남2리 정보화마을 운영위원장은 "문화적 풍요로움은 소속감을 높여 소외감을 줄여준다"고 했다. "소외 없이 마을 공동체가 융화돼 살아가는 것이 목표죠. 무대에서 못하면 어때요? 웃고 마는 거지. 과정 자체가 중요하니까요." 글'사진 장성현기자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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