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명미 선생이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자기 작업은 엉터리처럼 하는 주제에 남들에게 훈수는 곧잘 두는 것, 본인이 그렇다는데, 듣고 보니 내 이야기다. 나는 이런저런 평론을 쓴다. 긴 글, 짧은 글, 무미건조한 글, 툭툭 튀는 글. 당사자가 보면 비아냥거리는 투로 느낄 수도 있는 그 글들은 그들에게 화를 돋운다.
정작 내가 벌이는 기획은 그런 욕을 먹어도 할 말 없다. 지금 대구 지하철에서 볼 수 있는 '도시철도 프로젝트:아트열차'도 그렇다. 다른 곳에서 벌어진 지하철 프로젝트를 볼 때마다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이제, 내가 욕먹을 차례가 되었다. 꿈에 나올까 봐 두렵다. 수많은 손가락들이 나를 향하며 말을 한다. '고작, 이거냐? 고작!'
평생을 웅크린 채, 빛나는 학문의 전당 앞에 제대로 선 적이 없는 소심한 과학자가 있다. 정식 직업은 공무원이었다. 조용히 소개된 그의 이론은 이제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기술공학에 영향을 두루 미치고 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조지 스펜서 브라운(George Spencer-Brown)이다.
그가 런던 지하철에서 일하며 생긴 궁금증이 연구의 출발점이었다. 이것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철도망 속에서, 계산된 시간에 맞춰 운행됨에도 각 차량들이 왜 자꾸 엉켜 사고 확률이 높아지거나 정시운행이 어려워지는지에 관한 의문이었다. 그가 '형식의 법칙'(1969)이란 책에서 밝혀낸 사실은 합리적으로 짜여 논리가 세세한 변수까지 통제할 수는 없다는 일종의 카오스 이론이었다.
나는 공부하면서 열심히 읽은 스펜서 브라운의 이론을 현실 속에서 실현해보고 싶은 욕심을 늘 갖고 있었다. 정확하게 돌아가는 시스템 속에 생긴 빈틈. 이때 사람들은 사고 재난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여기 예술이 대신 끼어들 수도 있다. 어차피 예술은 도발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쉬운 일은 없다. 애당초 수학자, 지리학자, 미학자, 행정학자, 사회학자를 모아서 지하철에서 벌이고 싶었던 난상토론은 내가 게으른 탓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훌륭한 예술가들과 큐레이터들을 거느리고 시작한 일의 결과는 보시는 바와 같다.
내 구상이 허술하게 표현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어떤 칸은 감탄사가 나올 만큼 시각적 효과를 풍부하게 연출했다. 그런데 으스스해서 지하철 타기가 두렵다는 불만이 나온다. 또 다른 칸은 내가 구상한 그대로 딱 맞아떨어지게 완성했다. 이번에는 거꾸로 썰렁하다는 악평이 나온다. 그 어떤 공공미술조차도 남녀노소 모두를 만족시키는 작품은 나올 수 없는가보다. 다음에 만약 이와 비슷한 공공 프로젝트가 한 번 더 내게 맡긴다면 이명미 선생님, 도와주실 거죠?
윤규홍 갤러리 분도 아트 디렉터 klaatu84@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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