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한 해 결핵으로 사망하는 환자는 몇 명이나 될까?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결핵 사망자는 무려 2천364명에 이른다. 결핵은 우리나라가 못살던 시절 앓고 끝난 '지나간 질병'이 아니다. 바로 지금도 생명을 위협하는 '오늘의 병'이다. 결핵은 어떤 질병이며, 얼마나 우리 가까이에서 위협하고 있을까.
◆ 삶을 무너뜨린 결핵
지난 1일 오후 대구 남구 대명동 남구보건소 2층 결핵관리실. 결핵 환자 박모(39) 씨는 이날도 보건소를 찾았다. 키가 165㎝인 박 씨의 몸무게는 46㎏. 결핵을 앓은 뒤 10㎏ 가까이 살이 빠졌다. 박 씨는 결핵약인 리네졸리드(자이복스) 한 알을 보건소 직원 앞에서 꿀꺽 삼키고 확인서에 서명했다. 매일 같이 보건소까지 와서 약을 먹는 데는 이유가 있다.
결핵은 정해진 기간 동안 꾸준히 약을 복용하면 완치될 수 있다. 그러나 치료 기간이 6개월 이상으로 길고 약 부작용 탓에 꾸준히 먹기도 힘들다. 이 때문에 치료약을 보건소에서 보관하며 매일 복약 확인 관리요원이 한 알씩 제공한다. 보건소에서 약을 먹으면 한 알에 6만7천원인 리네졸리드 약값을 정부가 부담한다.
박 씨가 결핵 진단을 받은 것은 5년 전. 숨이 가빠지고 기침이 멈추지 않아 대구의료원을 찾았다가 결핵 감염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처음부터 '다제내성균'에 감염됐다고 진단받았다. 다제내성 환자란 특정 약에 이미 내성을 갖고 있는 상태로 결핵 초기 치료에 사용되는 1차 약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다. "처음에는 결핵이 무슨 병인지도 잘 몰랐어요. 약만 꾸준히 먹으면 괜찮다고 해서 별 생각 없이 넘겼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간과했던 결핵은 그의 삶을 뒤흔들었다. 당뇨를 앓아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았던 박 씨는 결핵약을 먹으며 다리 신경통이 심해지는 부작용이 겹쳤다. 건축 현장에서 하루 벌어 하루를 살던 그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소득이 끊겨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속이 안 좋고 다리까지 떨려서 약을 꾸준히 못 먹겠더군요. 먹다가 안 먹으니 약에 내성이 생겨 결핵이 더 심해졌죠."
그는 2011년 12월부터 석 달간 마산결핵병원에 입원해 치료받았고, 지금도 매일 보건소를 오가며 치료 중이다. "저는 자이복스를 먹으면 부작용이 심해요. 다리가 조금씩 마비돼서 뛰는 운동은 아예 하지도 못합니다." 말을 마친 박 씨는 깡마른 몸으로 보건소를 힘겹게 걸어나갔다.
◆ 결핵, 혼자 죽는 병 아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전체 결핵 환자 수는 4만9천532명에 이른다. 매년 새로 결핵에 걸리는 환자도 약 4만 명을 헤아린다.
결핵은 도대체 어떤 질병일까? 결핵균에 의한 만성 감염병인 결핵은 호흡기를 통해 전파된다. 전염성이 있는 결핵 환자가 말을 하거나 기침을 할 때 결핵균이 포함된 미세한 가래 방울이 공기 중으로 나오고, 주위 사람들이 숨을 들이쉴 때 이 균을 들이마시고, 결핵균이 폐 속으로 들어가 증식해 감염에 이른다.
무엇보다 결핵은 두드러지는 증상이 없어 더 무서운 병이다. 잦은 기침이 오래 지속되거나, 가래, 미열이 있는 경우가 있지만 증상이 전혀 없는 경우도 많다.
대구의 한 보건소 결핵 관리 담당자는 "결핵약을 잘 안 먹는 환자에게 치료를 강요하면 '이렇게 살다가 죽을꺼야'라며 저항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마다 '결핵은 혼자 죽는 병이 아니니까 치료받아야 한다'고 설득하지만 잘 안된다"고 털어놨다.
결핵은 치료 가능한 질병이다. 증상에 따라 6~24개월까지 꾸준히 약을 먹으며 결핵을 치료할 수 있다. 문제는 약 복용을 중단했을 때 발생한다.
특정 약에 내성이 생기는 '다제내성 결핵'으로 발전해 치료가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 경북대병원 호흡기내과 이재희 교수는 "결핵 진단을 받았는데 약을 불규칙적으로 복용하면 나중에 한 약에 내성이 생겨 갈수록 치료가 힘들어진다. 일부 환자는 처음부터 특정 약에 내성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감염 당시부터 다제내성 균이 옮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동반 질환 있으면 더 위험해
다른 병에 걸린 환자가 결핵에 걸리면 치료가 더 어려워진다. 이재희 교수는 "결핵 환자들 중에는 늦게 병원에 와서 상태가 악화된 경우가 많다. 만약 간질환이나 콩팥과 심장 질환 등 다른 질환을 결핵과 함께 앓고 있는 경우에는 결핵약 부작용이나 다른 질병 치료 때문에 상황이 어려워진다. 결핵은 결코 무시해서 안 되는 질병"이라고 경고했다.
의사들은 자신이 결핵 환자인지 평소에 모르고 살다가 암에 걸린 뒤 수술 전 검사를 하다가 발견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한다. 경북대병원 외과 정호영 교수는 "위암 진단을 받고 수술 날짜까지 잡은 환자가 결핵에 걸린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그러면 환자 몸에 있는 결핵균이 감염이 안 되는 비활동성으로 바뀔 때까지 2주가량 치료해야 해 수술이 연기돼 환자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고 했다.
수술을 위해 마취를 하고 회복할 때도 결핵은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경북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김시오 교수는 "결핵 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는 균 때문에 마취 기계가 오염되기 때문에 응급 수술은 이를 감수하고 진행된다. 대신 결핵 환자가 썼던 모든 마취 기기와 의료 장비를 일시적으로 소독하고 하루 동안 해당 수술실을 닫아야 한다"며 "전신마취를 하면 폐를 통해 마취제를 투여해야 하는데 폐결핵 환자는 호흡 기능이 떨어져서 위험 부담을 안고 수술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기획취재팀=김수용기자 ksy@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지난 7일 대구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결핵 검진 차량 앞에서 줄을 서 있다. 이 학교는 지난달 학생 1명이 결핵 확진 판정을 받았고, 관련 법에 따라 이 학생과 같이 수업을 들었던 학생 100여 명과 교직원 20여 명이 결핵 검진을 받았다.
결핵균 사진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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