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상 백일장] 수필-대신에

김병욱(대구 북구 태전동)

'꿩 대신 닭'이란 말이 있다. 그러나 닭 맛이 꿩 맛만 하랴? 대신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오래전에 아버지께서 유언을 남기셨다. '아버지 대신으로 네가 너의 어머니 잘 지켜 드려야 한데이' 하고 눈을 감으셨다. 평상시 말씀도 아닌 유언이라 가슴 깊이 새겨듣고 아버지 역할까지 다 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동생들 챙기는 일은 기본이고 어머니가 편찮으시면 곁에서 지켜 드리고, 자전거를 타고 읍내 시장까지 가서 장 봐 드리고, 밭일, 들일 힘든 일은 도맡아 하곤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뭔가 허전해하셨고, 입 모양은 웃음 짓는데 미간의 주름이며 표정은 영 웃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야 알았다. 아버지 대신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힘든 일 도와 드리는 일밖에 없다는 것을. 무엇이 무엇을 대신할 수 없다는 걸 세월이 아주 많이 흘러 잠시 잊고 있었는데 아내의 일로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속병이 나서 몇 번이나 병원을 들락거리더니 결국 밥 대신 죽을 먹기로 했단다. 3년 동안 죽 먹으면 속병이 완전히 낫는다는 말에 아침마다 죽 쑤어 도시락도 죽으로 챙겨가는 아내는 죽을 먹더니 속이 편하다고 했다. 흰죽, 야채죽, 호박죽 등등 죽 파는 가게에서 사다 나를 줄 알았더니 손수 만들어 먹기를 이제 석 달째 접어든다.

'밥 대신에 죽'을 먹고 있는데 밥만큼 근기(根氣)가 없는 모양이다. 힘이 없고 몸은 홀쭉해져 체중이 너무 줄어들었다. 아들이 아버지 대신할 수 없듯, 밥은 밥으로서 영양이 있는 것이니 죽이 대신할 수 없었다. 밥은 밥, 죽은 죽. 대체식품의 역할이 길면 본 식품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빨리 밥으로 돌아가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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